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한때 자서전을 쓰다가 덮어버렸다. 완벽하게 쓰려다 보니 자꾸 나를 미화하는 위선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 솔로몬처럼 참회록이나 쓰자 하고 덮었다.
완벽주의는 외식과 위선을 낳는다. 바리새인들처럼. 주님은 바리새인을 향하여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마23:27).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신앙인이었다. 금식도 잘했고, 십일조도 잘했고, 기도도 열심히 했고, 율법을 다 지키는 완벽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에 불과했다. 그들의 십일조에는 의와 인과 신이 없었고, 그들의 기도에는 교만이 가득했고, 그들 마음에는 돈이 좋아 탐심이 가득했고, 자신들의 판단으로 남을 정죄했다. 그들은 위선 덩어리였다.
외식(外飾)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경계하셨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8).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마6:1).
그러고 보면 나는 굉장히 자유스러운 목사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 하고, 한 일은 했다고 한다. 내가 목사랍시고 늘 거룩한 척, 경건한 척, 흠 없는 완벽한 사람인 척하려면 얼마나 피곤하고, 얼마나 위선을 떨어야 할까.
외식을 하는 이유는 사람을 의식해서다. 그래서 구제할 때 사람들이 다 알게 떠벌이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목청을 돋우고 기도하고, 금식하면 일부러 꾀죄죄하고, 초췌하게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해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의식하면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구제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금식에 임한다. 왜냐?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는 하나님
(시139:2~3)을 믿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외식과 거짓을 낳을 뿐이다. 진실은 오래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