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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광야’는…

1356호 · 2026-05-03
세상을 보는 창

나에게 ‘광야’는…

광야는 흔히 버려진 황무지나 사막과 같은 척박한 공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에서 광야는 단순한 고통의 장소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히브리어 ‘미드바르’(מִדְבָּר)는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דָּבָר)에서 유래한 말로, 광야는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광야와 같은 시간들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광야는 결핍과 고난이 있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에서 말씀하시고 우리를 다듬으시는 거룩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광야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안정된 환경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던 마음의 본질이 결핍과 고립 속에서는 숨김없이 나타난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그 반응이 곧 우리 신앙의 깊이를 보여준다. 같은 광야를 지나면서 어떤 사람은 원망과 불평 속에 무너지고, 또 어떤 사람은 믿음과 감사로 그 시간을 통과한다. 결국 광야를 실패의 장소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영광의 자리로 변화시킬 것인지는 우리 선택과 반응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여정에서 애굽에서의 해방과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의 현실 앞에서 쉽게 불평과 원망으로 반응했다. 물이 없을 때, 먹을 것이 부족할 때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아니라 눈앞의 결핍에 머물렀다. 과거에 베푸신 은혜와 지속되는 하나님의 공급을 기억하지 못한 채, 그들은 광야를 고통의 장소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감사는 이러한 시선을 바꾸는 결정적인 열쇠이다. 감사는 단순한 긍정의 표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래서 감사는 광야를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으로 바꾸는 힘이 된다.

광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광야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다. 원망으로 채워진 광야는 상처와 실패의 기억으로 남지만, 믿음과 감사로 채워진 광야는 하나님을 깊이 만난 은혜의 자리로 남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시고, 더 깊은 믿음과 성숙으로 이끄셨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정금 전도사

오늘의 메시지

효(孝)

40대 부모에게 설문조사를 하였다.

1)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자녀에게 늘 사주는 것이라 쉽게 대답한다. 치킨, 피자, 햄버거 등등

2) 자녀의 사진은 가지고 있는가?

핸드폰을 여니 수도 없이 많다.

3)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가?

하루에도 수도 없이 한다.

다음에는 자녀 대신 부모를 넣고 똑같은 설문조사를 했다. 그런데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사진은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없다.

십계명은 둘로 나눌 수 있다. 1~4계명은 수직적 사랑, 5~10계명은 수평적 사랑이다. 그중 수평적 사랑의 첫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공경하는 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며, 축복의 근거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여 복을 받고,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들어 복을 받고,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를 감추어 복을 받고, 룻은 시어미 나오미를 끝까지 섬겨서 복을 받았다.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징책하여도 듣지 않는 자녀는 돌로 쳐죽여 악을 제하라고 말씀하신다(신21:18~21). 그러나 순종하여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이 땅에서 잘되게 하시고, 장수의 복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신5:16, 엡6:1~3).

vvvvvvvvvvvv

우리는 부모를 공경함이 연중행사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 명령임을 알고, 행함으로 약속하신 땅의 복과 장수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김상욱 목사

낮은 울타리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

얼마 전 미국 필라델피아에 갔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중 미국인 친구를 따라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한 번 드렸는데 정말 재밌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어떤 지체가 제가 속해있는 부서의 지체와 정말 똑같다는 것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새신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예배를 위해 바쁘게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정말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건 그 자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찬양하다가 설교 시간에는 열심히 조는 사람,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런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는 것조차 우리 부서와 참 닮아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이 장성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랑을 줄 수 있는 자와 사랑이 필요한 자가 함께 있는 모습. 이게 하나님이 의도하여 만드신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땐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 곳이 좋은 공동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정말 좋은 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자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가 함께 있고, 믿음이 장성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가 함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통해 서로 도울 수 있고, 서로 섬길 수 있게 하며, 낮아짐을 배우고 사랑하기 힘든 자도 하나님을 통해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직접 한 명, 한 명 영혼들을 부르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개입 아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멀리 떨어진 두 교회의 모습이, 구성원들의 모습이 비슷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교회라는 공동체가, 영혼 한 명, 한 명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 교회를 다녀와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공동체를, 불러주신 그 귀한 영혼들을 더 잘 대접하고 섬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가 병든 자들이 모여 고침받는 교회가 되게 기도하신 것처럼, 저도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흠 없는 공동체를 꿈꾸기보다 모두가 어울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바라며 일하는 일꾼이 되길 바라봅니다.

장수정

한국교회사

한국의 베드로 김익두 목사

한국 교회사에는 유난히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도 불꽃같은 신앙으로 민족의 어둠을 밝히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 위대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익두 목사님(1874~1950)은 극적인 회심, 강력한 부흥 운동, 그리고 순교로 점철된 삶을 통해 한국 개신교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독특하고도 강력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초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874년 황해도 안악군의 유복한 유학자 가문에서 독자로 태어나 학문에 정진했으나, 16세에 과거에 낙방하고 이어진 장사에 손을 대었지만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자 그는 좌절감과 허무감에 젖어 안악골의 악명 높은 강패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악 장터에서 한 서양 여선교사로부터 받은 전도지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처음에는 코를 풀고 버릴 정도로 무시했던 전도지에 쓰인 이사야 40장 6~8절의 말씀, 곧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는 구절은 그의 영혼을 깊이 찔렀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그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친구 전도를 통해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스왈론 선교사로부터 받은 순 한문 신약성경을 100독 하며 말씀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3일간의 금식 기도 중 하늘에서 “김익두야! 김익두야! 너는 불의 종이 되어라. 너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신유와 회개로 진동시키고 한반도를 성령의 물결로 휩쓸어라.” 하여 “아멘,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김익두의 육과 영은 불덩어리 상태였습니다. 기도와 찬송이 쏟아지고 그의 몸에서 광채가 나며, 이때부터 김익두는 불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이 회심의 경험은 그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과거의 죄를 뼈저리게 뉘우치며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눈물로 사죄했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새사람이 된 김익두 목사님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06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0년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천읍교회에서 24년간 시무하며 교회를 굳건히 세웠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한국교회 부흥운동사에서 길선주 목사님에 이어 부흥운동을 이끈 가장 강력한 부흥사로 손꼽힙니다. 3.1운동 직후 절망에 빠진 민족에게 영적인 희망을 불어넣어야 했던 시대적 사명에 응답하여, 그는 전국을 누비며 무려 776회에 달하는 대규모 부흥회를 인도하셨습니다.

한 번은 길가의 앉은뱅이를 보고, 베드로의 이적을 연상하며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사실 그때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났고, 확신이 없이 도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결국 일주일간 금식하고 다시 도전하여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그 후 39년간 수십만 명의 병자들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지속되었습니다. 그의 부흥회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함께 수많은 치유 이적이 동반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약 1만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그의 기도를 통해 눈을 뜨고, 귀가 열리고, 병 고침을 받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의 부흥회를 통해 한국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성봉, 주기철 목사님 등 200여 명의 목회자들이 신앙적 각성을 얻거나 목회 소명을 깨닫는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집회는 철저한 죄의 고백과 통회 자복을 이끌어내는 영적 각성의 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역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바울로 불리는 길선주 목사님이 말씀으로 영적 각성을 주도했다면, 김익두 목사님은 이적과 치유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한 ‘한국의 베드로’였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강력한 사역 뒤에는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영적 호흡과 같이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치유 사역은 밤낮으로, 그리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기도 없이는 영적 성장이 불가능함을 역설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에 대해 성령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체험했으며, 이를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강조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신령한 양식’이라 부르며, 말씀과 기도의 병행을 강조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목회자이자 부흥사였습니다. 그의 삶은 복음주의와 경건주의의 정수를 보여주었으며, 한국교회에 깊은 영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는 평생 150여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약 2만 8천 번의 설교를 통해 288만여 명의 새신자를 주님께로 인도했으며, 1만여 명의 병자를 치유하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의 감화로 200여 명의 목회자가 배출되어 한국교회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 체험,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의 뜨거운 신앙은 현대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진정한 영적 부흥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남대문교회와 승동교회에서도 시무하시며 활발한 사역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 민족의 아픔과 교회의 시련이 깊어지던 1938년, 그는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하여 일제에 의해 목사직을 강제로 박탈당하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는 그의 신앙이 어떤 박해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반석 같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광복 후에도 목회를 포기하지 않고 1946년 신천 서부교회에 부임하여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민족에게 또 다른 비극이 닥쳤으니, 바로 한국전쟁이었습니다. 1950년 10월 14일, 국군이 북한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에 기쁨으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던 중, 예배당을 급습한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하시며 신천 서부교회에서 그의 위대한 생애를 순교로 마감하셨습니다. 그의 순교는 한국 교회사에 깊은 울림을 주며, 민족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의 삶을 영원히 기억하게 했습니다.

김종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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