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기도
절박한 심정이 되어 보았는가? ‘절박(切迫)하다’는 끊을 절(切), 닥칠 박(迫)으로,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어 벼랑끝에 선 심정을 말한다. 피할 길도, 해결될 기미도 안 보일 때를 말한다.
그때 할 수 있는 것, 딱 하나다. 간줄기가 끊어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고, 만사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달려오는 상황. 이보다 절박한 순간이 또 있을까.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그랬더니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사 길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게 하셨다. 그렇다. 형식적인 기도는 하늘을 스치지만, 절박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곧 죽으리라는 선지자의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울부짖었고(왕하20:2), 브닌나의 멸시에 한나는 하나님 앞에 통곡했으며(삼상1:10), 3년 6개월간 닫힌 하늘의 문을 열어 비를 내려달라고 엘리야가 머리가 가랑이로 들어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왕상18:37). 그랬더니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수명을 연장시키셨고, 한나에게 아들을, 엘리야에게 닫힌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리게 하셨다.
우리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절박함, 간절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 버틸만해서, 아직 의지할 것이 남아 있어서, 간절함이 아직 없어서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간절히)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
절박함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자리다. 하갈이 아들이 죽게 됨을 보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의 앞에서 생수가 터지게 하셨고, 아들의 장래까지 확증하지 않으셨던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절박한 기도를 하신 예수님처럼 기도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대충,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시간 낭비요, 에너지 낭비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응답하시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