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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근육을 키우자

1357호 · 2026-05-10
빛과 소금

영적인 근육을 키우자

나이가 들수록 근력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 몸은 30대 이후로 근육이 줄어드는데, 이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미래에 단순히 힘이 약해지는 걸 넘어서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며 건강한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육의 건강만큼 영적인 건강도 잘 돌보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쁜 일상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영적인 시간들을 뒤로 미루기가 쉽다. 육의 건강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영혼의 상태는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잘 점검하고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5년 후, 10년 후에 분명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주의 종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매일 육의 양식을 먹듯이, 영의 양식인 말씀을 가까이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말이다.

이런 선한 영적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안에는 영적인 근육이 만들어져서 시험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넘어져 주저앉지 않고 거뜬히 일어나 더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하루, 이틀 말씀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바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게으름이 반복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점점 둔해지고 정작 믿음이 필요한 중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운동을 하루 한다고 근육이 생기지 않듯, 영적인 근육 또한 꾸준한 훈련을 통해 자라난다. 우리의 영적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을 사수하고, 예배의 자리, 섬김의 자리, 또 때마다 열리는 집회의 자리를 할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들어가도록 하자.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하루하루 좋은 영적인 습관들을 쌓아 가다 보면 하나님 앞에 더욱 단단하고 건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이다. 영적인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우리 마음의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송지혜 집사

아름다운 인생

미명의 기도

장례를 치른 지 한 달 만에 또 안수집사님께서 소천하셨다. 이번에도 믿지 않은 가족들이 장례를 부탁하셨고, 입관 예배를 위해 일찍부터 기도로 준비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새벽 미명은 3~5시로 사람이 무척 깊이 잠든 시간이다. 경험상 불신자 가족과의 장례는 더욱 영적 긴장을 해야 하기에 이른 미명에 부르짖고 나니 유난히 깊은 고요함을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예수님, 예수님은 이런 컴컴한 미명에 혼자 기도하셨던 거군요.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괴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기도하셨네요.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그러나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시고 구하셨기에 능력과 위로를 받으셨군요. 예수님,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제가 그 마음을 조금 깨닫습니다.”

이후 장례식장에서 복음을 듣는 가족들의 입에서 작지만 분명한 ‘아멘’의 화답을 듣게 하시어 나를 위로하셨다.

돌이켜보면 새벽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일을 이루셨다. 내 근심 걱정을 쉬없게 하시며, 어두워진 영혼을 밝혀주셨던 시간이었고, 주의 종으로서 소명을 주실 때와 생도로서의 훈련을 견딜 수 있던 비결,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계시들도 언제나 새벽에 시작되었다. 그 체험들은 경험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새벽의 기도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깊이 만나주시는 자리 또한 새벽이다. 그 미명의 기도를 가장 먼저 시작하시고 본이 되어 주셨으며 여전히 나를 그 자리에서 만나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김혜리 교육전도사

소망의 언덕

참된 스승

최근 신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던 ‘호도스(Hodo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길’이라는 뜻을 가진 이 짧은 단어 속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가르치셨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락한 강의실에서 말로만 제자도를 논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지 날리는 길 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먹고 자며, 삶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셨습니다. 그분에게 가르침이란 곧 ‘함께 걷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지식이 아닌 본(本)으로 제자도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호도스’의 정신을 묵상하다 보니, 우리 총회장 목사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40여 년의 성역(聖役)을 마치고 이제는 편안한 노후를 누리셔도 될 법한데, 목사님은 마치 어제 안수를 받은 젊은 전도자처럼 여전히 세계를 누비며 예수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주저 없이 그분을 영적 스승으로 모시고 따를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너희는 이 길을 가라’고 명령하는 분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 길을 가자’ 하시며 앞장서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문득 학창 시절, 한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독보적인 열정으로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교사가 된 후 전해 들은 그분의 소식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학생의 길을 접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그분은, 자신을 그리워하며 찾아온 제자에게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너, 아직도 교회 다니니?”

가르침을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가르침대로 끝까지 좁은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뼈아프게 깨닫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충분히 걸었으니 이제 너희가 가라.’ 하지 않으시고, 남은 여생 죽도록 충성하며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 영적 스승의 존재가 더욱 귀하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우리 곁의 스승님들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우리보다 앞서 험한 길을 닦아주신 목사님과 선생님들의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길 위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님들, 여러분이 계시기에 우리가 이 길을 외롭지 않게 걷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현승 목사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신앙의 훼방꾼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노량진 교육관에서 저녁 8시 기도 모임이 처음 생겼을 때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한 장 읽고, 찬송가를 한 장 부르고, 30분간 하는 기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노량진이라는 위치가 집과 반대 방향인지라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직장에서 집까지는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면 가는데, 노량진 교육관은 지하철로 두 정거장, 버스로 갈아타서 일곱 정거장을 더 가야 했거든요. 또 교육관에서 집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다 보니 기도하는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그 시간이 피곤하게 다가왔어요. ‘그냥 저녁에 집에서 기도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안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죠.

그러다 작년 4월, 간절히 기도할 문제가 생기자 저절로 노량진 교육관을 찾게 되더군요. 매일 저녁 성도님들과 모여 기도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66일이면 새로운 습관이 몸에 각인 된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요, 1년이나 저녁 기도 모임에 참석했는데도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기쁠 때도 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할 때도 있어요. 하나님께 감사해 눈물 콧물 쏙 빼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퇴근하고 곧장 집에 가서 눕고 싶어요. 누워서 넷플릭스 보면서 놀고 싶어요. 밤공기 마시며 느긋하게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싶어요.

지금껏 저는 신앙생활 하기 좋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단호히 제사를 끊어낸 엄마 덕분에 제사 문제로 부대낄 일 없이 평생 즐거운 명절을 보냈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는 회식도 많고 술을 권하는 분위기였으나 저의 상사들은 “은혜는 크리스천이라 술 안 마셔.”라며 먼저 막아주었죠. 주말 출근이 불쑥불쑥 생기는 광고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일 때문에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날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예전엔 야근이 잦았지만, 이제는 연차와 능력이 쌓여 근무 시간에만 집중해서 일해도 매번 좋은 성과를 냅니다. 야근을 안 하니 평일 저녁 기도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고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7:13~14). 좁은 문에 관한 설교를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은 전혀 좁은 문이 아닌데, 아주 평탄하고 평안한데, 핍박하는 사람도 없고 방해하는 환경도 아닌데,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순조롭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제 퇴근하고 기도하러 가는 길에 문득 깨달았어요. 나의 좁은 문은 바깥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구나. 곧장 집에 가서 눕고 싶어 하는 나를, 누워서 넷플릭스 보면서 놀고 싶어 하는 나를,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하는 나를, 그런 나를 이겨내고 기도하러, 기도하러, 기도하러 가는 길이 좁은 길이구나.

저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사람은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 있었어요. 저는 저 자신을 바로 세우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는 동시에 훼방꾼이 되기도 합니다. 주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베드로가 얼마 못 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질책받았던 것처럼, 저는 하나님의 생각을 품다가도 뒤돌아서 사탄의 생각을 품곤 합니다.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나약한 저를 붙잡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붙잡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점심 먹고 잠시 산책하면서 유튜브에 있는 이초석 목사님의 20분 설교를 듣습니다. 훼방꾼이 나타나지 않도록.

신은혜

빛이 되리라

결국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이 세상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며, 그 사랑의 마음을 당신을 닮은 우리 인간에게도 심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이란 마음은 너무도 힘이 강력해서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기도 하고, 죄를 용서하기도 하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을 드리기도 할 만큼 인간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역시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그 첫 번째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그리고 절제 중에서도 맨 앞에 사랑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았고, 변화되었으면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상처 주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할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크신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면 내 안에 하나님이 가득하지 않다는 방증으로 생각해봐도 좋겠습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론 너무나 버겁고 어렵습니다. 더욱이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나 아픔이 남았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 이 사랑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당장은 안 돼도 하루하루 더 성장하며 사랑의 마음과 그릇을 키워가야 합니다. 가장 큰 선물인 구원을 얻었다면 그다음 내 평생에 이뤄가야 할 가장 크고 복된 일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사랑이 있습니다.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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