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그 날을 고대하며
영광의 그 날을 고대하며
“하나님 아버지! 이 양 떼들의 모든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28년 전의 집회 영상 속에서 들려온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 소리였다. 지금도 이 기도 소리는 여전하다. 목사님은 집회와 예배 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성도들의 꿈에 찾아가서까지 안수하여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신다. 많은 성도들이 그렇듯 나 역시 목사님이 꿈에 찾아오셔서 사랑의 경책과 가르침의 말씀으로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고, 또 때로는 손을 얹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주시며 상하고 지친 영·혼·육을 치료해주신다.
세상 부귀와 명예를 다 누리던 목사님이 모든 것을 초개처럼 버린 채, 죽음을 앞세우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님은 간증하신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사지가 마비되었을 때도 회개하여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더니 순간 깨끗하게 고침 받았다고 말이다. 이 밖에 수없이 많은 간증들과 목사님을 통해 일으키신 기사와 표적들은 목사님의 삶에 새겨진 예수님의 흔적이자 당신의 종을 이 시대 사도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동행의 기록이다.
목사님이 지나오신 40년 목회의 길은, 오직 기도로 만든 작품이다. 환난과 핍박,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수없는 난제 앞에,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기도함으로 한걸음 씩 전진해오신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일도 하리라”(요14:12)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이 길을 걸어오신 목사님은, 또한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제자와 성도들이 나타나기를 소원하시며 우리를 가르쳐오셨다. 화려한 문벌과 학벌, 명예를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앞에 있는 구원과 상급의 푯대를 바라보고 영광의 레이스를 완주한 사도 바울처럼, 목사님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뛰실 것이고, 우리 또한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는 주를 위한 수고가 절대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고전15:19, 고전15:50~58). 목사님과 우리 인생의 목적이 예수가 되게 하신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이국진 사모
내게 주어진 자리
오랜 기간 중고등부 교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가 내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했기에 사명에 부도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있는 자리를 지켜라.’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가치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신학도의 길을 가면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충성’임을 깨달았고, 그 충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순종’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자들은 순종들이 쌓여 성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고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를 만들며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쉬웠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실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주어진 일에 순종했고, 결국 그 순종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는 일부분이 됩니다.
우리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셨기에 오늘의 예수중심교단이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오늘도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이루길 원하시는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해주신 지금까지의 삶이 있기에 앞으로도 제 삶 속에 함께하며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어느 자리가 주어지든 제 자리에서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실천하려 합니다(시139장).
윤에녹 생도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기
최근 비행기 난기류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행기 난기류가 더욱 무서운 이유는 위험 상황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이 흔들림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상황의 문제를 알고, 또 어느 정도 이 상황을 컨트롤하고 대처할 수 있는 기장님과 승무원분들은 승객과 다르게 참 차분해보입니다.
종종 이렇게 무지는 두려움을 만들어냅니다. 겪어보지 못한 문제가 삶에서 일어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감당해보지 않은 크기의 파도가 내 삶에 찾아올 때 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데 그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깨우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라고 꾸짖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에서 오히려 이 폭풍에 대해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알고 있었던 것은 어부 일을 했던 제자들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두려워했고, 예수님은 전혀 두려워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도 순종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걸 몰랐고, 예수님은 그것을 잠재울 수 있는 역량이 당신에게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행적을 다 봤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제대로 몰라 폭풍 속에서 두려워합니다. 마치 그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내 삶을 이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시인하고, 예수님이 나와 항상 동행하신다고 말하지만, 실상 이런 폭풍이 오면 쉽게 두려워합니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데 예수님은 뭘 하고 계신 거냐며 다급하게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압니다. 우리가 이 폭풍으로 인해 흔들릴지언정 다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폭풍 속에서도 주무시고 있는 주님은 우리 믿음을 보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문제가 왔을 때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바람도, 파도도 순종시키고, 폭풍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합시다.
장수정
기도의 양이 떨어지면 안 돼!
평상시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며 예수 이름으로, “귀신아, 가라! 가라! 가라!” 쫓은 후, 거실에서 찬송가 한 장을 부르고, 성경책 한 장을 읽고, 기도 30분을 한 후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갈급한 작정기도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 30분이 저의 하루치 기도 분량이었죠.
하계산상집회를 다녀온 후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미약할지라도 삶에 분명한 변화를 만들자고요. 그 시작은 밤에도 30분씩 기도하기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겠으나 습관이 자리 잡히지 않은 저에게는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루 이틀은 잘 실천했지요. 하지만 3일을 못 가더라고요.
3일째 되는 날, 퇴근하고 저녁 먹고 운동하고 샤워하고 잠깐 쉬다 보니 어느새 시곗바늘이 밤 11시를 향해 갔습니다. 원래라면 기도하고 자야 할 시간이었죠. 그런데 그날따라 점심시간에 읽기 시작한 책이 너무 재미있어 조금 더 읽고 싶더라고요. 침대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그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 졸리면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 거라는 걸요. 분명 기도원에서 매일 밤 30분 기도하기로 결심했는데 어쩌지 싶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에이 모르겠다, 간단하게 기도해도 하나님이 다 이해해 주시겠지.’
예상대로 한 시간쯤 책을 읽다 보니 졸음이 쏟아져 전등을 끄고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읊조렸죠. “오늘 하루도 함께해주시고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걸 기도로 퉁 치고 잠들었습니다.
그날 새벽, 꿈을 꿨습니다.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데 이시대 목사님이 저의 침대맡에 와서 걸터앉으시더니 아주 선명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기도의 양이 떨어지면 안 돼!” 그 말만 하시고는 방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가위에 눌려 몸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순간 저의 등 뒤로 어떤 여자가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고, 어느 순간 목소리가 툭 나오고 몸이 팍 풀리면서 깨어났습니다. 그 즉시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지요.
저는 부르짖고 애통하며 기도하는 날도 있지만, 마치 숙제하듯 억지로 기도하는 날도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는 날도 있지만, 잡념이 가득하여 기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식의 질 낮은 기도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지 않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일기를 쓰며 깨달았습니다. 꿈에서 목사님은 저에게 기도의 ‘질’을 높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기도의 ‘양’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하셨죠. 비록 질이 좋은 기도가 아닐지라도 날마다 시간을 들여 기도의 분량을 채우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라도 기도하다 보면 부족하고 연약한 자녀의 기도를 돕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미지근하게 시작했던 기도가 뜨겁게 달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건 기도하지 않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죠. 꾸벅꾸벅 조는 한이 있어도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자가 복되듯, 어찌하든 매일매일 기도의 분량을 채우는 자가 복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아빠, 아버지!/font>
예수 이름을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1:12). 하나님의 법으로 인정받은 천국 시민권자요, 하나님의 호적에 등록된 자녀들입니다. 그 사실을 성령께서 증거하십니다. 세상에 권력자, 재력가, 유명인들을 아버지로 둔 자식들도 떵떵거리며 사는데, 하물며 그 모든 인간을 지으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우리는 어떠할까요? 진실로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된다면 말입니다.
작년 2월, 저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어느덧 혼자 걷기도 하고, 말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도원에 봉사하러 내려간 날, 아이가 자는 새벽에 집에서 나와 온종일 봉사하고 저녁때가 돼서야 집에 연락해보았습니다. 얼굴도 볼 겸 영상통화를 걸었는데, 자려고 누워있던 아이가 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빠!”를 연신 외쳐대며 벌떡 일어나서 휴대폰 쪽으로 쫓아왔습니다. 그 짧은 사이에 ‘아빠’를 10번은 더 불렀을 겁니다. 휴대폰 너머에서 그토록 아빠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제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찡하기도 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렇게 부르짖으면 마음이 기쁘시고, 감동하시겠구나!’
또 하루는 설교 준비를 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아이가 자꾸 옆에 와서 안아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엔 못 본 척하고 계속 기도했더니 표정과 목소리까지 불쌍한 척을 하며 안아달라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아서 아빠가 설교 준비를 다 하고 안아주겠다고 약속한 뒤 다른 곳에 가서 놀게끔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노나 싶더니 다시 와서 안아달라고 조르고, 다시 보내면 또다시 와서 졸랐습니다. 결국 제가 안아주고 나서야 아이는 제 품에서 만족했습니다. 그때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위해 얼른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는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자기의 요구사항을 끝없이 아빠에게 요청했고, 결국 저는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고, 인생 전체를 책임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 삶뿐 아니라 영혼까지 책임지십니다. ‘나의 아버지’ 찬양의 가사처럼 간절히 두 손을 잡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로 아버지를 부른다면, 그 한마디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나의 모든 심정을 헤아리시고 보살펴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 아버지께 나의 필요를 간청하고, 또 간청한다면 오래 참지 않으시고 속히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니까요!
이호민 전도사
fioe154@naver.com
할 수 있다는 생각/font>
최근에 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래픽카드를 새로 교체하려다 보니 먼저 전원을 인가해 주는
‘파워’ 성능을 높여야 했다. 적정 사양의 파워를 알아보고 직접 교체해보려는 마음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배달된 파워를 보니 무게도 많이 나가고, 크기도 크고, ‘이게 조립이 잘 될까?’라는 생각에 왠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날을 잡아서 호기롭게 교체에 도전했다.
그러나 막상 본체를 열고, 전선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그제야 깨달았다. 기존 배선을 탈거부터 해야 하는데 좁아서 손도 잘 안 들어가고, 어디에 뭘 연결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구나. 됐다. 그만하고 어디 맡겨야겠다.’ 결국 포기 수순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다고? 이미 구매한 건 어쩌고?’ 등등 이런저런 생각으로 갈팡질팡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기도원 가서 목사님 말씀 듣고 왔잖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고 다시 시도하자.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며 다시 시도했다. 신기하게 마음을 바꾸고 반드시 해낸다는 생각으로 시도하니, 막혔던 실타래가 하나둘 풀려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교체에 성공했다.
교체하고 PC가 다시 잘 작동하는 걸 보니 기쁨과 성취감이 밀려왔다. 중도에 포기했으면 느끼지 못했을 마음이다. 아무것도 아닌 컴퓨터 부품 교체 하나도 내 생각이 어떠한가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어떤 생각으로 그 문제를 대해야 할까? ‘난 하나님의 자녀야. 이번 일도 난 반드시 해낼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둘 헤쳐 나가며 전진해가고 싶다. 포기하지 말고 맞부딪쳐 싸워 이겨내자! 그래서 우리,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자!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