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전하라(막16:15~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위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자,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유언(遺言)은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며, 중요한 요청입니다. 부모의 유언도 귀히 여겨 반드시 지킬 것인데, 예수님의 유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마땅히 그 유언을 받들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바로 예수님의 유언을 받들어 움직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꼼짝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요20:19).
그런 그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전파의 시초이고, 그것은 부활의 핵심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유언은 흐지부지 사라졌을 것입니다만, 부활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유언은 살아있는 명령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고전15:14~15).
부활한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변했습니다. 겁쟁이들이 변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행2:32). 그래서 베드로는 도망가던 비겁한 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과 관원들의 위협에도 담대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보고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행4:2)입니다. 그는 그 도를 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였지만, 그분이 메시아임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야고보에게 나타나 보이시자(고전15:7) 그는 확고한 믿음으로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또한 손과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봐야 믿을 수 있다던 의심 많던 도마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요20:28)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의 유언을 받들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행9),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견디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도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온갖 핍박과 모함에도 불사하고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목회 초에 제가 운영하던 인복유치원 옥상에서 하늘 문이 열리며 예수님을 봤습니다. 내가 직접 봤는데 어찌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부활의 소식을 그저 말만으로 전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시고는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부활의 예수님을 봐서 믿지만, 안 믿는 자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전한답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 힘이나 열심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더욱이 말재주로 되는 게 아닌데요.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오직 전도는 성령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게도 당장 나가지 말고,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8~49).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믿습니다. 자고로 사람들은 보지 않으면 믿지 않거든요(요4:4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것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사랑하신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봄으로 천국이 있음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해외집회에 나가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 역시 그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천국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지난주에 멕시코 살티요 집회 광경을 보셨지요? 거기서 못 걷던 자가 걷고, 호흡기를 달고 살던 자가 호흡기를 떼고 자가호흡을 하며, 못 듣고 말도 못하던 자가 듣고 말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그 기사와 표적을 본 살티요 시민들이 마음이 활짝 열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디까?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맞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예수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일꾼에게 연장을 주지 않고 일하라고 하면 나쁜 주인입니다. 군인에게 무기를 주지 않으면서 전쟁터에 내보내면 나쁜 지휘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좋은 연장이요, 무기인 성령을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자마자 일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으신 후에 일하셨습니다(막1:9~10). 예수님도 성령과 함께 일하셨는데, 우리가 성령 없이 어찌 복음을 전파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그래서 보여주는 목회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내어 보내시며,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7~8)고 당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부활을 눈으로 보게 함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병든 몸이 건강해지고, 병든 기업이 다시 일어나고, 가난한 자가 부유케 되고, 귀신 들린 자가 자유케 될 때 이 복음을 막을 자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연결고리입니다. 부활은 곧 성령 시대를 여는 관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자는 부활을 믿는 자를 넘어 부활을 보여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로 인하여 복음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이고,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도 헛 것이요, 복음을 전하는 일도 헛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나만 누리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목도하게 하여 만천하에 전합시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5~18). 할렐루야!
연장 없이 일 못하고
무기 없이 못 싸운다
증거가 확실해야
증인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