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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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호 목차 › 붕우칼럼

주여, 어느 때 보셨나이까

1347호 · 2026-03-01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주님이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다나엘은 깜짝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8).

나다나엘과 초면인 예수님이 그를 이미 보고 계셨듯이, 주님은 우리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우리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신다(시139:2). “눈을 만드신 자가 어찌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그 예수님은 다니엘이 왕명을 어기며 기도할 때 보셨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때도 보셨고,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칠 때도 보셨고, 과부가 두렙돈을 헌금 궤에 넣을 때도 보셨고, 마태복음 25장에 주님의 오른편에 선 자들이 지극히 작은 자를 먹이고 마시게 했을 때도 보셨다.

그렇다면 주님이 좋은 것만 보고 계실까? No.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라고 명할 때도, 사울이 선지자 앞에서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할 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할 때도, 아간이 물건을 훔칠 때도, 주님의 왼편에 선 자들이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을 때, 벗은 자를 입히지 않을 때,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지 않을 때도 다 보고 계셨다.

내가 ‘큰 자가 되기 전에 깨끗한 자가 되겠노라’고 다짐하는 이유도, 거짓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안 하는 이유도, 내가 열 명 앞에서나 십만 명 앞에서나 동일하게 열과 성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이유도 다 이것이다. 주님이 다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라던 요셉의 마음으로 살자. 사람은 안 봐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주여, 어느 때 나를 보셨나이까?”

“네가 은밀하게 남을 도울 때 보았노라.”

“네가 목이 터져라 날 증거할 때 보았노라.”

“네가 핍박 받고 울 때 그 때 보았노라.”

주님의 눈이 이런 곳에 머물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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