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중심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사무엘상 16장에는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러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새의 아들들 중 장남인 엘리압의 빼어난 용모와 신장을 본 사무엘은 속으로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실 자라고 생각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대체 그의 중심이 어떠하기에 하나님은 이미 그를 버리신 걸까?
바로 다음 장인 17장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대와 싸우게 되는데, 엘리압을 포함한 이새의 장성한 세 아들도 전장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상대편의 선봉장은 바로 골리앗! 사울 왕도, 이새의 세 아들들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 그 누구도 섣불리 그와 맞서려고 나서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을 왔던 막내아들 소년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고 그와 싸우려고 하자, 맏형인 엘리압은 화를 내면서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들에서 양이나 치고 있어야 할 녀석이! 나는 네가 얼마나 교만하고 악한 지 알아. 전쟁이 무슨 구경거리인 줄 아느냐?”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그의 중심에는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과 양이나 치던 막냇동생이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죽이겠다며 설치는 것에 대한 못마땅함, 아니꼬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에게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없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이 가득했던 엘리압은 결국 자신이 업신여겼던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개선장군이 되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다.
하나님이 버리시는 사람과 쓰시는 사람의 차이는 그의 중심에 무엇이 있고 없는가에 달려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도, 에서와 야곱의 차이도, 오르바와 룻의 차이도,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도 그들의 외모가 아닌 중심에 있었다.
‘하나님은 왜 나는 안 쓰시고 저 사람만 쓰시는가?’ 글쎄, 하나님은 당신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어서 돌아오오
미움보다 무관심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회초리보다 무반응이 더 가혹한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공포하신 하나님께서 급기야 입을 다무셨습니다. 지독히도 말 안 듣는 이스라엘을 남의 손에 넘겨주시고는 말씀을 거두셨습니다. 달래도 보고, 때려도 보고, 야단도 쳐보고…. 그리고 마지막엔 함구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침묵,
어쩌면 가장 큰 형벌인지 모릅니다. 미동치 않는 것이 때론 큰 파도일 수 있고, 침묵이 때론 외치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의 극치, 타락의 정점, 부정의 절정, 망종의 결정판, 사치의 광란,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두고 여러 가지로 경고하십니다.
지금이 깨달을 시기이며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날이면 우리는 암흑 같은 길을 가야 하고, 힘겨운 날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지금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등이 보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고 돌아앉아 버리시면 우리에게는 희망도 없고 소망할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회초리 든 손이 보이는 지금, 한 톤 높아진 음성이 들리는 지금, 우리가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간섭하시고, 말 안 들을 때 때리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침묵이 있기 전, 패역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품으로 어서 돌아갑시다.
자식을 때리고 편히 자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회초리 속에 우리를 보시고 편치 않으십니다. 그러니 이제 말 좀 들읍시다. 아버지가 분부하신 대로 살아봅시다.
옹달샘 중에서
성령세례
미국 인디애나주에 사는 우리 교회 권사님의 친구분이 한국을 방문하셨다가 문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친구분께 한국에서는 단 한 번의 주일예배였다. 그 친구분은 미국에서 40년 동안 교회에 다니셨는데 내가 성령을 받으셨냐고 물으니 받지 못했다고 하셨다. 성령님께서 주일에 교회로 오는 차 안에서 바로 내 옆자리에 앉으시도록 인도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성령세례와 방언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아니, 그런데 그날 총회장 목사님의 주일설교(2024. 5. 12) 내용이 모두 성령과 방언에 대한 말씀이 아닌가! 동승한 분들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통성기도 시간에 권사님의 친구분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령세례를 베풀었다. 나도 울고 권사님과 친구분도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다. 성령이 임했다. 40년 넘게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예배 전에 성령을 받았냐고 물었을 때는 받지 못했다고 대답하셨는데, 예배를 드린 후에는 아주 분명하게 성령을 받았노라고 대답하셨다.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한 번 듣고 성령을 받은 다음, 그 친구분의 행보는 우리 교회 권사님께 전해 들었다. 성령을 받고 즉시로 병원에 입원해있는 본인의 친오빠에게로 달려가셨다고 한다. 오빠는 뇌경색으로 의식은 있었지만 전신마비 상태여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빠에게 회개 기도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고 동의하면 눈을 두 번 깜빡이게 했다. 오빠는 눈을 두 번 깜빡이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될 수 있다’거나 ‘될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다. 성경은 ‘되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행1:8).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성령 받은 자에게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우리 권사님 또한 다른 지역에 사는 형제들을 만나서 전도하며 성령세례를 베풀고 총회장 목사님의 전주 집회에 초대했다. 참으로 당연하다.
나는 복음을 전하고, 성령세례를 베풀고, 그렇게 살다가 사랑하는 주님 앞에 가고 싶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 총회장 목사님을 본받아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마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하며 기도한다.
장순천 목사
기질과 성격
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진행한 학부모 연수에 참여했다. ‘자녀의 기질과 성격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자녀의 기질을 이해하면 양육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편안한 육아, 모두가 바라는 육아가 아닐까.
TCI 검사라는 것으로 아이의 기질을 알게 되었다. 강사님의 말에 따르면, 기질은 타고난 것이고, 부모 중 한 명에게 물려받은 것이기에 변할 수 없다고 하며, 변한다고 해도 큰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한다. 반면 성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어서 기질에 맞춰 양육하면 성격은 저절로 좋아진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 아이가 생각났다.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친구가 좋은 시기가 첫째 아이에게도 찾아왔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여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참 쉽지가 않다. 우리 집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기질이 다르고, 나와 남편의 기질도 다르다. 첫째 아이와 같은 기질의 남편은 평소 아이를 잘 이해해주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라도 나가려고 하면, “집이 좋다. 나가기 싫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하여 매번 실랑이가 벌어진다.
기질에는 자극 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이 있고, 성격에는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 등이 있다고 한다. 보통 자극 추구는 높고 위험회피 요소는 낮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기질의 사람이다. 위험회피 요소가 높고 자극 추구가 낮은 사람들은 외부 환경이 낯설고 힘들어 집이 가장 편안한 장소라고 생각되어 어디 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나는 첫 번째 기질인 반면, 아이는 후자의 기질이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연수에서 기질은 바꿀 수 없지만 성격은 기질에 맞춰 양육만 해도 좋아진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부모는 아이들의 기질을 수용하고 잘 도와줘야 한다. 성격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를 늘 신경 써야 한다. 매일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보고, 듣고, 자라기 때문에 부모의 모델링이 가장 중요하고 말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통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지하는 말과 칭찬의 말, 격려의 말을 늘 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주눅 들어 보이거나 괜찮은지 걱정이 될 때 아이와 대화하며 놀란 척, 모르는 척, 재미있는 척을 해주면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성격 또한 좋게 변한다고 한다.
기질은 타고난 것이고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는 왜 이럴까?’, ‘저 아이는 왜 저럴까?’ 하고 답답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을 받아들이고 기질에 맞게 양육하면 성격이 좋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하니 아이와 부모의 삶이 훨씬 편안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도 ​기질이 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순하고 부드러운 대로, 거칠고 용맹한 사람은 거칠고 용맹한 대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선물인 기질을 잘 다듬고 악에게 흔들리지 않도록, 선하고 아름답게 사용하도록 자신을 만들어가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경건에 힘쓰고 경건의 훈련으로 다스려질 때 하나님께서 주신 기질이 잘 발휘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해본다.
기질에 맞는 가르침을 실천하셨던 예수님을 묵상하며 오늘 하루도 아이와 함께 옥신각신 힘내고 있을 모든 부모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여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 보면 마음에 품는 생각, 입으로 내뱉는 말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내가 품은 생각이 말로 표현되고, 그 말대로 인생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언어라는 씨앗으로 뿌려져 인생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작은 생각, 작은 말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2년 전쯤 추운 겨울날, 기도처의 수도가 얼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남아있던 때라 교구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방에 물이 안 나오는 것은 참을만했는데, 화장실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급하게 근처 철물점 사장님을 소개받아서 수도 해빙 작업을 부탁했습니다. 장비를 가져와 한참을 고생하시면서 작업을 하셨지만 결국 녹이지 못하고 안 되겠다며 그만 포기하셨습니다. 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다른 기술자가 와도 상황은 비슷할 거라고, 적어도 날이 풀리는 2, 3월까지는 기다려야 녹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두세 달을 버티기엔 성도님들이 너무나 불편해하실 것 같아 다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교회에 수소문을 했더니 감사하게도 작업하실 수 있는 장로님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여기저기 동파되는 곳이 많아 바쁘신 와중에도 기도처 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최대한 빨리 와주셨습니다. 작업을 준비하는 장로님 곁에서 걱정스런 마음에 조심스레 여쭤봤습니다. “장로님, 날씨가 워낙 춥고 수도가 언 지 며칠이 됐는데 녹일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장로님의 대답이 정말 우문현답이었습니다.
“전도사님! 녹는다는 생각을 갖고 작업해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큰 충격을 받았고, ‘역시 총회장 목사님께 배운 장로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도가 언 지 며칠이 지났고 이미 한 분이 포기한 상황이니 안될 수도 있겠다’는 저의 생각과 말을 장로님의 단 한마디가 바꿔버렸습니다. 장로님은 어딜 가든지 막혔던 문제를 해결해온 숱한 경험을 갖고 계셨고,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가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작업은 잘 마무리되어 수도는 다 녹았고,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실제 삶에 그대로 적용하며 실천하시는 장로님의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천지창조의 역사는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그렇기에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우리 생각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을 재앙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렘6:19)라 하셨습니다. 그 부정의 생각과 원망의 말의 결과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았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생각과 말의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긍정의 생각을 갖고, 긍정의 말을 뿌려서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가 삶에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호민 전도사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출판하게 된 내 책이 하나 있다. 출간하게 되면 출판사에서 해당 책 여러 권을 선물로 주는데 그 책들을 우리 집 한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 두었다. 그런데 그 책장이 화장실 가는 통로에 있어서 화장실에 오고 가고 할 때마다 책들이 눈에 띄곤 한다. 책이 눈에 띄면 늘상 하는 일이 있다.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듯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많이 팔려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유명인의 눈에 띌지어다!’ 등등으로 명령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겨나진 않았다. 그냥 늘 판매되던 수준대로 팔리는 정도일 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이거 괜히 하는 거 아니야? 내 욕심 섞인 바램이라 하나님이 안 이뤄주시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아니야! 끝까지 해보자! 크게 힘든 것도 아니고 오고 가다 말 한마디씩만 하면 되는 일인데 뭐!’하며 최대한 눈에 띌 때마다 명령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8개월이 지났다. 갑자기 이 업계에 있는 큰 회사, 작은 회사 대표님들이 연락해오기 시작했다. ‘작가님! 한 번 만나 뵙고 차 한잔하며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등등으로 말이다.
책 판매량도 늘었다. 사람들이 많이 읽는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해당 분야에서는 늘 최상위권에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이번 일로 깨달은 것은 한두 번 명령하고 빨리 안 이뤄진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는 다르고,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 같다. 이렇게 각자가 목표하고 꿈꾸는 일을 놓고 예수 이름으로 꾸준히 명령하자.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과 때가 맞는 순간에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