끝없는 레일 위로 기차야 달려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시작되고 있다. 이 물결은 이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무서운 힘으로 몰아치고 있다. 드디어 하나님의 계획이 이스마엘의 후손들, 곧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세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에스토니아 집회를 마치고 출발에 앞서 탈린 공항에서 집회를 도왔던 팀(Tim)이라는 나이지리아 유학생이 있었다. 그는 총회장 목사님께 한 이상을 보았다고 말했다. 자기가 차를 몰고 사막을 지나고 있는데 뒤를 돌아다보니 총회장 목사님이 십자가를 메고 사막을 걸어가고 있더란다.
그런데 목사님이 지나는 자리마다 말라 죽었던 풀들이 살아나 자라더니 그 풀들이 모두 십자가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그 계시는 곧 있을 이번 중앙아시아 집회와 함께 회교권에 계획되고 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나타낸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총회장 목사님은 이번 집회를 떠나기 전, 어느 화가에게 그림을 하나 부탁했다고 한다.
사막에 낙타를 타고 가는 행렬의 선두에 목사님이 십자가를 들고 중동에 입성하는 내용을 그려달라고 말이다. 이 모두가 이제 우리 교단을 통하여 회교권에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드러난 징표들이라 하겠다. 그러니 마귀의 세력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총회장 목사님은 이번 집회를 앞두고 쓰러져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해야 했고 집회를 준비한 현지에서는 집회를 포기하라는 압력들이 난무했다.
우즈베키스탄 오순절 교단의 총회장인 세르게이 알렉세이 목사는 미국 총회에 갔다가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했고 돌아와서도 한국 선교사들을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로부터 집회를 중지하라는 거센 핍박을 당해야 했다. 만일 그가 한국의 영성세미나에 참석하여 그 은혜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이번 집회는 시작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증거를 가졌기에 담대히 맞서 집회를 진행해나갔고 결국 이슬람의 땅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나타나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세계적인 목화의 주산지 타시켄트(Tashkent), 지난 1966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도시를 구소련에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즈벡 민족을 비롯하여 약 120여개 민족이 혼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먼저 타시켄트에서 약 30km 떨어진 소도시 도이찌빠에 있는 우리 지교회를 방문하여 교인들과 저녁만찬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소문이 난 관계로 많은 성도들이 몰릴 것을 대비, 근처 학교 강당을 빌렸다고 나빈 선교사는 말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교회가 아닌 곳에서 종교집회를 가질 수 없다. 선교사들도 신분을 숨기고 선교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주위에서는 학교에서 갖는 집회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오히려 학교장이 나서서 자기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밤이었다. 그러나 운동장 가득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집회장인 강당에는 용신할 틈도 없이 인파로 넘쳐났다. 그들은 정말 뜨겁게 복음을 사모하고 있었다.
성경은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지금 저 이슬람 세계가 우리 예루살렘교단의 갈보리 깃발 아래 복음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에 그들은 놀라 환호성을 질렀고 눈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튿날 키르기스스탄 집회를 위해 새벽에 떠나야하는 관계로 우리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듯 빠져나와야 했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총회장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안수기도를 받기를 갈망했던 지교회 성도들이 몹시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 우리는 짐을 꾸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Bishkek)에 도착했다. 인구 약 500만의 소국이지만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매우 개방적이고 활력이 느껴졌다. 이번 집회는 지난 2월 싱가포르 목회자 세미나에서 만났던 한다밀 목사를 통하여 이곳의 누루싼 목사와 연결되어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집회를 준비한 누루싼 목사의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그의 교회에는 많은 목회자들이 모여 있었다.
멀리 300km, 700km나 떨어진 곳에서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목회자들도 많았다. 그들이 인도한 방에는 마치 우리 옛날의 사랑방 같은 자리처럼 꾸며져 있었다. 음식을 방바닥에 길게 차려놓고 둘러앉아 좌담회가 열렸다. 마른 빵을 손으로 찢어 돌리는 모습이 참 이채로웠다. 그들은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았다. 더구나 인터넷에 올려진 음해성 기사들, 현지 한국 선교사들의 모함 등으로 혼란스러운 그들은 총회장 목사님께 의문스러운 점을 조목조목 물어보았고 목사님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모임을 파하고 이튿날 오전, 다시 같은 장소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가졌다. 총회장 목사님은 “사랑이 제일이니 서로 사랑하라”는 주제로 기독교인의 자세, 목회자의 덕목에 대해 자세히 가르쳤다. 누루싼 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동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많은 소문들로 솔직히 목사님에 대해 마음이 개운치 않았는데 오늘 사랑에 관한 설교를 들으니 목사님은 절대 이단이 아님을 확신했다”며 활짝 웃었다.
그런데 세미나에는 이웃나라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아타에서 찾아온 아흐멧(43세)이라는 목사가 있었다. 그는 원래 우즈베키스탄 사람인데 어느 선교사를 통해 92년도부터 총회장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를 받아보며 똑같이 귀신을 쫓고 사모해오다 12년 만에 총회장 목사님을 만났다며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목사가 된 후 96년도 우즈베키스탄의 기독교탄압이 거세지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가서 목회를 하고 있다.
내년도 카자흐스탄 집회를 요청했고 나아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3국 연합의 중앙아시아 집회를 꿈꾸고 있었다. 또한 독일에서 온 그레그리 목사는 총회장 목사님께 아내, 아들과 함께 찾아와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아내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했고 총회장 목사님은 그들을 숙소로 불러 그 아내를 안수해주고 아들이 독일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자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그 아내는 깨끗이 고침을 받고 눈물을 흘렸고 그레고리 목사는 독일 집회를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저녁 첫 집회를 앞두고 숙소에 있던 우리에게 누루싼 목사와 나빈 선교사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찾아왔다.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한 당국(KGB)에서 집회에 관한 고발을 받았다며 총회장 목사님을 조사해야겠으니 모처로 출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일단 집회 준비를 갖추고 모처로 향했다. 시내 한쪽에 자리 잡은 회색 콘크리트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총회장 목사님과 통역관 슬라바 목사는 누루싼 목사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빈 선교사는 들어가길 꺼려했다.
선교활동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국외추방 될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도 목사님이 들어가신 후 매우 괴로운 듯 차안에 엎드려 애통하며 기도했다. 우리 일행도 다 함께 기도했다. 그 순간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오직 아버지께 간구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약 1시간여 가까이 기도했을까? 목사님께서 나와 일이 잘 해결되었다며 슬라바 목사와 함께 숙소로 돌아가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집회장으로 향했다(관련기사 4면).
원래 체육관에서 열기로 했던 집회는 정부당국의 돌연허가 취소로 난항을 겪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러시아계 쿠진 목사가 자기 교회(이 교회는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큰 교회이다.)를 집회장소로 사용하라고 선뜻 내놓는 바람에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많은 한국 선교사들을 비롯한 목회자들의 방해가 극심했다. 쿠진 목사는 미국 방문길에 올라 부재중이었고 부목사를 비롯한 다른 교역자들은 몹시 겁을 먹고 있었다.
총회장 목사님께 살살해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어찌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며 주무를 수 있겠는가! 집회장은 몰려든 인파로 아우성이었다. 넓은 성전은 문을 열자마자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고 그것도 모자라 성전 밖 로비에 스크린을 걸고 중계해야 했다. 집회가 사흘간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날에는 결국 교회입구에 있는 대형문짝이 부서지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집회는 그야말로 성령의 도가니였다.
목발을 던지고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벙어리, 귀머거리, 소경이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이어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총회장 목사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려는 성도들이 단상과 단 밑에 몰려들어 밀고 밀치는 일이 연일 이어졌고,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집회에 나섰던 총회장 목사님은 마치 예수님이 몰려드는 군중을 피했듯이 집회가 끝나면 피하듯 집회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정말 사도행전의 연속이었다.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이 지금도 믿는 자 속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짐을 절감하는 집회였다. 참석한 현지 목회자들은 이 나라 천년 이래에 이런 일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말 키르기스스탄 비쉬켁 도성에 대 소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는 이곳 집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이튿날 다시 짐을 꾸려 다음 집회도시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로 향해야 했다. 회교권이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우리 예루살렘교단의 갈보리 깃발 아래 차례로 문을 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