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변화
7월 마지막 주에 청소년 수련회가 기도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예전에는 넓은 중앙 공원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지만, 지금 그곳은 오치환 장로 기념 식당으로 바뀌어서 마땅한 행사 공간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위기는 더 좋은 기회를 낳는 법, 이참에 아이들 행사 공간을 더 넓게, 더 멋지게 만들기로 작정하고 천여 평의 땅에 보도블럭을 깔고, 그 옆 바위를 활용하여 폭포를 만드는 등 대공사를 감행했다.
일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을 즈음, 나는 손녀 예랑이에게 전반적인 평을 부탁했다. 손녀가 아니라 시각디자인 박사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그러자 예랑이가 조심스럽게
‘지금 작업공간과 주변에 이질감이 있다’며 이것저것 등을 지적했다. 그러자 기도원 식구들은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라는 얼굴들이다. 그들 눈에는 예랑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딸 같은 아이로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제 갓 기도원에 들어온 장로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박사님, 어디 가시지 말고 여기 계십시오.”란다. 그 장로는 예랑이가 시각디자이너로 보인 것이다.
내가 목사가 되었을 때 내 친구들의 반응이 딱 이랬었다. “네가 목사야? 그렇게 잘 놀고, 말술을 마시던 네가?” 했었다. 그들은 지난 시절의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목사인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고향에 가시니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막6:2~3).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예수가 메시야라고? 그게 말이 돼?” 할 수밖에. 그래서 예수님은 거기서 아무 권능도 행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눅4:24).
한번 박힌 인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새로운 미래가 다가올 수 없기 때문이다. 멋진 미래를 위해 고정된 인식을 버리고, 인식의 전환, 변화를 꾀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