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돈도 가치가 있다
여보게!
새해가 밝았네. 작년에 자네가 많이 힘들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의기소침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 그런 자네에게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네. 내가 해외집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비유이니 잘 들어보게나.
나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손에 들고는 “이 돈 갖고 싶은 사람?” 하지. 그러면 모두가 웃으며 손을 드네. 당연하지. 나는 다시 그 지폐를 마구 구기고는 회중들에게 또 묻네. “이래도 이 돈 갖고 싶은 사람?” 여전히 모두는 갖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지. 나는 이번에는 지폐를 바닥에 던져 발로 밟아 뭉갠다네. 그리고 다시 질문을 하지. “갖고 싶은 사람?” 자네는 어떤가? 이 돈 갖겠나, 더럽다고 안 갖겠나? 당연히 갖겠지? 회중들도 여전히 갖겠다고 한다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말한다네. “100달러짜리 지폐는 구겨지거나 발로 밟혀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도 구겨지기도 하고 짓밟히기도 하고 때론 찢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100달러 지폐는 구겨지고 밟혀도 그 가치가 변치 않듯, 여러분의 가치 역시 여전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아울러 이 돈을 미국 사람이 가져도, 대한민국 사람이 가져도, 멕시코 사람이 가져도 그 가치는 같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나? 자네가 실패해서 너덜너덜해졌어도 자네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거야. 자네가 비록 지금 진흙탕에 있다 해도 자네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니 힘내라는 거지.
여보게!
찢어진 돈도 은행에 가져가면 새 돈으로 바꿔주는 걸 알고 있지? 세상은 실패한 자를 향하여 손가락질할 수 있지만,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돌아오기만 하면 ‘너는 여전히 가치 있고, 너는 여전히 내 자식이다’ 하신다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보게나. 둘째 아들은 분명히 실패자였네. 가지고 나간 돈을 다 탕진했으니 망한 자였지. 세상은 그를 사람 취급도 안 했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얻으려고 했지만, 주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네.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살더라도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는 것밖에는. 그렇게 결심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 아버지가 종 취급했던가? 아들은 ‘저는 이제 아들이 아니라 종입니다’라고 해도 아버지는 “무슨 말이냐?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다.” 하며,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으니 우리가 잔치를 열자’(눅15:22~24) 하지 않았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이 대학 떨어졌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결혼에 실패했다고 ‘너는 이제 내 자식 아니다’라고 하겠나.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오니 다시 아들의 권세를 회복한 것처럼, 은행에 가면 찢어진 돈도 온전한 것으로 바꿔주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회복되네.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고,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더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거든(시34:18).
지금 자네가 할 일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거야. 찢어진 돈을 들고 은행에 가는 일부터 해야 해. 은행 문은 시간이 되면 닫지만, 하나님은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신다네.
주님은 말씀하시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찢어진 채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어서! 회복의 핵심은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니까. 그러면 희망찬 2026년이 될 걸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