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쓴소리가 약입니다
내게 쓴소리가 약입니다
작년, 교통사고가 나서 목사님께 기도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귀신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 당한 교통사고가 귀신 때문이라 생각해본 적 없었던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2년 전 신문을 통해 ‘2018년에 났던 교통사고를, 죄 가운데 있던 나를 깨닫게 하시려는 주님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회개하였더니 영적 회복을 하게 되었다.’라고 간증했었기 때문이지요. 모든 안 좋은 일의 원인이 ‘귀신’ 때문임을 망각한 저를 깨닫게 하신 목사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몇 주 전, 여러 일들로 인해 번뇌하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답답함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자 결국 주님 앞에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주님, 도대체 뭐가 문제지요? 기도도 해보고, 이겨내려고 노력해봐도 나아지질 않아요.” 한참을 꺼이꺼이 울던 제게 들려오는 총회장 목사님의 음성, “귀신 때문이다!” 순간 저는 울음을 그치고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폐일언하고 원인은 나를 죽이려는 ‘귀신’ 때문인데, 인간적인 생각에 휩싸여 원망과 자학의 나날을 보낸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귀신 때문임을 인정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속에 있던 귀신을 쫓아내자, 짓눌렸던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기쁨이 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귀신은 우리 안에 들어와 가난하게 만들고, 병들게 하고, 싸우게 하고, 망하게 하는 마귀의 졸개들이다. 오늘도 쫓고 내일도 귀신을 쫓아라!” 40년 동안 변함없이 외쳐오신 목사님의 말씀을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음에도 인간적인 방법들을 먼저 생각했던 저였음을 자백합니다. 몸이 아플 때 약을 먹는 것도, 마음이 괴로워 상담받는 것도 죄는 아니겠습니다만, 우리는 각색 병과 모든 안 좋은 것들의 원인이 바로 ‘귀신’ 때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귀신을 쫓고 내일도 쫓으라 하시면서 분명히 우리에게 귀신을 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반드시 영육 간에 잘 되고, 건강하고, 잘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것을 믿습니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13:32).
김진실 사모
결단하는 신앙생활
성경은 신앙생활을 결혼에 비유한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 신앙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뿐만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다. 사랑만으로 가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뜨겁게 사랑하면서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겨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랑이 식어가고, 다른 곳으로 눈과 마음이 쏠려 마침내 이런저런 이유들로 헤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신앙생활도 그렇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는 뜨겁게 신앙생활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식어가면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릴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하리라’, ‘어떤 단점이 보여도 품으리라’, ‘눈에 씌운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도록 사랑하리라’. 신앙생활에도 그런 결단이 필요하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이야기한 여호수아의 결단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좋아하시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바로 초지일관(初志一貫), 항구여일(恒久如一)이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그 뜨거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목사님 또한 삶 가운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결단함으로 마지막까지 이어가길 원하시는 것처럼, 나 또한 목사님을 본받아 결단한 것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길 소망한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4).
이은성 생도
첫 단추의 중요성
한 통의 상담 전화가 왔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어느 구도자 청년이었다. 온통 성경이 믿어지지 않는 내용들로 가득하다는 거였다. 이해가 안 되어 여러 문제들 앞에서 고전하고 있단다. 그는 유튜브를 보며 이런저런 잡다한 성경 지식을 습득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 상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신학대학 교수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고, 여러 목사님들에게도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는 거다. 그저 믿으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권면했단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통해 우리 교회를 알게 되어 전화했다. 나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고, 본인의 선택에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해주었다. ‘믿으려 말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겸손히 기도하라. 하나님을 완벽히 이해하고 나서 믿으려는 것은 그 자체가 교만이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다. 인간의 유한한 이해 속에 들어오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타협 없는 선포이기에, 창조를 믿든지, 진화를 믿든지 두 믿음 앞에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어떤 걸 믿기로 작정하여 첫 단추를 끼우는가가 마지막 단추의 향방도 가늠ㅈ한다.’고 대답해주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자리가 없어진다. 창세기 첫 장부터 틀어지면, 계시록의 단추는 끼울 자리가 없어진다. 인간이 설 자리도 없어진다. 예수 실컷 믿다가, “진짜 천국이 있어?” 하고 되묻게 되는 거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계명의 진실성 여부를 자기 판단으로 직접 경험해보려고 했다. 검증하고 나서야 믿으려 했다. 하나님과 사탄의 두 진술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판단하여,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결국, 뱀의 유혹이 총체적으로 사기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 원죄를 공유하는 우리도 참 많이 닮았다. 이해되고 검증되면 믿고, 안 그러면 제거하려 한다. 헬라인은 이해를 구하고, 유대인은 검증을 구한다.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미심쩍어 육체로 마치려는 다른 복음을 사도바울은 저주했다. 그래서 ‘믿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며 축복이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폭은 점점 넓어지게 되어 있다.
송직화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