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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목적

1262호 · 2024-07-14
To Be Succeeded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목적

한 탈북 자매의 이야기다.

탈북 후 복음을 접하고 밤낮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그녀는, 같은 탈북 청년 형제와 결혼하여 함께 전도사와 사모로 헌신하게 되었다.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하루 두 끼 금식과 온밤 철야를 하나님께 서원하고 하루하루 지키며 사는 그녀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 공동체를 힘 있게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예수 믿는 것이 발각되어 잡혀 들어간 중국과 북한 내 감옥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했다. 감옥 안에서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권능으로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 감시하는 간수들조차 함부로 그 사역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조차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담대하게 증거한 그녀는 마치 스데반이 순교하던 때처럼 해같이 빛났다고 그녀를 통해 예수를 만나게 된 탈북민들이 증언한다. 이후 복음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들이 지금은 주의 종들이 되어 남북한의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자신을 구원하고 생명 주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한 자매를 통해 주님이 하신 일이며, 그녀의 면류관이요, 상급이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그러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더니 생명을 바쳐 복음을 증거하는 순교자가 되었고, 살인자요 포획자였던 사도 바울도 예수를 만난 후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며 예수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목숨조차도 아끼지 않는 자가 되었다. 사도들과 무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로마와 전 유럽으로 복음이 전파되었고, 지금도 곳곳에서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있다.

개개인의 삶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과녁의 정 중앙점은, 바로 내 영혼 구원이며, 또한 삶 가운데 예수를 자랑하고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 값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구원받은 우리가 살아갈 모습이다.

나는 오늘,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이국진 사모

오늘의 메시지

늦은 시작은 없다

미국의 어느 노인이 은퇴 후 노인 클럽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에게 봉사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그림을 배워보시면 어떠세요?”

“에이~ 70이 넘은 나이에 무슨~, 그림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어!”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 연세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이 더 문제 같은데요?”

봉사자의 말에 생각을 바꾼 할아버지는 곧바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할아버지는 101살에 22번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가 바로 ‘미국의 샤갈’이라 불리던 미술가 ‘해리 리버맨’이다.

그는 말한다. “나이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게 바로 삶입니다.”

우리는 늙거나, 늦어서 할 수 없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을 뿐이다.

목사님도 70이 넘으셔서 그림을 시작하여 벌써 100점이 넘게 그리셨다고 말씀하지 않나? 또한 75세의 연세에도 수많은 집회와 해외 선교를 통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몸소 보여주시고 있다.

혹시 ‘이미 늦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으니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도전을 시작하라.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아 100세에 이삭을 출산했다. 모세는 80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당당히 말했다.

너무 늦은 시작은 없다. 믿음으로 도전하고 출발한다면, 바로 그때가 가장 빠른 때임을 기억하자.

김상욱 목사

낮은 울타리

재테크, 근테크, 기테크!

최근 ‘근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근테크란 근육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노후를 위해 근육을 모아놓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재테크를 통한 자산 관리가 노후에 금전적인 안정을 준다면, 근테크는 근력 운동을 통해 육체적인 안정을 줍니다. 한 아산병원 노년 내과 교수는 ‘노후에 연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육’이라고 표현하며 의료비 파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30대 중반부터 매년 약 1%씩 감소하는 근육량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한 달 전부터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5분이라도 나가서 걷자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그다음 주에는 20분, 그다음 주에는 40분, 그리고 지금은 걷기 운동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근력 운동도 함께 하여 한 시간 넘게도 거뜬히 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 검사해보니 운동을 하기 전보다 근력도 붙고 체지방도 줄어 더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비록 시작할 땐 5분 걷기였지만, 그 시간들이 모여 운동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고, 그것들이 저의 근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재테크와 근테크 모두 잠깐 반짝하고 끝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길게 끌고 가는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재테크, 근테크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테크(기도 + 재테크)입니다. 기도는 내가 바빠 삶에 여유가 없을 때도 내 선택과 신앙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신앙생활의 근력이 됩니다. 노후보다 더 중요한 사후를 책임지고, 더 건강한 영과 혼을 책임집니다. 운동처럼 처음에는 5분도 힘들지만 나중에는 기도의 맛을 알게 되어 1시간도 거뜬히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는 모르지만 그것들이 쌓여 기도의 독이 넘쳐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몸소 체험하고 변화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테크도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작정 기도 기간에 잠깐 하는 기도가 아닌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구하는 기도. 총회장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습관 따라 하는 기도’가 나의 영적 건강과 사후를 책임집니다.

여러분들은 노후와 사후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장수정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불안

‘무지’는 불안을 동반합니다. 캄캄한 동굴, 깊은 바닷속이 두려운 것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합니다. 귀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귀신을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더럽다고 이야기합니다. 귀신의 정체를 명확히 알면 두렵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담대히 귀신을 쫓습니다.

반면 ‘미래’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모두 무지의 영역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찬양 가사처럼 당장 하루 뒤 벌어질 일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사주나 운세, 점에 의지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과학 기술을 자랑하는 시대에 점술 시장의 수요가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실체 없는 무언가에 의지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껴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는 미래를 앞서 점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작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가치에 기준을 두는지에 따라 내 삶은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악한 길로만 가지 않으면 됩니다. 막연한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미래를 점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좇아 순종하며 한 걸음씩 내디뎠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보다 앞서 길을 만들고 발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시며 그를 ‘열국의 아버지’로 세우셨습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게 느껴지나요? 앞길이 캄캄하고 염려되시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하게 삶을 조명합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내려놓고, 빛 되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내딛길 소망합니다!

전소희

so2eej@naver.com

치우치지 않는 저울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신다

외할머니를 전도한 후, 어머니께서 종갓집의 모든 우상을 불태워 버렸는데, 외할머니께서 일가친척의 핍박에 못 이겨 다시 제사를 준비하다가 넘어져 한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외할머니를 불신앙의 환경 가운데 둘 수 없어 6남매 중 막내인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외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셨고, 매일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와 기도 녹음을 틀어 놓고 일생 중 가장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외할머니의 제일 간절한 기도 제목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녀의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외할머니께서 인생의 마지막을 기도하면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시고, 복음의 불모지였던 가문에서 처음으로 장례예배를 드렸습니다. 외할머니 생전에 믿지 않는 자녀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을 보시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장례예배를 통해 일가친척이 복음을 듣게 되었으니, 그것으로도 감사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작은 외삼촌은 오래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같은 병에 걸려 수차례 병원에 실려갔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지만, 외삼촌과 외숙모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외삼촌의 병이 더욱 악화되어 급기야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외삼촌의 호흡이 끊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외삼촌을 그렇게 보낼 수 없으니 의식을 깨워서라도 예수님을 영접시켜야 한다며, 차 안에서 애타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하나님이 외삼촌을 깨어나게 하실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의 감긴 눈을 열고, 총회장 목사님께 배운 대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깨어나라고 몇 차례 명령하자 갑자기 외삼촌이 눈을 번쩍 떴습니다. 외숙모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고, 의식을 되찾은 외삼촌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다른 환자의 보호자도 깜짝 놀라며, 어머니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 외삼촌은 가족들과 평안히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외삼촌의 장례예배에 일가친척들이 모였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가문에서 두 번째 장례예배를 드리게 되니 참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 더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는데, 수년 전 외할머니의 장례예배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친척이 하나둘 생겨났고, 어머니께서 맨 처음 복음의 씨를 뿌렸던 둘째 이모의 가정에서 목사님이 된 분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하셨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니 감격스러웠습니다.

지난날 어머니께서 일가친척들에게 온갖 핍박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함께 기도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생전 외할머니께서 자녀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애절하여 안쓰럽기도 하고, 언제쯤 그 기도가 이루어질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제가 모르는 사이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일가친척들을 하나둘 예수님께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신실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복음의 씨를 뿌리고 계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눈물을 절대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때보다 더 완벽한 하나님의 때에, 내가 바라는 방법보다 훨씬 더 극적인 방법으로 약속하신 그 말씀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정명관

신앙에세이

털어내다

작년부터 전에 없던 증상들이 몸에 나타나 한의원을 가보게 되었다. 한의사는 내게 그동안 있었던 증상들을 모두,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증상들까지도 다 말해보라고 했다. 경청하는 자세에 나는 기억 깊숙이 잊혀가는 증상들까지도 다 털어내었다. 한참을 들은 후 한의사는 한의학적 설명을 하며 자신과 함께 하나하나 고쳐나가 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날 집에 와서는 별다른 치료나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마음은 벌써 다 치료를 받은 것같이 후련했다.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가 편하게 내 말을 다 들어주어 증상에 따른 나의 염려와 걱정까지도 털어놓았는데, 모두 경청한 후에 함께 고쳐나가 보자는 그 말 자체는 이미 힐링이었던 듯하다.

어쩌면 내 곁의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경청하며 다 들어주고,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길 함께 기도해보자 하면 될 것을, 내 말을 안 들어서 그렇고, 내 말만 들으면 된다고 한 것은 아닌지.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고,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힘들어져, 아예 그 속사정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또 내 모든 속사정에 귀 기울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 행복한 크리스천이다. 기도로 내 모든 것을 아뢸 수 있는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가 마음을 털어놓을 때, 성령님이 말씀하시지 않을까.

“그래, 그것 또한 함께 헤쳐 나가보자.”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66:19~20).

박찬영 집사

cross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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