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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찬스에 강한 자가 되라 (막 11:1~14)

155호 · 2003-02-13

같은 일을 해도, 똑같은 자본을 투자하고도 어떤 이는 성공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과연 적절한 시기에 화살을 날렸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시기상조(時機尙早)도 아니고 시기만조(時機晩照)도 아닌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하여 승부를 거는 것이 곧 성공의 관건이란 것입니다.

기회는 꽃잎 위에 앉아 있는 나비와도 같습니다. 나비를 잡으려면 결단력과 함께 민첩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결코 나비를 잡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적절한 시기란 언제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영생의 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기회란 바로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또한 하나님의 때에 맞추는 것이 나의 기회이며 절호의 찬스임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入城)하던 중 시장기를 느끼시고 가까이에 있던 무화과나무로 가셨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나무에는 마침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직 무화과나무의 열매 맺을 철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무화과나무를 두고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저주를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정말 이 무화과나무는 뿌리까지 말라죽고 말지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입니다. 때가 되지도 않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그냥 말라죽게 하시다니요.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 모두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 유일하신 절대 주권자라고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없던 것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무언들 못하시겠습니까! 때문에 그 분께서 손을 내밀면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 분이 내어놓으라고 하면 내가 없어도 내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복종하면 뿌리까지 말라죽는 무화과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폭군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손을 내밀 때는 우리에게 축복의 기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부족해서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의 기회를 여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불러 ‘건너 마을에 가서 아직 사람을 태우지 않은 어린 나귀가 있으니 끌고 오라’고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문 앞에 나귀가 있는지라 끌고 나옵니다. 그러자 정말 나귀 주인이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 대로 ‘주께서 쓰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나귀를 제자들의 손에 내어주지 않았습니까! 나귀 주인도 충분히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 어려서 어미를 떨어지지 못한다’든지,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못해서 예수께서 타다가 떨어질 염려가 있다’고 핑계거리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나귀 주인의 군소리는 없습니다.

그 결과 나귀는 예수님을 등에 태우고 사람이 벗어 놓은 옷을 밟으며 ‘호산나’의 환호를 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 순종하면 상상할 수 없는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삭을 내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계약위반 같았습니다. 이삭을 통하여 자손이 번성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위배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 그 손 위에 아들을 올려놓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았고 더불어 하나님께로부터 ‘친구’라 칭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사람의 때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며 하나님의 방법과 우리의 방법에도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나이 40에 그의 민족을 구원코자 했습니다. 혈기왕성하고 세상 지식으로 가득하여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를 광야로 몰아 40년 동안 낮아지게 하셨고 힘없고 지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이 80에 모든 기력이 다한 듯한 그를 택하사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려는 계획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모세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자신감이 결여되었고 말도 어눌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내미는 손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40년 전에 나를 부르시지 하필 늙고 힘없는 지금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 앞에 철저히 순종했더니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하여 홍해를 가르고 광야를 건너 가나안에 들여놓는 대역사를 이루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당신의 물질을 내어놓으라고 하시며, 당신의 시간을, 당신의 육체를 내어놓으라고 손을 내미십니다. 당신은 무화과나무처럼 ‘아직 때가 되지 않았나이다’하며 변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쓰소서’하며 자신을 기꺼이 내어드렸던 나귀의 모습입니까! ‘제가 배움이 부족해서 주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없어서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는 모두 핑계에 불과합니다. 결코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닌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귀가 아직 어리고 사람을 태워보지 않음도 알고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알고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는 고백뿐입니다. ‘제가 더 많이 배운 다음 꼭 주의 길을 가겠습니다’, ‘더 벌어 많이 드리겠습니다’, 이것 또한 순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의 때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순종할 터인데 어떻게 그 뜻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에 충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 때를 알며 성령에 충만한 자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혹여 하나님의 뜻보다 당신의 주장이 앞서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내민 손이 민망하게 팔짱끼고 손을 감추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민 손 위에 당신을 내어놓으십시오. 당신의 물질을, 당신의 달란트를, 당신의 육체를, 당신의 명예를…. 그러면 하나님이 그 뒤를 다 책임지실 것입니다. 당신이 내어놓은 물질보다 백배를, 당신의 달란트 위에 더 큰 능력을, 당신의 육체에 새힘과 강건함을 더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높이시며 만인과 만물이 복종케 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순종하여 그의 손에 당신을 내어놓을 때 당신의 인생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매사 준비된 자가 기회가 기회인 줄 안다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조잡한 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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