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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심어놓은 하나님의 희망

1256호 · 2024-06-02
세상을 보는 창

가정에 심어놓은 하나님의 희망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아들 다윗에게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사무엘 선지자 앞에서 다윗을 아들 명단에서 삭제했고, 다윗의 형들은 전쟁터에 위문 왔던 다윗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며 야단을 쳤다. 다윗은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고 자라지 못한 왕따였다. 그런데 다윗은 어른이 되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 함께 사는 모습!”(시133:1)이라고 고백하며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도대체 다윗의 성장기에 어떤 변화가 생겼던 것일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목자의 삶은 피곤하고 고달팠다. 매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아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뜨거운 태양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과 양들과 생활하느라 더러워진 누더기 겉옷을 걸치고 달려왔던 목동 다윗을 처음 본 사무엘 선지자는 다윗의 얼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얼굴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16:12). 이 문장은 실제 다윗의 모습을 묘사하기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본 것이 분명하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빼어나고, 눈이’라는 순서로 되어 있어서 다윗의 얼굴보다 ‘눈’이 강조되어 있다. 사무엘 선지자가 처음 다윗을 보았을 때 다윗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열정이 가득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누가 왕따로 살았던 다윗의 눈빛을 자신감 넘치고 사랑받은 아이의 눈빛으로 바꾸었을까? 우리는 다윗이 쓴 시편에서 그 힌트를 얻는다. 다윗의 어머니 이름이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다윗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주님의 여종’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다윗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어머니였다. 어린 다윗은 아버지와 형들이 아닌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배웠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다윗의 가정에 심어놓은 한줄기 희망은 무명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가정마다 한 줄기 희망을 심어놓으셨다. 바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다! 다윗에게 ‘주님의 여종’이라 불린 어머니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행7:46) 다윗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이정금 전도사

오늘의 메시지

기쁨과 감사의 신앙

세계 최고의 암 전문 병원인 텍사스 주립대 앤더슨 암센터에서 31년간 근무한 김의신 박사는 신앙이 암 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며, 교회 성가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가 일반인보다 무려 1,000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한다. 기쁨과 감사의 삶이 그만큼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br>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기쁜 일이 있어서 기쁜 것도 있지만, 먼저 기뻐하면 기쁜 일이 생긴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말한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br>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조한다. 그러할 때 염려가 없어지고 감사하게 되며 소원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교훈한다(빌4:4~7).br>

다윗을 보라! 그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올 때에 하의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백성들과 함께 춤을 추며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라며 사람의 시선을 개의치 않았더니 보고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다고 증거한다(삼하6:15~21).

우리 목사님도 어린아이와 같이 춤을 추며 찬양하시는 모습에 하나님이 능력과 건강으로 잡아 주심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김상욱 목사

낮은 울타리

함께 동역하는 기쁨

5월의 노량진 교육관은 참 바쁩니다. 서울 대학부는 5월에만 세 가지 행사를 준비했는데, 덕분에 교육관은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새벽까지 남아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일이 없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바쁜 삶을 살아가다가도 저녁이 되면 교육관으로 모이고, 새벽까지 교회와 부서와 영혼들을 위해 다시 일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은 연극을 준비하는데 소품들을 옮겨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리허설이 새벽에 시작하는 것이라 누구에게 선뜻 요청하기 어려웠습니다. 형제들이 모여있는 단체 카톡방에 새벽 봉사자를 구한다는 말만 남겨놓고, 안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리허설 시간에 가까워지자 하나둘씩 모이더니 카톡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모인 사람들도 이렇게 다 올지 몰랐던 건지 서로 신기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니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더욱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또 한 번은 한 동역자에게 사진 찍을 때 사용할 소품을 담당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냥 적당한 것을 찾아 구매만 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역자는 동대문에 가 직접 재료를 구했고, 혼자 새벽에 교육관에 남아 꽃잎 하나하나를 잘라 붙이며 아름답고 풍성한 소품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묵묵히 밤새 그 작업을 했을 동역자를 생각하니 온 마음을 다해 함께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신나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의 일에 많은 시간과 물질을 쓰면서 헌신하다 문득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의심이 들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옆에서 묵묵히 당연하게 헌신하며, 기쁨으로 봉사하는 동역자들을 보면 ‘그래 이게 맞지’하는 위로와 확신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서 어떤 동역자입니까? 동역이라는 말 자체가 ‘함께 일하다, 함께 힘쓰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조금 소극적이었다면 주의 일에 함께 마음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봅시다. 더 값지고 신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4:9).

장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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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연

저는 예순 중반으로 곧 정년을 앞둔 대학교 의대 교수입니다. 제가 사람답게 살고, 교수까지 될 수 있었던 사연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깡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고, 부모님은 여자애는 살림하면 되지,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공부에 흥미가 많아 몰래 학교 창문으로 한글을 익히고 산수를 공부하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부모님한테 잡혀와서 혼쭐이 나기도 했어요.

​그런 제 삶에 변화가 온 건 젊은 여선생님이 오시고부터였어요. 시내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은 제가 산기슭에서 쑥을 뜯다 말고 누가 놓고 간 책 읽는 걸 보시고 저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순정아, 지금 당장은 이게 쓸모없는 것 같아도 분명히 도움이 될 날이 올 거야.”

​그 선생님도 공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공부해서 선생님이 됐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밤마다 몰래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선생님 댁에 가서 공부했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 과정도 밟았어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 싹싹 비는 저를 보며, “남이 부모가 못 시켜주는 걸 다 해주시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냐?”라며 몰래 다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공부한 끝에 저는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을 꿈꾸게 되었죠.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엄마를 만나셨어요. “어머니, 이런 애가 공부를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부디 어머님께서 순정이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결국 엄마는 저를 밀어주기로 하셨습니다. 아빠 몰래 집안일 하는 시간을 빼주셨고 문제집 살 돈도 주셨어요. 그 돈이 충분치 않아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엄마와 선생님께 보답하고자 하루 열 시간씩 공부했고,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엄마는 너무 좋아서 눈물을 훔치셨고 선생님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죠.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였는데요, 아버지는 어디 여자애가 혼자 서울에 올라가냐며 펄펄 뛰셨습니다. 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가출을 결심했죠. 새벽에 기차역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선생님이 나와 계신 것이었어요. ​“순정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집을 나가니? 돌아가자.” ​저는 결국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신 건지 대학교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해 오셨더라구요. 그리고 아버지께 “서울에서 1등만 한다고 하는 애들도 떨어지는 의대에 합격했잖아요. 순정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의 간곡한 설득 덕에 결국 아버지는 저를 서울로 보내기로 하셨어요.

​저는 대학에 가서 선생님 은혜를 갚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1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선생님을 찾아 중학교로 갔더니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셨다는 거예요. 결핵에 걸리셨고, 요양을 떠나셨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저는 자취방 책상 앞에 앉아 결심했어요. ‘그래, 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게 열심히 살자.’ 저는 정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그 덕택에 저는 인턴 후 봤던 시험도, 레지던트 4년 후 봤던 내과 전문의 시험도 모두 한 번에 합격했고, 미국으로 연수도 다녀오고, 대학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순환기 내과 교수가 되었죠.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두었어요. 선생님을 떠올리며 딸 이름을 선생님과 같은 선희라고 지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마음 넓고 예쁜 사람이​ 되길 바래서였어요. ​그리고 어느새 그 딸이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죠. 딸은 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의대에 가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딸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며 한번 만나 달라고 했습니다. 사윗감은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사실 저는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딸이 원하니 만났습니다. 사윗감은 아주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평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만 가르칠 생각인가? 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하고 유학을 갈 계획은 없고?”라고 하자, 그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데에는 저희 큰어머니 영향이 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졌다니 할 말이 없었죠. 제가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저는 정말 그 청년의 마음가짐 하나만 보고 딸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양가 부모의 상견례 날이 되었어요. 저는 약속 장소인 한정식 식당에 조금 일찍 도착했죠. 직원의 안내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카운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카운터 쪽을 보니 저보다 한 열 살은 많으신 것 같은 여자분께서 우아하게 머리를 틀어올리시고 앉아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꾸 어디서 본 것만 같아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런데 저를 본 여자분도 한참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저도 한참을 바라봤구요. 아무래도 낯이 익었으니까요.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유선희 선생님?”라고 하자 그분도

“너, 순정이니?”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선생님,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 찾았는데, 어떻게 이런 데에서 만나요. 선생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시며 제 손을 잡으셨죠. 그리고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상견례 얘기를 했죠. 선생님은 예약자 이름을 보더니 놀라시며, “니가 선희 엄마였니?”라고 하시는 거였어요. 저는 너무 놀라서 제 딸을 아시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바로 제 사위의 큰어머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사위가 닮고 싶었던 사람이 선생님이라니….

상견례가 끝나고 저와 선생님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처음 요양을 마치시고 다시 교사를 하며 결혼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폐가 안 좋아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서 지내시다가 가끔씩 남편이 경영하는 한정식 식당에 나와서 카운터를 봐주고 있다고 하셨어요. 마침 제가 간 날이 시조카 상견례여서 제 딸도 보고 저희 부부도 볼 겸 나오셨다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순환기 내과 교수라고 하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너는 꼭 해낼 줄 알았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셨죠. 저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이제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다시 몸이 안 좋아진 것 같아서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그 의사가 워낙 그 계통에 유명한 교수라 그런지 두 달도 넘게 기다려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호흡기 쪽의 내로라 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쫙 돌렸어요. 그리고 대학병원 내에 인맥을 총동원해서 선생님이 VIP병실에 입원할 수 있게 했죠. 검사 결과 선생님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암의 소견이 나왔어요. 선생님은 몸이 많이 약하셔서 수술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워낙 초기였고 표적 항암약물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바로 제가 주치의가 돼서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 결혼식 날이 되었어요. 선생님도 그동안의 치료로 많이 좋아지셔서 곱게 한복을 입고 결혼식장에 오셨어요. ​저는 가까이 가서 사위 손을 잡았습니다. ​“자네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큰어머니, 유선희 선생님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셨는데, 자네는 더 훌륭한 제자를 많이 만들게.”

​결혼식이 진행되고, 딸과 사위가 우리 부부와 사돈 부부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 앞에 갔죠. 그리고 선생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선생님, 시골 아이를 이렇게 의사까지 만들어주시고, 그런 선생님이 제 사돈 큰 어른이 되어주셔서 정말 너무 영광입니다.”

​사돈 내외도 저의 사정을 잘 알고 눈물을 훔쳤습니다. 행복한 딸의 결혼식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너무 미안했지만 저는 그렇게라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건강을 회복하셨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오십니다. 이제 제가 은퇴하고 나면 같이 여행이나 다니자고 하시네요. 저도 그럴 날 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고 싶어요.

진리에 이르는 지식

개신교는 천주교의 작은 집?

기독교의 원조는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었다. 마틴 루터는 독일 출신으로 천주교의 사제였다. 루터가 천주교를 떠나 개신교를 처음 시작한 것으로 말하며 마치 천주교는 큰 집으로, 자칭 개신교는 작은 집으로 가르치나 이 가르침은 천주교의 주장일 뿐이다. 기독교는 예수께서“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 때 시작된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 교회의 성례 전과 죄 사함, 행위 구원, 면죄부에 의한 죄의 경감이나 구원, 사제를 통한 고해성사와 같은 잘못된 교리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됨을 선포한 것이다. 결코 율법이나 할례, 희생 제사,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마틴 루터가 성경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 이루어주신 것을 마틴 루터가 선포하게 된 것이다(롬3:24).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이루신 것이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함과 같이 믿음의 의로 구원받는다. 믿음의 의란 지금까지 지었던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덮어 주심으로 죄가 도말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인간을 ‘죄인이자 의인’이라 부르며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게 된 것을 가르친 것이다. 루터에 의하여 없었던 새로운 기독교가 생겨서 작은 집이 된 것이 아니라 루터가 천주교의 사제로서 성령으로 성경을 깨닫고 천주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개종한 것이다. 당시에 개신교는 천주교의 핍박 때문에 지하에서 숨죽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터키의 데린쿠유 지하 동굴에 숨어서 신앙을 지킨 것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와 생긴 것이 결코 아니다.

이승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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