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기도원에 계시는 장로님이 탈이 났다. 하필 그때가 기도원 공사 중이었고, 그분이 포클레인 담당인지라 솔직히 일이 순조롭지 못했다. 그 장로님은 그런 상황이 불편하고 미안했던 모양이다. 내게 ‘좀 나아졌으니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장로님에게 말했다. “이 일보다 중요한 게 장로님입니다. 여기 걱정일랑 말고 몸을 추스르세요.” 그런데 이 말을 곁에서 들은 성도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열 마디 조언보다 한 번의 배려가 낫네요.”
그렇다. 실수한 아랫사람에게 다시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보다 따스한 미소를 보내는 것이 먼저다. 상처 입은 친구에게 충고보다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미는 것이 낫다.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괴로움에 싸여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와 어떤 충고도 하지 않고 그저 물고기를 구워 조반을 먹게 하시지 않았던가. 또 욥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니라 따스한 위로였지 않았을까.
배려(配慮)의 배(配)는 ‘짝’이란 뜻이 있고, 려(慮)는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을 의미한다. 즉 배려는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의 표현으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배려의 의미는 이것이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롬15:1~2).
교회 안에서 나이 드신 분이 편한 곳에 앉을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 초보운전자 뒤에서 빵빵 클랙슨을 울려대지 않는 것, 양손에 짐을 든 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열어주는 것, 장애인을 우선 생각하는 것, 대중시설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핸드폰 소리를 낮추는 것…. 이런 것들이 배려이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배려가 마치 시냇물이 흘러 강이 되고, 강이 바다가 되듯, 아름다운 사회, 멋진 세상을 만든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거대한 서치라이트만 빛이겠나. 어두운 밤에는 반딧불도 빛을 내더라. 추울 때는 신문지 한 장도 보탬이 되더라. 이 힘들고 각박한 세상에서 내가 베푸는 작은 배려, 작은 위로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