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동색(同色)이다
2026 춘계산상집회(4월 27일~30일 장성 예루살렘기도원)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빛이나 녹색이 같은 색이란 뜻으로, 이름은 달라도 성질이나 내용이 비슷하다, 같은 부류,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열등감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란 메시지가 있는데, 이번 춘계산상집회를 통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동색이며, 사고의 원인이 여기서 나온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일, 춘계산상집회 영상을 같이 보았지만, 목사님은 최근 한 달 사이에 고집, 분노 등,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사고들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하셨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술을 마이크 삼아 거듭 강조하며 경고하시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만일 우리가 여전히 이런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면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능력입니다.
우월감, 남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심리, 열등감, 남보다 내가 부족하다는 피해의식, 이거 둘 다 말만 달랐지 동색, 곧 같은 말입니다. 정말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쓸데없이 남에게 우월의식도, 열등의식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주위에서 추어주면, 겁을 상실하고 남을 멸시 천대하며 교만해집니다. 예전에 논밭이던 강남이 갑자기 개발되어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니 싼 농지를 소유하고 있던 시골 사람들이 졸지에 상상도 못할 만큼 큰돈을 갖게 되었고, ‘졸부’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갑자기 쥐어진 돈으로 드러낸 심리가 딱 천박한 우월감이었습니다. 사실 열등감 속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부나 명예가 주어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그런 천박한 우월감입니다. 일종의 보상심리인 셈이죠.
그래서 항상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라면 그 형편과 처지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하며 나를 살피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상처 주지 않습니다. 남 앞에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은 심리를 뒤집어보면 결국 열등감의 다른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느냐’는 분노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예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나, 지난 미국 캔자스시티(Kansas City)에 갔을 때의 일을 되돌아보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강사로 초빙한 목사님을, 우리 같으면 정말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접할 텐데,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목사님은 그들이 어떤 대접을 하든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괘씸할 수도 있겠지만, 목사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 땅에 보내신 목적,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충실하셨지요. 물론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기본 바탕에 있으시기 때문이겠지만, 눈앞의 일들에 초연할 수 있는 자세는 진짜 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함께 역사해주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당당하게 맡은 일에만 충성하는 자세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런 목사님을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로 신원하셨고, 그들이 결국 목사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머리를 숙이게 되었지요.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이라 믿습니다. 오늘날 많은 해외목회자들이 가는 곳마다 목사님을 따르며 배우려고 하고, 각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목사님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기사가 나갈 때면 필리핀(Philippines) 세부(Cebu) 집회가 진행되고 있을 테고, 6월에는 멕시코(Mexico)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 집회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그 넓은 복음의 지경을 계속 맡기시는 이유도 온유한 마음과 충성된 자세에 있다고 믿습니다.
쉽게 분내고 성내는 것은 결국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본받아, 목사님을 본받아 매사 여유와 실력을 가지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