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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1279호 · 2024-11-10
깊은 곳에서의 울림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어느 봄날, 사과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만개했습니다. 아름다움에 취한 사과나무는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에게 소리쳤습니다. “제발 내 곁에 오지 마! 작년에 너 때문에 꽃이 다 떨어졌어!” 바람은 잠시 멈칫했지만, 사과나무의 소원을 존중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과나무는 바람이 돌아오지 않자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꽃가루가 날아야 수정이 이루어지는데 바람이 없으니….” 사과나무꽃은 점차 시들어갔고, 바람이 없는 탓에 수정되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 사과나무는 결국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천둥, 번개, 태풍이 있어야 생태계가 살아나듯, 인생에 바람과 비가 내리는 것도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고난을 통해 성장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의 목회 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그 속에서 늘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고 연단을 통해 지혜를 얻었다고 고백하시는 목사님.

어느 교회의 사모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첫 번째로 겪은 고난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갑작스러운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사모님은 세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첫째, 이 땅의 썩어질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둘째, 천국 소망을 품고 주를 위해 살겠다고 서원하자 사모의 직분을 맡겨주신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깊이 깨닫게 되셨다고 합니다.

저 또한 고난이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모든 것이 나의 믿음을 단련시키신 주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는 욥의 고백이 일평생 제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비바람이, 더는 폭우가 몰아치고 있나요? “고난이 유익이라”(시편119:71)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크신 계획을 기대합시다! 훗날 멋진 추억담이 될 것을 믿고,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김진실 사모

생명의 말씀

율법과 복음

하나님에 대한 무지한 열정은 목사님 말씀처럼 ‘화로 없는 불’과 같아서 열심을 내면 낼수록 위험해진다(잠19:2). 신앙생활을 감정으로 하기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풍성하고 바른 지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최근 한 TV 고발프로그램에 등장한 한 기독교단체가 시끄럽다. 율법과 복음에 대한 오해의 결과가 낳은 부작용이다. 지금은 율법 시대가 아니라서, 율법이 폐기되었으니 규범과 책임 없이 살아도 되는 게 복음이 말하는 자유가 아니다. 신약시대에도 ‘영지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복음을 무너뜨렸다.

성경이 ‘율법과 복음’으로 구성된 것은, 서로 충돌되고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를 중심으로 형태를 바꾸신 것이다. 율법이라는 명령 속에 복음을 심어 넣어 십자가를 갈망케 하셨고, 복음이라는 약속 안에 율법을 심어 넣어 사랑으로 계명을 순종케 하셨다. 율법과 복음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니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둘 다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래서, 바른 복음이 들어가면 율법을 절대로 폐기하여 버릴 수가 없는 거다(갈5:13).

에덴동산 사탄의 언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을 왜곡하게 만들었다. 선악과 계명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짐처럼 느껴지도록 질문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뛰어넘도록 유도했다. 바로 ‘율법주의’와 ‘율법 폐기주의’다. 이 두 가지 오해가 하나님을 왜곡하는 제일 무서운 적이다. 창세 이후로 사탄은 이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일한다. 이 둘은 마치 같은 자궁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와 같기에, 그 병을 치유하는 약은, ‘바른 복음’뿐이다! 예수라는 새로운 언약(복음)만이 치유제다!

복음의 기본은, 원인 모를 은혜의 경험이다. 은혜가 우선되어야 계명들을 경외와 기쁨으로 순종케 만드신다. 그런데 선악과 사랑을 율법의 짐처럼 부정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 억지로 행하니 양과 수치로 환산하여 각종 억압과 인간 자랑만 넘쳐난다. 반대로 율법을 폐기해버리니, 죄책감 없는 죄악의 방종만이 난무한다. 이 모두 십자가 사역을 모독하는 일이다. 복음을 아주 값싸고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린 거다. 참된 복음이 먼저 나타나야 율법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축은

‘예수 중심’이다.

송직화 목사

한국 교회사

감리교 첫 의료 선교사

윌리엄 스크랜튼 선교사(시란돈 1865~ 1922)는 1885년 4월 28일 제물포에 입항, 5월 6일 최초의 감리교 첫 의료 선교사로 부인(암즈), 어린 딸, 그리고 어머니(메리 스크랜튼)와 함께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예일대와 뉴욕 의대를 졸업한 수재로서 개업한 의사였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이 땅에 왔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가우처 선교사로부터 한국 선교의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수락하지 않았다. 그 후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하다 병이 나으면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한국 선교의 동기가 된다.

서울 도착 후 처음에는 제중원에서 알렌을 돕는 일을 하다가 선교회 부동산을 매입한 후 그곳에 자신의 가족과 아펜젤러의 주택을 마련하였고, 서민을 위한 의사로 그해 9월 자신의 집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 소식은 서울에 삽시간에 퍼졌고,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주자 환자가 더욱 북적거렸다. 1년간 혼자서 치료한 환자 수만 무려 2,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것이 1887년 고종으로부터 시병원으로 명명된 정동병원의 시작이다. 1년 동안 진료한 환자가 842명이었고, 진료 수입은 34달러 83센트였다. 하나님이 주신 의술로 인술을 베풀었다. 그는 진료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병원에 남아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후 스크랜튼은 어머니(메리 스크랜튼)와 1886년 이화학당과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동대문병원 전신)을 설립했다. 스크랜튼은 4대문 안에 거주하는 양반 중심의 선교활동에서 벗어나 과감히 서민을 위한 사역으로 방향을 바꾸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몸소 실천하였다.

1886년 그의 연례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느 날 오후 도성을 따라 걷는데 가마니 한 장 깔고 구걸하는 모녀를 발견했다. 그들은 풍토병에 걸린 환자였으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스크랜튼은 그날 저녁 그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와 잘 보살펴서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였다.”

이 일이 스크랜튼으로 서민을 위한 의료 활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스크랜튼은 ‘민중이 있는 곳에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888년 일반 서민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서대문 애오개(현 아현교회), 남대문 상동(현 상동교회), 동대문 지역(현 동대문교회)에 시약소(현 이화여대 동대문병원)를 설치했다. 동료 선교사들은 스크랜튼을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다.

스크랜튼은 1890년대 초 한국의 민중과 함께 복음 사역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당시 한국 민중 활동의 중심지였던 남대문 주변에 병원과 교회를 설립했다. 1894년에는 일반 서민들이 많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동병원을 아예 상동으로 옮기고, 병원 내에 교회라 할 수 있는 상동교회를 설립했다. 이 상동교회가 바로 한국 사회 민족운동의 요람이다. 병원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친 스크랜튼은 한국 민족을 가난과 무지, 병고와 미신에서 해방하고 이들의 영혼과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다.

이후 이곳에 상동교회가 민족 활동의 중심지가 되며, 전덕기, 신석구, 최성모, 오화영, 이준, 이회영, 이시영, 주시경, 이동휘, 김구 등 민족 지사가 이 교회에서 배출된다. 특히 상동교회 6대 담임 전덕기 목사(1875~1914)는 애국지사들과 함께 을사늑약 무효 상소 운동, 헤이그 밀사 사건 및 신민회 조직 등, 민족 활동의 장소로 상동교회를 활용하였다. 이곳에서 활동한 독립지사를 상동파라고 부른다. 이처럼 상동교회는 한국 근대 애국과 독립운동의 본산지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민중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힘썼던 선교사 윌리암 스크랜튼이 있었다. 스크랜튼은 감리교회의 감리사로 목회 사역으로는 1892년 서울지역을 담당했고, 1901년에는 서울 및 경기 남부 지방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그리고 의주, 평양, 원산, 대구, 전주, 공주 등지에 산재해있는 감리교 선교사업을 총괄하면서 전체를 감리하는 총감독직을 수행하였다. 교회일 뿐 아니라 정동의 시병원, 상동과 애오개의 진료소, 정동의 보구녀관 등의 일을 돌보았고, 이에 더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교육까지 감독했다.

또한 초기 성서 번역사업에도 참여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1907년 한국 선교를 관장하는 해리스 감독(일본 거주)의 친일적인 정책에 반대하여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그 후 몇 년간 구세군 및 성공회 소속으로 의료 활동을 지속하고, 천안 등에서 독립적으로 의료 선교활동을 지속했다. 1909년 어머니 간병을 위하여 서울에 요양원을 설립하였고, 1911년 평북 운산, 그리고 1913년 충남 직산에서 금광 부속병원의 노동자를 돌보았으며, 개인병원인 시란돈 병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스크랜튼은 어머니(메리 스크랜튼)와 함께 개척 선교사로 한국에 와 감리교 선교사 사역 20년, 선교사직 사임 이후 개인 사역 10년 등, 총 30년의 한국 생활을 마감하고 서울을 떠났다. 그의 나이 60세였다. 1916년 사위가 거주한 대련에서 1년간 머무르다 1917년 일본 고베로 건너가 고베 해성병원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고베에는 한인 노동자가 많았기에 한국어에 능통한 그는 그들을 돌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베에 거주하다가 1922년 3월 23일, 65세의 일기로 소천하였다.

스크랜튼과 친하게 지낸 노블 선교사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유언을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그는 죽음을 그렇게 엄청난 사건으로 보지 말라는 듯이, ‘죽음이란 마치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문을 통해 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병든 자에게 건강을, 고통받는 자에게 평안을.”

(누가복음 4:18).

스크랜튼, 그는 한국 땅에서 주의 말씀을 실천하고, 한국의 가난한 서민을 위해 헌신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복음 전도자였다.

김종춘 목사

kkd9191@hanmail.net

Good News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주인이 있고, 그것을 만들거나 값을 주고 산 주인은 그에 대한 사용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 값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사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며,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참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담대한 이유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생복락의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죽음이 닥쳐오면 하루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믿음이 있는 자들은 언제라도 이 땅에 보내신 분이 돌아오라고 명령하시면 돌아갈 곳이 준비되어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꿈꾸지만 아무것도 갖고 가지 못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만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뜻대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과 생명마저도 주님의 것이기에 주인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요,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참된 깨달음

감사와 소중함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축구팀 주장이 되었다고 해서 뒷바라지 겸 경기장에 따라갔다. 경기가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에 있던 핸드폰을 자리에 휙 던져놓고 뛰쳐나갔다. 콘크리트 바닥에 수십만 원짜리 핸드폰이 나뒹구는 광경이 이해하기 힘들고 충격적이었다.

얼마 전엔 공부에 필요하다고 해서 스마트패드를 사주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집에 밥 먹으러 왔길래 스마트패드는 가지고 왔냐고 물어보니 독서실 책상에 올려뒀다고 한다.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물어보니, 다들 가지고 있어서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고 태연히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 풍족한 시대를 살아서 소중함과 감사를 모르는 것일까? 부모가 고생해서 번 돈의 대가를 무시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생각해보니, 부모에게 달라고만 하면 쉽게 받을 수 있기에 소중함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죄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길 원하실까? 감사히, 소중히 섬기길 바라지 않으실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값없이 구원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공짜로 받았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아이들이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언제든 다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뜨거움이 식더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금방 성령 충만할 수 있다는 착각과 자만심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겠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송명국 집사

songmk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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