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
예전부터 일기를 쓰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많이 들으면서도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었다. 조금 쓰다가 그만두고 한참 있다가 다시 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아마도 일기를 쓰는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 가을쯤 나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평소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떤 일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고, 말씀을 보고,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이 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바쁜 일상에서도 주님을 의식하고 동행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일기에는 하루를 사는 동안 주님과 함께한 흔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나 감동한 말씀, 또 내가 반응한 말과 행동, 깨달은 것 등등…. 그렇게 기록하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루하루가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 한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일기는 나만 보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직 어리지만 장차 나의 두 딸에게 내 일기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 때론 부끄러운 고백도 담겨있고 나의 실수와 허물과 부족한 부분들도 있지만, 내가 주님과 동행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앞으로 딸들이 나의 일기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다음 날은 더 주님 뜻대로 살아보리라 다짐도 하게 된다.
물론 아직은 매일 쓰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꾸준히 쓰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도록,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데에는 일기가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송지혜 집사
열심이 성공으로 이끈다
강철왕 카네기는 어린 시절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전신전화국의 전보 배달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간혹 유명한 사람들의 우편물이 주소 없이 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자기 배달 구역의 유명 인사들의 이름과 주소를 외워 실수 없이 정확한 배달을 했다.
그 결과 봉급이 2달러 25센트가 인상되었다. 훗날 세계적인 부호가 된 뒤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 평생에 그때처럼 감격스럽고 기뻤던 적은 없었다.”
작은 일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열정이 카네기를 성공의 자리에 서게 했다.
목사님이 늘 말씀하신 것처럼, ‘과정은 결과를 대변하지 못하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한다.’ 우리가 과정에 열심을 갖고 충실해야 할 이유다.
목사님은 매 주일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빨간판, 초석언(言)을 보내신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다. 점검 부재가 사고의 원인이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하자. 남에게 맡기면 사고 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솔로몬도 잠언을 통해 권면한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사도 바울 또한 기록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부지런과 열심의 결과는 성공, 나태함과 게으름의 결과는 실패이다. 부지런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김상욱 목사
무질서가 팽창하면, 무너진다
무더운 여름, 수련회 및 하계산상집회를 통해 우리 영혼의 상태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경영은 관리요, 관리는 곧 점검’이라는 말씀처럼, 내 신앙도 관리와 점검으로 경영해야 한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전10:18). ‘부지런히 관리 점검하지 않으면 멀쩡하던 집도 고장 나고 무너진다’고 말씀하신다. 내 영혼도, 신앙도, 건강도, 관계도, 교회도, 사업도, 가족도, 모두가 관리 점검할 때 건강해진다.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은 긴장감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이며, 질서를 잡아 나가는 일이다. 질서가 곧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믿는 자는 질서 안에 애써 거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집중하는 것보다 흐트러짐을 선호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눕고 쉬기만 하면, 편안은 하겠지만 결국 건강이 무너진다.
‘엔트로피 법칙’, 곧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가 점점 더 커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이론이다. 마치 작은 녹이 점점 그 쇠 전체를 잡아먹고, 적은 누룩 하나가 온 덩어리에 퍼져 버리듯 말이다. 무질서를 그냥 내버려 둔 결과다. 규칙적인 예배와 습관적인 기도와 말씀 묵상은, 나의 신앙을 하나님의 질서 안에 묶어두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간섭과 질서가 싫어서 점점 멀어지는 인간들은, 무질서가 곧 자유인 줄로 착각하다가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의 간섭에서 벗어나, 인간이 그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인류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질서를 배척하며 각종 인간의 탐욕들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숭상하고 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창조주가 정해놓은 질서들을 전복시켜 처단하고, 자유를 쟁취한 듯했으나 결국 무질서가 증가해 혼돈만 가중되고 있다. 이번 파리올림픽이 개막식부터 불편했던 이유이다. 어린 자녀들이 보기에도 낯 뜨거운 장면들을 연출하고, 성경과 기독교를 조롱 섞인 패러디로 우습게 만들어 놓고는 포용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고 둔갑시켰다. 무질서의 끝은 결국 붕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송직화 목사
언성히어로(Unsung Hero)
박지성을 평가하는 별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두 개의 심장’이지만, 그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붙여준 별명은 ‘언성히어로(Unsung Hero)’였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란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칭송받지 못한 영웅을 뜻한다. 본인이 화려하기보단 동료들을 빛나게 해주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을 도맡아 해주었던 박지성에게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붙여준 별명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수련회를 시작으로 성경캠프를 거처 2주간의 산상집회까지, 뜨거웠던 2024년 여름의 한 페이지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마무리되었다. 연속되는 강행군 속에 우리 교단의 ‘언성히어로’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성하며, 자신을 불태웠다.
아름다운 기도원을 조성하기 위해 동분서주 피땀 흘린 ‘목사님, 장로님, 신학생’들, 자신보다 학생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교사’들, 쾌적한 수련회를 제공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수련생들을 섬긴
‘연합회장단’, 자비량하여 기도원의 곳간을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 ‘전국의 성도님’들과 더운 여름 뜨거운 불 앞에서 식사를 도맡아 챙겨주신 ‘권사님, 집사님’들….
그리고 ‘성전 미화, 안내위원, 기획실, 방송팀, 음향조명팀, 헌금위원’ 등등 미처 언급하지 못한 예수중심교단의 수많은 언성히어로들은 최선을 다해 성도님들을 섬겼고,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그 가치를 총회장 목사님도 알고 계시기에, ‘머리가 가는 곳에 손발도 같이 간다. 내가 대통령 궁에 초대되었을 때 우리 일행이 함께 대통령 궁에 갔던 것처럼.’이라며 우리도 목사님 상을 함께 받는다고 누누이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 목사님과 언성히어로들이 원팀(One Team)으로 똘똘 뭉쳐있기에 우리 교단이 늘 승리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여름이었다.
10월 9일에 있을 제12차 평화통일 기도성회에도 언성히어로들의 대단한 활약을 기대해본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전호정
rockerjhj@naver.com
그리움의 향기
어린 시절,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듣기만 하고 거기에 한마디도 동조하지 않았음에도 험담한 친구가 자신이 한 말을 제가 한 것처럼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험담의 대상이 된 친구와 심하게 틀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오해를 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그 일 이후로 앞에서든 뒤에서든 남에 대해 비하하거나 험담하는 사람은 멀리했고, 피할 수 없는 사람이 남을 비하하거나 험담하려고 할 때는 대화의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도록 유도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후로 저를 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에서든, 차에서든 늘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틀어 놓으셨는데, 남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어느새 마음 깊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남의 단점에 대해 험담하거나 비하하는 자리를 멀리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기를 조금씩 실천해나갔습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말이 조금 어눌하여 놀림의 대상이 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무리가 장난삼아 그 친구를 놀렸는데 그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다른 아이들도 함께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분이 나빠도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늘 주눅 들어있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그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그의 장점을 칭찬해주고 어눌한 말투일지라도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그와 다른 반이 되었고, 이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 강의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출석을 확인하셨습니다. “유ㅇㅇ!”,  그 친구가 생각났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 동명이인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쳤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누군가 다가와 저를 부르며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그 친구였습니다. 그는 그때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가 저와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모르는 사이에 학과의 다른 친구들에게 저에 대해 고등학생 시절 있었던 좋은 일들만 골라 소문냈고, 덕분에 처음부터 친구들이 좋은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저 그 시기를 스쳐 지나가는,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무관심하게 지나쳤다면, 그 친구에게 저 또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의미 없는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를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고, 무언가 바라고 한 행동도 아니었습니다만, 그 친구 한 사람에게 보낸 작은 호의가 훨씬 큰 보상으로 저에게 돌아왔으니 깜짝 선물을 받은 듯했습니다. 그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리움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저에게도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찾을 수 없거나, 소천하신 분들은 더욱 그립습니다. 그래도 기도가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분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 그리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가슴 벅찬 소망이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을 생각하면, 교회에서 단에 서시는 모습을 늘 뵙는데도 그립습니다. 그리워서 찾아가면, 더 따뜻한 사랑으로 보듬어주시니 뵈면 뵐수록 그리움이 더 깊어만 갑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생각만 해도 진한 그리움으로 추억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치고 외로워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의 사랑으로 품다 보면, 어느새 예수님처럼, 목사님처럼, 그리움의 향기 가득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그 그늘 아래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정명관
v-777@naver.com
문제를 해결하는 법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축복을 주셨다. 내게 주어진 자유로 ‘생명과 복’을 선택할 수도 있고, ‘사망과 저주’를 선택할 수도 있다. 교회를 다니지만, 세상 죄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동으로 내가 죄를 짓지 못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자녀들에게 세상과 맞서 싸우라고 하셨지, “싸울 필요 없게 해줄게.”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5:8~9).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의 어려움, 경제적인 문제, 병에 시달리는 고통 등 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아는 방법이 있다. 기도처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해결을 구하고 있다면 세상과의 한판 승부를 선택한 사람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분명 나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다. 반면, 사람들에게 내 어려움을 호소하고 동정과 해결을 구하고 있다면 세상과의 싸움을 포기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정욕대로 내버려 두신다.
이번 하계산상집회는 매일 4시간 이상 기도 시간이 주어졌다. 내게 닥친 문제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해결을 구했다. 마지막 날 성령세례 예배 때 눈물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성령님이 알게 해주셨다. 내가 기도원 가기를 선택했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세상의 문제 앞에서 내 선택은 항상 기도의 자리임을 다짐해 본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신30:15~16).
송명국 집사
songmkoo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