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품격은 언어에서
신앙의 품격은 언어에서
탈무드에 보면 한 임금이 시몬과 요한을 불러 명령한다. 시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요한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구해 오라고 한다. 시몬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구해온 것은 사람의 혀였고, 요한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구해온 것도 사람의 혀였다. 가장 귀한 혀가 가장 큰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한마디 말로써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마디 말로써 전쟁이 시작되기도 한다. 사람의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 가운데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라는 말이 있다. ‘말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위대한 능력이다.
평범한 사람은 인생의 1/5을 말하는데 보낸다고 한다. 하루에 하는 말을 책으로 묶으면 평균 50페이지, 1년에 하는 말을 묶으면 적어도 100권의 책이 나올 것이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언어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즉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낙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육부서 새내기 전도사일 때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들려준 말이 아직 마음에 있다. “전도사님, 저는 하나님 없이는 1초도 살 수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많이 아팠거든요.” 하나님 없이는 1초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해머로 맞은 기분이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하늘나라로 갔지만 지금도 가끔 이 어린 친구의 말과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하고 불렀던 찬송이 가끔 마음에서 올라와 하나님을 더욱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했고, 우리 목사님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람 앞에 서게 되면 우리 언어도, 자세도 달라질 것이라 말씀하셨다.
세상에 돌이킬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 흘러간 세월, 그리고 입에서 나간 말이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자신의 언어를 한번 돌아보자. 말은 곧 나 자신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말, 품격 있는 언어는 하나님의 향기를 담아내는 가장 확실한 통로이다.
이정금 전도사
삶 속의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기도원에서 인공폭포가 만들어진 곳 주변에 있는 죽은 나무들을 옮기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큰 나무, 작은 나무, 얇은 나뭇가지, 죽은 낙엽들 등 적지 않은 양의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큰 나무들을 치우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업해보니 큰 나무들은 정리하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큰 나무들의 가지들이 그물 역할을 해주어 다른 나무들 또한 손쉽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을 더디게 한 것은 아주 얇은 가시나무들이었습니다. 얇아서 손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얇은 몸에 난 작은 가시로 작업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모두 걷어내었고, 그때 비로소 아름다운 바위가 드러나고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땅이 만들어졌습니다.
‘인생에서 제거해야 할 죄의 모습 또한 이 나무들과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죄들은 너무나 명확히 죄라는 것을 알기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가 용이하다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심코 습관적으로 지나가는 죄들은 작은 가시가 되어 우리 삶 이곳저곳에 박힌 채 우리를 괴롭힙니다. 습관이 되어 오히려 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습관적인 죄들마저 걷어냈을 때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살전5:22, 막9:43~47).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큰 자가 되기 전에 깨끗하고 정직한 자가 돼라.’, ‘녹이 철에서 나서 철을 잡아먹는다.’고 하십니다. 삶 가운데 반복되는 죄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끊어내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을 온전히 이루어내길 간절히 원합니다.
윤에녹 생도
모르는 것은 물어보라
“예수 열 받으셨도다/ 예수 열 받으셨도다/ 예수 열 받으셨도다. 나는 자유해~”
중학교 때 이제 막 성령을 받고 금요철야예배를 나가기 시작할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축도해주시기 전, 두 손을 높이 들고 고백하는 찬양 가사의 내용이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왜 열 받으셨지?’
지금처럼 화면에 찬양 가사를 띄어주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남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인지라 물어볼 수도 없어서 귀를 기울여 다른 성도님들의 찬양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아하! 이제 알았다. ‘예수 열 받으셨도다’가 아니라 ‘예수 널 바꾸셨도다’구나. 예수님의 은혜가 날 바꾸셨구나. 암요, 암요, 맞구 말구요.”
혼자서 여전히 틀린 가사에 나름 은혜를 받으며 그 후로도 한참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찬양 가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예수 결박 푸셨도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
목사님이 그토록 반복해서 알려 주셨건만, 정작 저는 안다는 생각만 있고 행함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총회장 목사님께 직접 보고드릴 사항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 조심스럽게 보고사항에 첨언하여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귀찮게 해드리는 것은 아닌지, 혹 ‘이것도 모르냐?’ 하고 핀잔을 듣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목사님께서 메시지로 답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직접 전화를 주셔서 친절하고 따뜻하게 제가 여쭤봤던 것에 답을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조금의 귀찮아하심도 없이 정성껏 답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대처하기 난처했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도 이와 같은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야 어떠시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로 여쭤서 중학생 시절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이현승 목사
노방전도의 열매
얼마 전 청장년부서에서 노방전도를 진행했습니다. 주일예배 후 노량진교육관 근처를 돌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 신문을 접어서 과자와 함께 비닐에 동봉해서 예수를 전하며 나눠주었습니다. 2~3명씩 나눠 뿔뿔이 흩어졌고, 저와 함께한 지체 둘은 큰길보다는 골목길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교회 신문을 보고는 이초석 목사님을 잘 안다고 하시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20년 전에 우리 교회를 다녔고, 기도원 집회도 오셨던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요즘 귀신이 자꾸 나타나서 본인을 괴롭힌다고도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 설교 내용이 귀신 쫓고 병 고치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유튜브에서 꼭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같이 교회 나가자고 말씀을 드렸죠.
그랬더니 이 근처에 어떤 교회가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말씀인가? 다른 교회가 있다는 건가? 우리 교회가 여기 있다는 건가?’ 잘 이해가 안 돼서 같이 한번 가보자고 했죠. 5분 정도 함께 걸어가니 우리 교회 노량진 기도처가 거기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도 기도처가 그분이 사는 집 바로 근처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처에 붙어있는 전도사님 연락처로 연결해서 성도님과 연결해드렸습니다. 전도사님께서 열정적으로 관심 가져주시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바로 그 주 수요저녁예배부터 주일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계속 잘 나오시고 있답니다. 8월 기도원 집회도 벌써부터 너무 가고 싶어하시고요. 할렐루야!
청장년부 지체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번 노량진 노방전도를 그분 때문에 하게 된 것 같다고요. 하나님이 그분을 사랑해서 우리를 그분께 붙여 주신 것 같다고요. 혹시, 노방전도에서 아무 열매가 없다고 느껴지신 적이 있나요?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역사는 늘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 작은 발걸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하고자 하는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지치고 낙심하지 말고 복음의 씨앗을 뿌려봅시다. 하나님의 뜻하신 때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예요.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