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사랑이다
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의 저서들 가운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성령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있었다. 율법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성령을 받으면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변화가 무엇인지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 그 대략적인 내용을 기술해보면 이러하다.
어느 집에 사춘기 또래의 딸이 있었는데, 엄마가 집안일로 바쁜 중에 설거지 좀 하라고 시켰더니 요리 뺀질거리고 저리 뺀질거리며 도대체 말을 듣지 않는다. 심지어 때로는 엄마 말에 이 핑계 저 핑계로 토를 달며 툴툴거린다.
그러던 중 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겠단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남자친구가 오는 날이 되자 엄마가 집안일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매일 늦잠 자던 딸이 그날따라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안 청소를 말끔히 해놓고, 설거지에 심지어 빨래까지 세탁기에 돌리며 집 안 전체를 깔끔히 정돈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잘 보이고 싶은 남자친구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거 해라, 저거는 하지 말아라’ 하는 성경 말씀에 고개를 저어대던 자가 어느 날 성령을 받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원해서 교회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전도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성령이 찾아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더 이상 명령에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사모하는 심령으로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독처하는 아담을 안타까워하시며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들어 붙여주셨다(창2:18). 하나님도 고독을 아시는 거다. 그래서 창조하신 인간과 가까이하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외주하시며 동행하는 것보다 아예 우리 안에 오셔서 언제나 함께하시길 원하신다. 독생자 아들을 죽여서까지 우리 인간과 함께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이 성령의 임재라는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문밖에 서서 항상 두드리고 계신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성령의 사랑은 강요하는 강제적 사랑이 아니다. 오직 그분을 열렬히 사모하는 자에게 조용히, 그러나 뜨거운 사랑으로 다가오신다. 회개한 깨끗한 심령에 찾아오신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성령은 사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