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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광채가 있을까?

1303호 · 2025-04-27
세상을 보는 창

나에게도 광채가 있을까?​

언젠가 금식을 했을 때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고 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의 빛이 우리에게서 더욱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27:17).

1900년 중국 청나라에 의화단 사건이라고도 부르는 북청사변이 일어났다. 이 사변을 일으킨 농민들은 청나라를 도와 서양 세력을 물리친다는 뜻의 ‘부청멸양(扶淸滅洋)’을 외치며 외국인 세력을 배격하였다. 그들은 특히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고 때리고 하였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누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인의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광채가 있었고, 이 광채로 그들을 구분했다는 것이다. 그 험한 시대에 박해를 위한 구분이었지만 기독교인의 얼굴에는 남다른 광채가 있다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광채가 있을까? 누가 그 얼굴을 보아도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 수 있는 기품이 흐르고 있을까? 말을 달리하지 않아도 세상을 압도하는 그러한 광채가 있을까? 하나님과 대면하고 내려오던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있었다(출34:35). 모세만이 아니다. 시편 34편 5절에,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셨다. 주를 대면하는 자, 주를 앙망하는 자는 누구나 광채를 입는다. 그리하여 그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얍복 나루에서 야곱도 그랬다. 야곱은 홀로 어두운 밤 가운데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밤새 씨름하였다. 그때 그는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다(창32:30~31).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얼굴을 대면하게 된 야곱에게는 찬란한 광채가 비추었다. 야곱은 비록 절게 되었지만, 그에게 임한 광채로 능히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봄이 봄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형형색색의 꽃들이 온 땅을 찬란하게 수놓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자.

이정금 전도사

영생에 이르는 길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최근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아이를 선물해주셨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 한편에는 이 아이를 잘 품고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아이를 품은 여성으로서 엄마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가정의 재정 등 마음이 바쁘고 번잡하여 해결해 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신랑은 촬영 감독이라 직업의 특성상 연출 감독의 지명이나 콜이 있어야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데, 새로운 작품의 오퍼가 들어와도 계약 성사 직전에 엎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기도하라는 사인인가 보다’하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그저 마음속에 근심과 인간적인 생각을 가득 채운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기도할 수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바쁠수록 기도해야 하는지, 왜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부터 습관처럼 기도하셨는지를 하나하나 묵상하다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일할 때는 사람이 일하는 것이지만,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시게 된다는 사실을요. 기도하지 않고 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지만, 기도하고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됨을요. 다 목사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씀이었지요. 걱정될수록,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요..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우리 가정과 삶 속에, 그리고 근심과 걱정으로 차있던 우리 마음에 이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많이 바쁘십니까? 고군분투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우리, 그럴 때일수록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삶을 삽시다.

김경현

생명의 말씀

마땅히 행할 바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12:32).

변화하는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다. 시대변화를 빠르게 읽고 정복하여 활용하되, 마땅히 행할 것 위에서 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변화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불변하는 가치들은 반드시 붙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만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며, 선택의 원리여야 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권위’의 중심이 이동했다. 그나마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다가 급기야 성경을 폐기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더 이상 성경의 명령들은 절대적인 진리로서 작동하지 않고, 여러 고대 종교 경전들 중의 하나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같이 존재한다는 성경적 가치관이 권위를 가졌었다. 그러나 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영적인 것은 없고 물질이 전부라는 사상이 주류가 되어 과학이 비로소 최고의 권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더 많은 사상의 진보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과학주의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생각이 현실을 규정하는 시대이다. 인간(나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 최고의 권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니 물리적인 사실관계까지도 인간의 생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내 생각이 규정하면, 나의 생물학적 성별까지도 바꿀 수 있기에 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땅히 행할 바로서의 성경의 권위가, 이제는 인간에게로 이동해버렸다.

지금 우리는 AI(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첨단기술을 인격화, 신격화시켜 인간과 결합하여 일명 ‘하나님 놀이’, ‘하나님 행세’를 하려 한다. 그 순간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는 무너진다. AI기술은 선교적인 잠재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나, 그 이상을 대신하는 우상화 작업은 절대 안 된다. 시세를 알고 적극 활용하되, 마땅히 행할 바로서의 성경 말씀의 명령 앞에 다시 서야 한다. 그 중심이 무너지면 넘어지고 만다. ‘예수중심’의 신앙은 이제 시대적 요청이 되었다.

송직화 목사

내가 매일 기쁘게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흔적

최근 직장동료 두 명이 회사를 떠났다. 직원이 회사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라지만, 이번에 회사를 떠난 두 사람에 대한 주변 반응이 너무 대조적이라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명은 다른 직원들을 위해 여러 시스템을 개발하여 업무 효율을 높여주던 직원이었다. 주변 동료들에게 큰 도움을 주며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 출근일에 찾아와 떠나는 길을 축복해주었고 아쉬움을 함께 나누었다.

다른 한 명은 그의 이직 소식에 팀 동료들이 몰래 두 손을 번쩍 들고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그의 게으르고 무책임한 업무태도에 주변 평판이 바닥이던 직원이었다. 혹여 사직서를 무를까 봐 그의 마지막 출근일까지 주변 동료들이 조마조마했다는 얘기마저 들려왔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사자성어처럼, 만나면 언젠가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 이치다. 앞서 말한 두 명의 사건은, 가족, 교회, 직장 등 내가 속해있는 다양한 공동체부터,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머물다가 떠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목사님은 ‘내가 떠난 자리에 향기를 남기고 가라’ 하셨고,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도 있듯이,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남기신 향기는 잠시도 흩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진하게 남아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내가 머무른 자리도 예수님을 닮아 아름다운 향기를 남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우리 이 땅에 몸으로 태어나, 무슨 일 하다가 무엇을 남기랴♪’

전호정 집사

rockerjhj@naver.com

한국교회사

한국 장로교의 아버지

사무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마포삼열, 1864~1939)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린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 지방의 복음화에 40년을 헌신한 선교사이다. 평양신학교를 설립하여 최초 장로교 목사 7명을 육성하였고, 숭실대학교 학장으로서 인재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몸소 실천한 초창기 한국의 위대한 선교사이다.

1864년 미국 인디애나주 메디슨에서 출생하여 1888년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1년간 미국에서 교회를 섬기다가 한국 선교사로 지원하여 1890년 1월 26세에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한국 도착 후 3년간 서울에 거주하면서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였고, 틈틈이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 지역을 순회 방문하였다. 1890년 한국 도착 직후 아펜젤러와 헐버트의 평양 순회 전도활동(한달)에 참여하였고, 1891년에는 게일, 서상륜과 함께 3개월간의 2차 전도여행으로 평양, 의주 및 중국 봉천까지 다녀왔다.

1차 선교여행 때 마펫은 평양의 한 여관에 머물렀는데, 여관 벽이 한문 성경으로 도배된 것을 발견하고, 벽에서 성경을 떼어내어 별도 보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장대현교회 건물이 세워지기까지 이 여관에서 예배를 드렸고, 여관 주인 최치량은 평양 복음화에 앞장선 인물이 되었다.

그는 전도여행 도중 서북 지역에 선교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선교할 지역으로 결심했다. 그리고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에 평양 선교지부 설치를 건의하였다. 1893년 마침내 평양에 선교지부 설치가 허가되면서 그는 평양으로 이주하였다.

평양 널다리골에 가옥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평양 장대현교회의 시작이었다. 그는 노방전도와 사랑방 전도를 실시하여 성도가 증가하였고, 1899년 평양 시가지가 보이는 장대현 언덕에 예배당을 건립하고 초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장대현교회는 성도가 늘어남에 따라 산정현교회, 남대현교회, 사창골교회의 개척을 지원하였으며, 평양 대부흥의 시발지가 되었다.

마펫 선교사의 평양 전도 활동에는 많은 수난이 있었다. 노방전도를 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당시 깡패 이기풍에게 두 번의 수난을 당했다. 장대현교회 건축을 하던 중 이기풍 일당이 찾아와 훼방하였고, 두 번째는 교회에 설교하러 가는 도중 이기풍으로부터 습격당해 턱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든든한 한국인 동역자가 있었기에 평양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다. 백홍준, 김성집, 한석진, 서경조, 최치량 등이 그의 진실한 동역자였다.

마펫은 조선사람들을 자기 민족처럼 사랑했다. 그는 선교여행 시에는 조선사람들과 숙식을 같이하고 사랑방을 돌면서 그들을 사귀려고 노력하였으며, 조선의 예법까지도 익히고 특히 한국 음식을 즐겨 먹었다. 그는 어디 가든지 한국인처럼 친밀감을 느끼게 했는데 이런 그를 조선사람들은 ‘마포 목사님’이라고 부르며 아버지처럼 따랐다.

평양에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한국인 사역자의 양성이 필요했다. 마펫은 1901년 평양 서문 밖에 6천여 평의 부지를 구입하여 평양신학교를 설립하였고, 1904년부터 초대 교장이 되어 24년간 4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07년 첫 졸업생으로 7명이 배출되어 최초 장로교 목사로 안수받았다.

마펫은 교육 사업에도 큰 비중을 두고 사역하였다. 1903년 숭의여학교를 설립하였고, 1918년부터 10년간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교장으로 시무하면서 일본의 압제에 맞서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3·1 운동 후 총독부의 성경 과목 폐지 주장에 끝까지 맞서 싸웠으며, 성경 과목을 중지하기보다 차라리 폐교를 결정하였다. 그 후 평양신학교는 1952년 전쟁 중에 대구에서 다시 개교하였고 이후 서울로 이전하였다. 1960년 교단 분리로 인해 현재 장신대(통합)와 총신대

(합동)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는 우리 민족의 독립 활동에도 이바지하였다.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나자 맥큔, 에비슨 등과 함께 이 사건은 날조된 것이며 비인도적 방법이 자행되고 있다고 미국 장로교에 보고하고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데 힘썼다. 1919년에는 장로교 8대 총회장을 맡아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을 찾아와서 오직 조선 민족의 복음화와 독립을 위하여 모든 정성을 쏟았던 마펫은 1934년, 70세로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회로부터 은퇴하고도 계속 조선에 머물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다가 1936년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

1936년,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1939년 10월 24일 75세로 소천하였다.

한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으로 2006년 5월 장신대 캠퍼스에 그의 유해를 이장하였고, 현재 장로교 신학대학교 내 마펫 기념관이 있고 그를 기리는 좌상이 세워졌다. 그는 한국을 떠난 지 7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한국 장로교회에 초석을 놓았고 기독교 교육과 신학 교육, 목회자 양성에 그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게 되었다.

김종춘 목사

kkd9191@hanmail.net

빛이 되리라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오자

올해는 우리가 전대미문의 복을 받고자 기도하고 노력하는 한해이다. 과거에 없었던 전대미문의 복이란 그저 적당히, 뜨뜻미지근하게 준비해서는 절대 받을 수 없다. 이제껏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각오로 철저히 준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러한 복을 내려 주실 거라 생각한다.

작년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어떻게 전대미문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올해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안정된 상태, 즉 우리 영·혼·육의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와 올해는 전에 없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올해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아침 1시간, 저녁 1시간 두 시간 이상 기도의 양을 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고, 이것 자체로 이미 전대미문의 영적 축복을 받았다고 느낀다. 과거 어떤 때보다 매일 더 많이 기도하니 말이다.

이런 영의 축복 다음으로 중요한 게 육의 축복, 즉 건강의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대 초 가장 건강할 때의 체력과 기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 올해 초부터 러닝을 새로 시작해 수영과 함께 1주일에 5~6일은 꾸준히 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씩 늘어가는 체력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해 4월에 생애 처음으로 5km 마라톤에 출전하고, 함께하는 지체들과 완주하게 되었다. 잘 뛰는 분들이 보기엔 짧은 거리이겠지만,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마라톤을 꿈꾸고 도전하게 된 것이 하나님이 경험하게 하신 올해 전대미문의 축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침저녁 기도하고, 저녁마다 노량진 기도처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어떨 때는 정말 뛰기 싫지만 그래도 나가서 3~5km를 뛰고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올해는 편안한 내 삶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전대미문의 영·혼·육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함께 달려나가자.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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