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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자와 받은 자의 진실

1254호 · 2024-05-19
깊은 곳에서의 울림

준 자와 받은 자의 진실

나의 어머니 한송이 목사님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 평범하게 공부만 하던 어머니는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삶에 두 가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여름방학 기간에 있었던 청년대학수련회에서 성령을 체험한 것, 둘째는 같은 해 11월, 만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아버지와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성령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뜨거웠던 어머니는 중매를 통해 처음 만난 아버지 앞에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며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한 아버지는 결혼하면 당신을 따라 교회 나가겠노라 약속하셨지요. 결혼 후, 교회에 발 도장만 찍으며 여전히 가진 돈과 명예로 세상과 짝하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7년간 수 없는 밤을 눈물의 기도로 지새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1988년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친구가 운영하는 가구점에 들르셨다가 원목이 아버지 발등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수술 후에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된 아버지는 88년 11월 총회장 목사님의 부산집회 소식을 듣게 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석하신 아버지는 뜨거운 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나가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고, 그날로 고침을 받으셨습니다.

항상 저와의 전화 통화 끝에, “진실아, 기도해라. 오직 기도밖에 없어.”라며 기도를 당부하시는 어머니. 믿지 않던 아버지가 전 재산을 팔아가며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기까지, 당신의 기도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목도하셨기 때문이겠지요. 저 또한 총회장 목사님의 오랜 기도가 이루어져 목사 되기를 거부했던 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보았기에, ‘기도는 인생의 마스터키’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진 문제를 보고 낙망하고 계시나요? 응답이 더디다고 기도를 포기하려 하십니까? 모세는 홍해 앞에서도, 물과 먹을 것이 없을 때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셨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겨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당신이 기도한 것보다 더 좋게 해주신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김진실 사모

영생에 이르는 길

총대를 메라

연초에 오랜 친구들과 만나서 반갑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전부터 친구들 간에 한번 보자는 이야기는 자주했지만 주도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총대를 메기로 했습니다. ‘한번 보자’는 약속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장소와 일정을 계획한 후 일정을 조율하면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과감한 진행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친구도 있었지만, 의견을 조정하며 추진했습니다. 약속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참석을 고민하던 한 친구와는 전화통화를 하고 그 친구 집 앞까지 가서 기다렸더니 친구가 힘을 내서 나와 반가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모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 하겠지만, 바쁜 세상에 각자의 삶이 있는 사람들이 한번 모이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뜻을 정하고 이루기 위해 총대를 메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니 결국 원하던 모임이 성사되었습니다.

세상의 일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서 총대를 메야 합니다.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추진력 있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하든, 봉사를 하든, 선교를 하든, 일단 결단했으면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밀어붙여야 합니다. 모세가 그랬고, 총회장 목사님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고, 우리 교단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온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무엇인가 이루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먼저 총대를 멥시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최성경 전도사

생명의 말씀

오직 기도, 오직 전도

“기준!”

학창시절 체육 시간이나 군대 시절 훈련을 받을 때, 운동장 맨 앞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오른손을 번쩍 들면서 ‘기준’이라고 외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좌우로 양팔을 벌리거나 앞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앞으로 나란히’를 하면서 오와 열을 맞추어 정렬을 한다. 줄을 맞추면서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서는 사람, 좌우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게 되는데, 이때 ‘기준’이 되는 사람은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이 한 사람이 움직이게 되면 전체가 우왕좌왕하면서 줄이 흐트러지게 된다.

나는 주의 종으로서 우리 성도들에게 기준이 되고 싶다. 물론 인간이기에 삶의 모든 부분이 기준이 될 수는 없으나 신앙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몇 가지를 나는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우선 나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 아플 때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방법밖에는 모르기로 작정했다.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거나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준을 보면서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 당기는 사람, 뒤로 물러서는 사람, 좌로나 우로 움직이면서 자리를 잡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급성 장염에 걸려 식사를 못하시는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는데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사 금세 깨끗해지셨다. 정말 놀랍지만, 그러나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님과 총회장 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8)는 말씀을 기준 삼아 나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 단상에는 1년 365일 ‘오직 기도, 오직 전도’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매일 새벽 1시까지 기도회가 있고, 총회장 목사님의 20분 설교 영상으로 기도회 마무리를 한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는 말씀이 기준이기에 나 또한 그렇게 산다. 또 총회장 목사님은 ‘가든지 보내든지’라고 하셨기에 각자 전도하고, 총회장 목사님의 해외 집회와 선교에 기도와 물질로 동역한다.

나는 ‘오직 기도, 오직 전도’의 삶을 사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성도들이 ‘기준’에 맞춰 살 것이고, 나중에 상과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그림을 늘 상상한다.

장순천 목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DON'T LOOK UP! (위를 보지 마)

‘시한폭탄 같은 인생’, 총회장 목사님이 비유로 자주 언급하시는 말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정말 와닿습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27:1)는 말씀처럼 죽음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고,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히9:27).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뒷전으로 둔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습니다. 지난 2021년 개봉한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이러한 세태를 잘 보여줍니다.

주인공인 천문학자는 우주를 관찰하던 중 엄청난 위력을 가진 혜성이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혜성 충돌 확률은 무려 99%. 겨우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비상사태에 돌입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지구가 곧 멸망한다고 외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혜성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점점 가까워집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JUST LOOK UP(고개 들어봐)’파와 ‘DON'T LOOK UP(위를 보지 마)’파로 갈라져 싸웁니다. 지구 멸망이라는 재앙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돈을 좇으며. 서로 갈등합니다. 또 온갖 소문과 SNS에 빠져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합니다. 결국 6개월 뒤 혜성은 지구와 충돌하고, 지구는 멸망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상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선을 두게 만듭니다.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많습니다. 자꾸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의 것에 시선을 두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잠시 잠깐 살아가는 인생,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그분의 뜻을 좇아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전소희

so2eej@naver.com

프롬 인터넷

한 번 더 생각해주는 사랑

오래전 어느 봉사 단체에서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돕느라 일주일에 세 번씩 무료로 도시락을 나눠주는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을 때 생긴 일입니다.

그날따라 영하 10도가 넘는 매우 추운 날이었는데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라 그런지 급식소를 찾아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봉사자들은 도시락 한 개에다 따뜻한 국물을 따로 담아 포장지에 싸서 한 사람에게 한 개씩 나눠주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한 개를 주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었지요.

봉사자들이 열심히 급식을 하고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인 어느 남자아이가 급식대로 다가와 도시락 세 개를 집어 자기 가방에 얼른 담았습니다. 그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절도 행위를 저지르는 아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료 급식소에 처음 봉사하러 나온 초등학교 선생님 여자 봉사자였습니다. 봉사자는 아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절도행위를 하는 것을 본 순간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얘! 어디서 감히 도둑질을 하는 거니?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이 먹지를 못하잖아! 왜 어린 나이에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거야? 좋은 말할 때 빨리 이곳에 도로 갖다 놔라! 그렇지 않으면 혼을 낼 테니까!”

봉사자는 형사가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해 추궁하듯이 사람들 앞에서 아이를 큰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아이는 얼굴이 빨개진 채 가방 안에 넣었던 도시락을 모두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갔습니다. 아이는 한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와 아이를 쫓아낸 봉사자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곳은 가난한 동네예요. 그리고 오늘같이 추운 날은 일이 없어 부모들이 일을 못 나갑니다. 그래서 아이가 가족을 대신해서 아빠와 동생을 먹이려고 도시락 세 개를 챙긴 거예요. 저 아이의 아버지는 일하다 사고를 당해 방에서 누워지내고, 엄마는 파출부 일을 하러 다니느라 가족을 돌볼 여유가 없다보니 장남인 저 애가 도시락 세 개를 챙긴 거라고요. 선생님 때문에 이 추운 겨울날에 가족들이 꼼짝없이 굶게 생겼네요.”

선생님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 애가 얼마나 효심이 깊고 착한 아이인데요. 가끔 이곳을 찾아와 청소도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심지어 설거지도 도와주는 너무나 착한 아이거든요. 앞으로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시고 나무라 주세요.”

다른 아주머니의 말이 선생님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순간 부끄러움과 미안한 표정으로 가방에 넣었던 도시락을 꺼내는 그 아이의 서럽고도 슬펐던 눈망울이 생각나자 선생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추스른 선생님이 아주머니에게 그 아이의 집이 어딘지 알아냈고, 도시락 네 개를 챙기고 사비를 들여 과자와 빵과 라면 등 먹을 것들을 잔뜩 사서 아이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입김이 솔솔 피어나는 추운 방안에서 세 식구는 이불을 덮은 채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봉사자는 그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정말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아서 너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해….”

뜨거운 눈물이 목을 타고 솟구쳐 오르자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도, 아이의 동생도, 그리고 누워있는 아빠도 함께 울었습니다. 모처럼 방안에는 아이의 가족들과 선생님의 사랑이 뒤엉킨 채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품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선생님은 그 아이의 정식 후원자가 되어 온갖 정성을 다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고, 마침내 날개 없는 천사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자신의 판단으로 지적하기 전에 먼저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목사님은 자주 말씀하십니다. 정죄하기 전에 ‘무슨 까닭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라고요. 그러면 다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된다고요.

성경 말씀입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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