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신호등
거리마다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가끔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차량이 있다. 당연히 딱지를 떼고 벌금을 물고, 자칫하면 대형참사를 낳는다.
마음에도 신호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신호등이다. 양심이 ‘가라’할 때 가야 하고, ‘서라’할 때 서야 하건만,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해버리면 경고를 받고, 대형참사로 이어진다. 아담이 그랬다. 아담은 분명히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마음속의 적색 신호등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무시했다. 그로 말미암아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었고, 대형사고를 쳤다. 사울 역시 그랬다. 사무엘상 13장에 사울이 사무엘 대신 제사를 드린 장면이 나온다. 그때 사울은 분명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지했고, 망설였다. 하지만 ‘에라~’ 하며 달려버렸다.
당연히 딱지를 떼었다. 사무엘이 그를 나무랐고, 하나님은 그의 왕 되심을 후회하시고 그에게서 왕위를 빼앗으셨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8:7). 고린도교회 성도 중에는 우상의 제물인 줄 알아 양심에 거리낌이 있지만, 그래도 그냥 먹는 자가 있었다. 그 결국은 믿음에서 파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추석이다. 늘 말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일은 절대 안 된다. 한 가정의 며느리이고, 장손, 가장이라도 어쩔 수 없다.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상 차리라고 돈을 내놓는 그런 것들에 찔림이 있는가? 마음의 신호등에 적색불이 들어왔다는 증거다. 그럴 때는 뒤에서 빵빵거려도, 옆에서 그냥 가라고 해도 무조건 서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님이, 더욱이는 문중에서 ‘네 이놈~’ 해도 달리면 안 된다. 딱지를 떼시는 분은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양심은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무나 신호등을 세우는 것이 아니듯, 양심의 기준 또한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 마음의 신호등을 따라 살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올곧을 수 있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