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치는 스스로 높이는 것이다 (빌 2:6 ~11)
피카소는 당대에 세계적인 화가로 칭송을 받았던 자입니다. 그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자 한 재력가가 피카소를 찾아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가(大家)가 그린 초상화를 하나쯤 갖는 것이 명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부탁에 피카소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피카소는 일필휘지(一筆揮之)하듯 그림을 단 10분 만에 그려댔습니다. 상당히 기대를 하던 이 재력가는 10분여 만에 초상화를 완성한 피카소의 행위가 무성의하게 보였던지 불만 섞인 표정으로 피카소에게 100불을 던지듯 건넸습니다. 이를 받아든 피카소는 막 문을 나가려는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돌려달라고 하여 그것을 찢어 버리고는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100불짜리로밖에 안 보입니까? 내가 몇 분 만에 그린 이 그림은 몇 십 년 기울인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오. 당신은 이 피카소를 폄하했소. 당신이 아무리 거금을 다시 내어놓는다 해도 다시는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없을 것이오.”
자신을 평가절하 하느냐, 존귀한 자로 만드느냐는 자신이 할 탓입니다. 자신의 가치는 자기 스스로 높이는 것입니다.
이번 기도원공사 중 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만고의 진리가 있습니다. 한 회사는 공사에 필요한 자재나 부품이 타 회사에 비해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이유를 알아본즉 그들은 국가에서 정한 안전관리 기준뿐 아니라 국제적 기준조차도 뛰어넘는 엄격한 자체 품질관리 기준을 두어 그 기준을 통과해야만 물건을 출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에 하자가 없는 것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최상의 물건을 만듦으로 타사 제품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당당히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회사의 이름을 명실 공히 세계적인 브랜드로 향상시켰습니다. 그들의 기업경영을 보면서 자신의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라는 가장 귀하고 높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을 죽이시면서 넘겨주신 것으로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피카소가 자신의 이름의 가치를 지킨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존귀한 이름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행동의 의로움은 곧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의 가치척도는 하나님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자를 용납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는 자를 응징하시며, 당신의 이름위에 어떠한 이름도 두시지 않는 분입니다.
당신의 성호(聖號)에 도전하는 자에게 분명히 징벌하시는 분입니다. 사울이나 헤롯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름입니다. 만물이 그의 이름아래에 있으며 다 그의 이름 앞에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직분은 다 그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직분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대통령이 준 직분에 소홀하다면 대통령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 되는 것 아닙니까?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그리고 성가대나 헌금위원 모두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직분입니다.
이것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높은 자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禮)인 것입니다. 충성하지 못하고 최선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국방장관의 임명장 위에 교회에서 받은 집사 임명장을 걸어놓았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준 장관의 임명장보다 하나님이 주신 집사의 임명장을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또한 세계적인 과학자인 정근모 박사는 어떠한 호칭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그의 저서에서 밝혔습니다.
이처럼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바로 하나님께 받은 이름인 것입니다. 재작년, 가나 집회에 갔을 때 집회주최측이 저를 ‘닥터 리(Doctor Lee)’로 소개했습니다. 저에 대한 예우였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정정을 요했습니다. ‘패스터 리(Pastor Lee)’, 즉 목사로 소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세상의 박사보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인 목사가 저에게는 더없이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의 이런 요청에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후에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언행심사가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도 있고, 조롱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아야 하며, 거룩한 말과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회사처럼 우리가 스스로 한 단계 높은 기준을 정하고 이에 걸맞게 행동하며 신앙의 본을 보인다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 음담패설이나 하고 악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형편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자식이 잘 못하면 부모를 욕합니다. ‘누구 자식인지 형편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되면 ‘그의 아버지가 누구길래 자식농사를 저렇게 잘 지었냐.”고 할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거룩하시고 영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 때 세상도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올해를 영·혼·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한 해로 삼자고 공포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의 질이 향상될 때 경쟁력 있는 자가 될 수 있을뿐더러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내 값어치를 다른 사람이 높여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가치 있는 자로 만들 수도 있고, 천덕꾸러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내가 평가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와 성령으로 함께 계신 이름, 즉 하나님도 나로 인하여 평가받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의 열매로 아름답게 다듬어질 때 내게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함을 얻게 되고 영광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는 불효자가 되지 맙시다. 나로 인하여 귀한 이름이 실추되지 않도록 합시다. 육신의 아버지도 욕을 먹이면 죄인이 되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에 오점을 남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광고모델입니다. 광고모델은 가장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며, 격에 맞는 행동으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그 기업의 이미지를 가장 좋은 것으로 각인시키는 일을 합니다. 우리의 인격과 언어와 행동으로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향기는 냄새와는 분명히 다른 뉘앙스를 가집니다. 썩어져가는 세상에 향기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며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게 합시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주신 이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깨끗하면 매사에 당당하고 분명하면 항상 떳떳하다
큰 자가 되기 전에 먼저 깨끗하고 진실된 자가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