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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으려면

1292호 · 2025-02-09
빛과 소금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으려면

올해 우리 교단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큰 축복을 기대하고 있다. 1월 한 달이 지나간 시점에서 우리는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았으면 좋겠다. 전대미문의 축복!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렌다.

나도 몇 가지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운동이다. 원래 체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닌데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면 저녁때쯤 체력이 바닥이 난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고민하다가 집 앞 놀이터에서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10분을 달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40분을 누워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30분 정도 천천히 뛰고, 16층인 우리 아파트까지 계단을 걸어서 올라와도 할만하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보면서 뛰다 보면 머리가 상쾌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사람의 몸은 참 적응 속도가 빠르다. 앞으로 조금씩 더 늘려나가야겠지만 이렇게 하기까지도 여러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첫째,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였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처럼 뛰어보니 처음엔 춥지만 5분만 뛰어도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고 점점 땀이 흘렀다. 둘째, 아이들의 겨울방학이었다. 운동할 시간은 오전밖에 없는데 초등학교가 방학이니 첫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아직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하루는 같이 나갔는데 걷는 것도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한다. 오전 운동은 당분간 못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학교 도서관이 떠올랐다. 방학 동안 학교 도서관이 아침 9시부터 문을 연다는 공고를 봤다. 아이가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낯설어했으나 사서 선생님이 계시니 괜찮을 거라고 다독이며 보내고 난 안심하고 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너무 일러 도서관에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하루 이틀 가더니 사서 선생님과 얘기도 하고 재밌는 책도 읽었다며 자랑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신다. 핑계 대신 방법을 찾는 자에게 말이다.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목표를 설정했다면 행동으로 옮기고, 난관을 만나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송지혜 집사

찬양과 경배

사랑도 능력이다

최근 나는 말씀을 함께 묵상할 글을 쓰는 작업을 했다. 이번 주제는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 속 예수님은 당신을 증명하는 일을 반복하셨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오직 당신을 통해야만 영생에 이를 수 있음을 끊임없이 선포하시며, 일곱 번이나 표적을 보이셨지만 사람들, 심지어 예수님의 친형제들도 늘 오해와 불신으로 배척했다. 그럼에도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려 스스로 죽음까지 결정하신 이유는 오직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었던 첫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지만, 또 다시 사랑하셨다.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 사랑’이기에 처음 사역을 시작하면서 무작정 ‘내 목숨처럼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었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있듯이 내 마음도 하나님의 은혜로 기쁘게 가다가도 감정을 소화 시키느라 애쓰는 때도 있다. 그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사랑도 능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일이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은 능력의 일이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사랑에도 적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능력으로 십자가 사랑을 완성하셨듯, 나의 사역도 사랑의 능력을 받으면 넉넉하게 해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이제는 어떤 능력보다 사랑의 능력을 받는 종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께 드리는 보답이자 십자가 사랑의 전달자로 나를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김혜리 교육전도사

찬양과 경배

가는 길, 모양은 다르더라도

얼마 전, 중고등부 학생들 몇 명과 함께 스키장에 갈 기회가 있었고, 저는 스노보드를 타는 학생들과 함께 움직이게 됐습니다.

보드는 보통 일어나는 법, 서서 자세 유지하는 법, 앞으로 내려가는 법, 뒤로 내려가는 법의 순서로 배웁니다. 함께 간 학생들에게도 일어나는 법, 일어나서 자세를 유지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유독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해보다가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고 하여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뒤로 일어나서 뒤로 내려가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앞으로 일어나서 내려오는 법을 먼저 익히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 슬로프를 다 내려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저 보드가 너무 어려운데 스키로 바꾸면 안 될까요? 다른 애들은 잘 타는데, 저만 너무 못 타는 것 같아요.’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인데 어떻게 쉽겠냐?’며 조금만 더 연습해보자고 했습니다. 순서만 다를 뿐, 다른 아이들도 뒤로 내려오는 것을 배워야 하니 결국 같은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 학생은 뒤로 내려오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마침내 앞으로 내려오는 법까지 익히고 그날 하루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나대로 하나님이 쓰시려는 계획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내게 없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겠다(딤후2:20~21).’라는 생각 말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살자며 혼자 다짐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윤에녹 생도

생명의 말씀

기도와 노력

평생 동반해야 할 두 친구 중, 기도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일이라면, 노력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눈물과 땀이라는 액체로써 최선을 올려 드리는 행위이다. 앉아서 기도했으면 일어나서 노력해야 하고, 그 반대로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면 앉아서 기도해야 하는데, 한쪽 극단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기가 양쪽 날개가 있어야 몸체라는 그 합이 상승하는 것이다. 한쪽은 좋은 일이고, 다른 한쪽은 부질없다고 나누어 경시하는 것을 성경은 부정한다. 왜냐면 태초부터 영계와 물질계를 선하게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혼과 육체, 둘을 나누어 한쪽을 경시하는 사고가

‘영지주의’라는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이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왔으니 선하지만, 속된 육체를 입을 수 없다 하여 성육신을 부정했다. 그래서 우리도 ‘영적인 지식’만 가지면 영혼이 구원을 얻으니, 더러운 육체는 벗어버리면 그만이라며 무관심하던지 육체의 죄악을 방조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정신은 ‘전체적(전인) 구원’이기에, 사도바울과 사도 요한은 줄기차게 이러한 영지주의 이원론 이단을 경계했다.

왕의 나라에 그 통치가 적용되지 않는 부분은 어느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인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복음으로 확장하라는 ‘문화명령’(창1:28)을 주셨다. 영적 영역뿐 아니라, 타락한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직장, 노동계, 교육계 등 해당 안 되는 영역이 없다. 모든 영역이 예수 이름으로 선해져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유한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시려 노력하신다. 그런데 모든 타락해 가는 삶의 영역들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는데 믿는 자들이 아니면 누가 그 나라를 만들어 가겠는가? 이 사회가 성경의 절대기준을 이탈할 때, 교회와 성도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일침을 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앙생활이란 공중에 둥둥 떠다니듯, 교회 안에서만 나 홀로 유유히 영적인 신선놀음만 하는 게 아니다. 기도했으면 치열한 현실 삶의 전쟁터에서도 타락한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나라와 민족의 정치적 운명도, 성경적 절대기준으로 무장한 믿는 자들에게 맡겨주신, 그래서 노력해야 할 사명이다.

송직화 목사

동행하는 삶

모든 것은 기도로부터

첫째 아이의 겨울 방학식 하루 전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가 다쳤으니 병원에 데려가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가 체육 시간에 다른 아이 머리와 부딪혀 눈두덩이가 안경에 찍혀 다친 것이었다. 급하게 근처 병원에 데려가니 상처 부위가 크진 않지만 깊이 패어서 상한 피부조직을 잘라내고 네 바늘 정도 꿰매야 한다고 했다. 계속 방언기도를 하면서 치료를 잘 마치고 나니 마침 그날 새벽기도를 열심히 한 것이 생각났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일을 잘 처리한 것은 모두 새벽기도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흉터가 생길 수 있다는 의사와 상처 부위 피부 속에 알맹이 같은 것이 만져진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점차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다치게 한 상대방 아이와 사과 없는 그 부모도 너무 괘씸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찰나 아차 싶어 기도했다. 악한 것이 내 마음을 타고 들어왔다는 것을 느끼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속한 우리 교회 청장년부에는 중보기도 모임과 새벽기도가 있다. 중보기도 모임은 주일예배 후 다 같이 모여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서로를 위해 합심으로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다. 처음에는 주일예배를 드리고 왔는데 기도 모임을 또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서 함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쏟아부어 주시는 은혜가 너무 큰 것을 느꼈고, 또 기도가 잘 되는 것을 경험했다. 서로가 나눈 기도 제목이 다음 중보기도 모임 때 응답을 받았다는 간증을 들으면 온몸에 전율이 돋기도 한다. 청장년부 새벽 기도는 오전 6시~7시 ZOOM(줌)을 통해 온라인으로 모여 함께 기도한 후 QT로 마무리하는데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하여 은혜롭고 하루가 더욱 귀하고 풍성해진다.

요즘 목사님께서도 기도를 많이 시키시는데 다들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살겠어요’라는 말이 너무 와닿는다. 기도를 하니 마음에 평안이 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니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로 마음에 동요가 많은데 기도로 성령님과 함께하면 삶이 더욱 귀하고 감사해진다. 기도의 자리가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기도가 잘 되고 내가 살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면, 너무나 귀하고 복된 자리임을 알기에 더욱 기도하게 되는 것 같다. 매일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먼저 기도부터 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마음에 평안과 더불어 전대미문의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더욱 전심전력으로 기도해서 올해 다 같이 그 축복을 함께 받아 누리길 소망한다.

정효경 집사

빛이 되리라

전대미문의 복을 받기 위해

올해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아보자’는 축복의 메시지였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전대미문의 복을 받기 위해서 소원하고 기도하지만, 모두에게 그러한 복이 임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동하는 자만이 그러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이미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다. 노량진 교육관을 기도의 처소로 바꾸면서 기도의 양을 늘리라고 하셨고, 성전 건축을 위해 함께 기도하라고 하셨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해 철저히 준비하라고 하셨고,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역전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또 기도한 건 이뤄질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시고, 방언과 통역의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고 누리며, 내 것을 찾으라 말씀하셨다. 말씀을 듣고 그냥 이해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걸 내 삶에 적용해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성도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임하는 중대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각 교회가 성전을 건축할 때였다. 성전 건축을 위해 건축 헌금도 내고, 봉사도 하며, 적극적으로 기도에 동참하는 자들이 큰 축복을 받는 걸 여러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미 듣고 알고 있다.

올해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으라는 말씀이 선포되었고, 때마침 우리에게 성전 건축을 위한 기도회가 마련되었다. 이를 전대미문의 복을 받기 위한 축복의 기회로 삼자. 몰라서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말자. 행동하고 동참하는 자에게 상상하지 못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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