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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맞는 자는 우주와도 바꾸지 않는다

1347호 · 2026-03-01

2010 베네수엘라 목회자 세미나 광경

해외에서 진행되는 목회자 및 실업인 세미나에서 목사님이 자주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일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국의 본교회를 두고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일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나와 마음이 맞는 자,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읽고, 나처럼 교회를 사랑하며 일하는 사람을 골라 썼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부단히 교육하며 제2의 이초석을 만들기에 애써왔습니다. 그들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의 영달이나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아니오’가 아니라 오직 ‘예’가 되었던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일했던 것처럼(고후1:19~20), 나 역시 오직 ‘예’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꾼들과 일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고, 내가 교회를 비우고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더욱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뿐 아니라 정치나 사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도 나와 마음이 맞는 다윗을 통해 당신의 뜻을 다 이루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행13:22)? 예수님도 당신이 원하는 자를 불러 쓰셨다(막3:13)고 하시지 않습니까? 다윗도 충성스런 37명의 용사와 대업을 이룬 것 아닙니까(삼하23:8~39)?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학연, 지연, 혈연에 마음을 뺏겨 턱턱 자리에 갖다 놓았다가 고통을 당하고 회사가 부도나고 교회가 무너집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맞는 자와 일하셨건만, 왜 어리석게 내 앞에 와서 아첨하는 자들에 속아 대업을 그르칩니까? 자고로 만든 자의 말을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과 마음이 맞는 자, 여러분을 사랑하는 자를 골라 쓰는 것이 목회와 사업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목사님의 목회 성공의 비결이라면,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을 골라 쓰신다는 점입니다. 25년의 해외선교 역사 가운데 어찌 탄탄대로만 펼쳐졌겠습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찌 다 좋을 수만 있었겠습니까? 인간인지라 각자 개성이 있고, 약점도 있었겠죠. 그러나 목사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향한 열정만 보시고, 참고 인내하고 격려하시며 지금까지 선교사역을 성장시켜오셨다고 생각합니다. 목표와 지향점이 같고,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 있다면 서로 다른 면들은 하나의 목표 아래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고, 그런 원칙과 철학이 목사님의 목회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대형교회나 대기업을 이끌려면 반드시 요구되는 리더십이라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 죽고 못 사네 하며 결혼한 커플들이 왜 허구한 날 다투다 못해 헤어집니까? 서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사랑할 때는 상대의 약점도 다 사랑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활에 치이다 보니 그 약점들이 점차 더 커져 보이고, 약점들을 보완해주기보다 오히려 ‘이건 서로가 맞지 않는 거’라며 다투고 분쟁하다 결국 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동질성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지 말라’(고후6:14)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죠. 목사님도 누누이 강조하시는 말씀이고요.

‘마음이 맞는 자는 우주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시지요. 이 세상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맞지 않으면, 대화도 되지 않고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면,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성공과 행복을 다 이루어가려면 목사님 말씀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일천 남자 중에 하나를 찾았고, 일천 여자 중에는 찾지 못했다(전7:28)고 했지요. 그러나 목사님은 만남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시지만, 관계 형성은 내가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포용하셨던 것처럼, 목사님이 같은 목표와 지향점으로 일꾼들을 녹여내신 포용의 자세를 배워야겠습니다. 할렐루야!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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