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순종하고 계시나요?
즐겁게 순종하고 계시나요?
신입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듣는 이야기가 있다. “생도가 신학원에서 배울 것은 결국 순종이다.”
하나님과 총회장 목사님께 순종하는 법.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듣고, 발길이 닿아 경험한 것이 다 훈련이라고 하셨다. 내 자아가 형체 없는 가루가 되어야만 주인이 쓰기 좋은 그릇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다. 나도 세 번째 성적표를 받고 나서 확실히 깨달았다. 성적표의 점수는 ‘실력을 넘어선 순종의 척도’임을. 우리 신학원의 학기는 전쟁처럼 치열하다. 과제로 늘 시간에 쫓기고,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는데, 무엇보다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이 훈련(과제)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그러나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군사는 선택권이 없기에 그냥 해야 한다.
학생의 노력은 성적표로 알고, 신앙의 척도는 순종에서 드러난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나님은 순종을 제사보다 기뻐하는 분이시니까 믿음으로 드리는 순종이 최선인 줄 알았다. 내게 상 주시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계22:12). 그러나 최근 강의에서 배운 ‘즐거운 순종’은 내게 새 도전을 주었다. 목회자는 내게 맡겨진 영혼들에게 순종을 즐거운 일로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그 비결은 바로 사랑으로 전하는 ‘복음’이다.
내가 처음 복음을 받아들인 순간, 날 구원해주신 그 감사와 감격을 되찾을 때, 우리는 순종을 즐겁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즐거운 순종을 하기 원하는 내게도 복음의 감격이 새롭게 채워지길 소망한다.
김혜리 교육전도사
감사 미소
우리 교회에 ‘감사 미소’란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감: 감사합니다. 사: 사랑합니다. 미: 미안합니다. 소: 소중합니다.’라는 뜻이다.
감: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은혜로 번역되는 ‘카리스’는 ‘감사’란 뜻도 있다. 즉 은혜와 감사는 하나이다. 은혜를 알면 감사하게 되고, 감사한다는 것은 은혜를 안다는 것이니 서로 감사하면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다.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은혜를 모르니 감사 대신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사: 사랑의 말을 해야 한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4:6) 하셨다. 미움이나 원망의 말은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지만, 소금이 녹아 짠맛을 내고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을 녹여 사랑으로 하는 말은 모두를 유익하게 한다.
미: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미안합니다.’ 하자.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sorry(미안합니다)와 thank you(고맙습니다)이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 하니 분쟁이 있을 수 없다.
소: 내가 소중하다면 상대도 소중하다. 내가 상대를 소중히 여기면 상대도 나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래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는 말씀을 황금률이라 한다. 세상에 그 누구도 멸시받기를 원하지 않고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7) 하셨다.
지혜롭고 때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와 같다’(잠25:11). 거친 말이나 이기적인 말은 같은 말로 되갚음 당하지만, 온유하고 사랑의 말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한다.
2024년 우리 교단 슬로건이 ‘우리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자’이다. 이제 원망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하시고, 미움을 버리고 ‘사랑합니다.’ 하자. 책임 전가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하자. 그리고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상대도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면 내가 속하여 있는 공동체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할 것이다.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문제 해결의 열쇠
최근 제가 속한 단체에서 사람들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는데, 오해가 해소되지 않고 쌓이다 보니 자그마한 언행도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다 몇몇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상대가 오해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오해할 권리가 있다. 반대로 우리도 그 사람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진정하고 상대의 입장을 한번 들어보자.” 총회장 목사님이 늘 하시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먼저 오해로 생긴 분노를 가라앉히고, 서로 터놓고 대화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대화가 사라지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된다.’는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만나 솔직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더 커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대화하면 할수록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의 구조가 다르고, 대화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습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 악의가 없다는 믿음이 생겼고 오해가 풀리며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화하지 않고는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지난 기도원 집회 때 기도로 오해를 푼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피부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던 중 예수님이 나의 병을 위해 채찍에 맞으셨는데 그동안 나는 예수님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다음 날 오전예배 때 이시대 목사님이 똑같은 주제로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이후로 다른 어떤 문제보다 건강 회복을 우선순위로 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나요? 하나님 말씀대로, 그리고 목사님께 배운 지혜의 가르침을 좇아 진실한 대화를 통해 묶인 문제가 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전소희
so2eej@naver.com
선한 영향력
대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미국 선교사님이 설립한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채플(예배)이 필수과목이었고, 학과마다 신우회가 조직되어 있었으며, 주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정오가 되면 학교 중앙에 크리스천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학생 중 크리스천의 비율은 여느 대학과 다르지 않았고, 총학생회장과 각 단과대의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조직을 갖춘 운동권 계열의 비기독교인이 주로 당선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총학생회는 교직원 노조와 함께 대학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다수 학생들의 뜻과 상관없이 강의실의 책걸상으로 학교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높이 쌓아놓고 총파업을 주도했습니다.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학생들의 수업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독교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가 고사를 지내려고 시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크리스천 학생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모여 더 기도하기 시작했고, 일부 크리스천들이 학생회를 직접 운영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2학년이었던 저에게도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와서 선거팀에 합류했습니다. 총학생회장과 2개의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에 후보를 내고 선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에서 많이 보던 음해와 비방이 난무해 억울한 일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기에 그들처럼 상대를 비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실하고 깨끗한 방법만을 고수한 끝에 제가 소속된 단과대에서 우리 선거팀이 학생회장단으로 당선되어 학생회 임원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크리스천들로만 구성된 학생회가 세워졌고, 학생회가 진행하는 모든 일과 모든 모임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만큼 학생회 활동으로 어떠한 사적인 이익도 취하지 말자고 결의하고, 학생회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까지 자발적으로 모두 학우들을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학생회에 부여된 재정 또한 낭비되지 않도록 애쓰고, 때마다 학우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학우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학생회에서 섬겨주고, 온통 술판으로 얼룩져있던 기존 학교 축제 문화와 다르게 학생들이 술 없이도 즐기고 쉴 수 있는 공간과 문화를 만들어 좋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 학생회의 조직은 작았지만,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고, 다른 크리스천 학우들에게도 우리의 헌신이 본이 되어 각자 속한 곳에서 여러 방법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학교의 학생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졌을 때도 이러한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데, 나라의 각 분야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수장으로 세워진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습니다(빌2:13). 목사님과 그를 따르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평화통일을 이루어주실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 시대에 우리 교단에서 각 분야의 수장과 통치권자를 세워주실 것입니다.
평화통일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각 분야의 수장으로 세워지기까지 훈련받고 있을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올리실 때, 총회장 목사님의 이 진실된 고백을 기억하시고, 주님을 힘입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는 늘 우리 교단의 성도들 중에서 통치권자를 비롯한 각 분야의 수장이 배출되기를 기도한다. 왜? 우리 교단의 이름을 높이려고? 그들 덕을 보려고? No. 그런 사심(私心)은 내게 없다. 내가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높아지기를 바라고, 더불어 그들을 보고 많은 자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를 바랄 뿐, 다만 우리 교단은 그것을 이루는 통로가 되겠다는 것이다.”
정명관
표정 관리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든,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든 표정 관리를 하며 살아왔다. 철이 들지 않았을 때는 일부러 불편한 마음을 상대에게 알리려 표정으로 티를 낸 적도 있었고, 그게 통해서 상대가 내 요구를 들어줬다 생각했지만, 그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철이 들며 알게 되었다.
결혼생활에서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표정관리가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여보, 나한테 뭐 기분 나쁜 거 있어?” 당황했지만 “아니, 그런 거 없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사실 불만은 있었으나 괜히 긁어 부스럼 일으키지 말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자 생각하며 나름 표정 관리를 하던 차였다. ‘이상하다~ 분명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는 내 표정에 다 드러난다며 뭐 때문인지 되물어 그간 속 얘기를 하여 오해를 모두 푼 적이 있었다.
나중에 거울 앞에 서서 못마땅한 마음을 감춘 아무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표정을 해보았는데, 놀랍게도 거울 속 내 얼굴은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 이런! 표정 관리가 하나도 안 되고 있었구나!’ 그제야 아이들이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할 때도 ‘왜 화가 나있냐’ 고 묻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선팅되지 않은 차처럼 나는 속을 모두에게 보이며 살았던 것이다.
어쩌면 내 영혼의 표정도 나는 관리를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모두에게 드러나 보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평안하다’ 말하지만 불안한, ‘충만하다’ 말하지만 허약해진, ‘감사하다’ 말하지만 불만족스러운 영혼의 표정이.
과연 지금 내 영혼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박찬영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