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 설 것인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만큼이나 큰 화제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다. 그는 세계 1위 부호로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슈퍼팩(정치자금 모금단체)을 설립하고, 약 1,800억 원을 선거 운동에 쏟아부으면서 트럼프를 도왔다. 마침내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되자 그의 기업 테슬라의 주가는 5일 연속 상승해 50% 가까이 뛰었고, 시가총액은 무려 1조 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 자신은 새로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 낙점되기까지 했다. 만약 그가 트럼프의 경쟁 상대를 지지했거나 양쪽 모두를 지지하든지 거부하든지 했다면 그에게 이런 보상들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줄을 잘 선 것이다.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 남겨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하나님을 섬길지, 다른 신을 섬길지 양자택일(兩者擇一)하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롯과 룻은 이름이 모음 한 끗 차이지만, 그들의 운명은 너무나도 달랐다. 롯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떠나라 할 때 보기에 물댄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다가 아내와 전 재산을 잃고 그야말로 쫄딱 망했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속 갈등하게 될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된다. 그러나 룻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자신을 떠나라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며 그녀를 좇아가 마침내 다윗과 예수의 조상이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들에게 동일하게 결단을 촉구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예수를 영접하고도, 성령을 받고도 계속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지는 않은가? 줄을 똑바로 서지 않으면 맨 뒤로 밀려나든지 쫓겨날 수도 있다. 하나님 편과 마귀 편, 예수님 편과 세상 편, 성령의 편과 육체의 편,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신앙에 중간은 없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신혁주 전도사
:: 찬양과 경배: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우리 교회에는 나이 여든의 권사님이 계시다. 총회장 목사님과 40년 함께하셨고, 헌금위원으로도 40년을 헌신하며 교회에 귀감이 되시는 신앙의 어른이다. 그런데 그런 권사님이 많이 편찮으시다. 며칠 전 병원에 가서 뵙고 왔는데 나를 못 알아보실 만큼 약해지셔서 마음이 아팠다. 인사를 나누기도 쉽지 않아 얼른 기도해드리고 싶었다.
“권사님, 제가 권사님 기도해드리려고 왔어요. 기도할게요,” 방금까지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는데 기도하겠다는 말에 권사님은 즉시로 눈을 감으신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당신 자녀들보다 젊은 전도사이지만 나를 신뢰하지 않으시면 절대 보이실 수 없는 모습이리라. 의식은 또렷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심에, 말씀도 못하고 누워계시지만, 그 마음만은 예수님으로 꽉 채워져 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우리 권사님은 평생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신앙을 소유하셨다. 육체가 곤고한 가운데도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것을 보니 더욱 그렇다. 혹시 기회가 또 없을지 몰라 정성을 담아 기도해드리고 나니 권사님이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드셨다.
‘하나님, 제가 무엇이관데 귀한 성도님의 인생 마지막 시간을 축복해드릴 자격을 주시나요.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권사님을 부르시면, 이것이 권사님을 위한 마지막 기도가 된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성도를 보내드릴 수는 없기에 권사님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가는 복 있는 종이 되기를 더욱 힘쓰며 주님이 맡기신 일을 이루어야겠다.
김혜리 교육전도사
수험생들에게 교육 목사가
어김없이 찾아온 수능. 수요예배 후에 중보기도를 하기 위해 어김없이 모였단다. 영상에 가득 채워진 너희들의 이름을 보며, 나는 괜한 설렘과 함께 뭉클한 감정을 느낀다.
혹시 TV에서 바둑기사들이 대결하는 것을 본 적 있니?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던지…. 한 수를 두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좀이 쑤셔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단다. 그런데 그건 바둑을 잘 모르는 내 눈에만 그런 것이고, 실제로 대국 중인 기사들은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는 것이란다. 지금 이 돌을 여기에 두면 상대방은 어떻게 나올 것이며, 그런 상대방의 대응에 또다시 나는 어떻게 돌을 치고 나갈 것인가? 혹시 내가 생각한 대로 상대방이 따라오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이런 각각의 상황을 ‘수’라고 하는데, 고수는 몇 수를 앞서서 내다 본단다. 또한 그 내다보이는 수에 대한 대응책이 많아서 여러 가지 상황에 당황치 않고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하수는 한 수 앞을 내다볼 수가 없고 그 수가 적으니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다가 덜컥 상대방의 덫에 걸려들곤 하지.
인생이라는 바둑판에서 우리는 때로 한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단다. 심지어 잘못된 정도가 아주 치명적이어서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를 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역전시킬 ‘묘수’를 가지고 계시며 심지어 그 수가 아주 많으신 분이란다.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해 난처한 이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수’,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수’, 애굽 병사와 바다 사이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홍해를 가르시는 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일촉즉발의 상황 가운데 ‘평화통일 위한 기도성회라는 수’,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예수의 십자가라는 수’
수능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너희는 이미 충분히 잘해왔단다. 지금까지 노력한 모든 과정이 헛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너희가 선택하는 어떤 길이든,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지혜로 함께하실 것이다. 우리 삶을 위해 아름다운 수를 예비하신 주님께 감사로 나아가 기도하자~!
이현승 목사
믿음이란?
한 달 전쯤, 새벽 기도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왔습니다. 새벽 기도를 하려면 평소보다 최소 2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평소에도 취침 시간이 이른 편이 아니기에 피곤하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렇다고 취침 시간을 앞당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새벽 기상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마음은 있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주 정도가 흘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요한복음 6장을 묵상하는데,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구절을 읽고 의문이 생겼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왜 때때로 갈증을 느낄까?’ 그래서 ‘믿는다’는 단어의 의미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고 신뢰하는 대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조언도 받아들이고 행동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실존을 인정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듣고 행동할 때 그분을 진짜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가끔 마음이 공허하고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말씀을 새겨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내 생각을 따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이 모두 악하다’(창6:5)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버리고 철저히 말씀에 의지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 육신의 생각은 피곤하고 자고 싶지만, 하나님은 깨어 기도하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심으로(막1:35)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저도 제 생각을 접고 새벽 기도를 결단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피곤할 거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출근해서도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늘었고, 하루가 충만하게 느껴졌습니다. 혹시 마음속 갈급함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신뢰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부정과 불신, 염려, 근심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 살 때, 삶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전소희
so2eej@naver.com
‘포괄적 차별금지법’ 바로 알기 1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야엘리는 어릴 때부터 여성스러운 여자였으나, 낮은 자존감에 시달렸습니다. 중학생 때 외모로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한 후, 우울증 증세를 보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사귄 트랜스젠더 친구에게 우울증의 원인이 잘못된 성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학교 상담사를 찾아갔습니다. 학교 상담사는 야엘리에게 성전환을 장려하고, 학교 측에서도 LGBT(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단체와 연결하여 성전환으로 이끌었으며, 가족에게는 숨길 것을 권했습니다.
야엘리의 어머니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성전환 수술이 딸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회의감을 표하고, 성전환 수술 대신 딸의 정신 건강 상담 치료를 끈질기게 요청했으나 차단당했습니다. 아동복지국은 딸에 대한 양육권을 박탈하고 야엘리를 위탁 가정에 맡긴 후, 어머니와 일주일에 한 시간만 만나도록 허용했는데, 성전환이나 신앙에 대해 언급할 경우, 면접권을 취소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야엘리는 위탁 가정에서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정신 건강이 더 악화되었고, 19세가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크리스천 제빵사는 동성 결혼식과 성전환을 기념하는 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가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대법원까지 간 끝에 역전했지만, 수년간 악의적인 소송과 협박에 온 가족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영국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던 남성은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는 성경 구절을 원용했다가 혐오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형사 재판을 받던 중 고소한 동성애자가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취하되었지만, 2년간 고통을 받았습니다.
캐나다의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트랜스젠더의 여자 화장실 사용에 대한 토론 중 한 소년이 성경적 신앙에 따라 성별은 남자와 여자뿐이라고 밝히고, 남학생(트랜스젠더)의 여자 화장실 사용 반대 발언을 했다가 정학 처분뿐만 아니라 경찰에 체포까지 당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법의 명칭만 다를 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 기원이 같아서 내용도 유사한데, 법이 시행되는 국가에서 보이는 현상 역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우선 한국에는 양성평등기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수십 가지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현행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개정하거나, 추가로 제정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2007년부터 성적 지향(동성애, 양성애, 제3의 성 등), 성 정체성(트랜스젠더 등)을 대상으로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발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법을 제정하려는 진짜 목적은 ‘사회적 성’을 법제화하여, 남녀로 구분되는 생물학적 성별을 기초로 한 기존 가치체계를 해체하고, ‘사회적 성’을 기초로 한 가치체계로 대체하는 사상, 즉 젠더 이데올로기가 모든 국가기관과 법과 제도를 통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성’은 종류가 수십 가지가 넘으며,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남녀 이외의 제3의 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라는 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7월 18일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연방 대법원의 유사한 판결 2년 후,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나왔고, 현재 미국 29개의 주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법이 한번 통과되고 나면, 그것을 돌이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정명관
v-777@naver.com
기한과 때
과거에 책을 출간해 보려고 애쓰던 때가 있었다.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구해서 작성한 원고를 첨부해 보내며 여러 곳에 출간 제의를 했다. 출판사가 제법 많아서 200군데가 넘어 보였다. ‘이 중에 적어도 한 곳에서는 선택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 곳, 스무 곳씩 꾸준히 이메일을 보냈다. 때마침 기도원집회가 있어서 기도원에서 기도도 열심히 했다. 하나님 뜻이면 좋은 곳에서 꼭 연락이 오게 해달라고 하며 말이다.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고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결과는 처참했다. 200군데 넘는 출판사 중 단 한 곳에서도 내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한동안 낙심도 되고 좌절감도 느꼈지만, 왠지 모를 오기도 생겼다. ‘그래, 부족한 것 잘 보완해서 다음엔 반드시 뚫어내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여러 길을 모색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도 쓰고 유튜브 방송도 하면서 점차 팔로워들을 늘려갔다. 어느덧 나를 강력히 지지해주는 팬들이 제법 생겨났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다. 블로그/브런치/유튜브의 내 팬층을 어필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세 군데 출판사에서 자기와 같이하자며 경쟁적으로 제안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곳 중 한 곳과 출간 계약을 했고 마침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2년 전의 나는 원고만 있었지 설령 그때 책이 나왔다고 해도 그 책을 팔아낼 스스로의 역량이 없었다. 그래서 2년의 기간 동안 하나님은 나를 더 준비시키셨다. 지금 와서 보면 고통스러웠지만 꼭 필요했던 훈련이었다. 내 때와 하나님 때가 다르고, 나에게 가장 좋은 때를 가장 정확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당시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보이는 거다. 범사에 기한과 때가 있는 법. 하나님은 늘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꼭 잊지 말고, 그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준비하고 감사하며 기도하자.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