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당하지 말자
두 번은 당하지 말자
며칠 전, 대만에서 강도 7.2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1999년에 강도 7.7의 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지 25년 만에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물도 거의 무너지지 않았고, 사망자도 10여 명에 부상자가 1,100여 명 정도 나왔을 뿐이란다. 대만 정부와 지자체들이 1999년 지진 이후로 건물의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국민들에게도 지진 대비 대피훈련을 꾸준히 시킨 덕분이다.
행로법칙(行路法則)이라고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는가. 세월과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간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무엇이 더 올바른 선택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나 또한 신앙생활과 교역자로서의 활동 가운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여지를 주면 안 된다(요새 말로는 ‘플러팅’이라고 함)’,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되지 않는 상대에게 분을 내며 책망하면 영혼이 실족해서 떠난다’, ‘사역하면서 편애하거나 내 사람을 만들면 망한다’ 등등…. 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또는 남들이 하는 걸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 내지는 반면교사로 깨달은 것들이다. 총회장 목사님도 목회 초창기 때 서울대 음대생들과 기독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데리고 있었다고 종종 말씀하시는데, 어쩌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뼈아픈 교훈을 그때 얻으신 건 아닐까.
내가 어떻게 하면 영적 상태가 나빠지는지, 성령 충만이 떨어지는지, 믿음이 약해지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는가. 다윗도 순간적인 정욕에 사로잡혀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다가 큰 대가를 치른 뒤로는 노년에 신하들이 아리따운 동녀 아비삭을 침소에 넣어주었지만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그가 기력이 쇠했거나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이성 문제로 걸려서 복잡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었을까.
목사님께서 기르시던 개도 지하실에서 한번 쥐덫에 잘못 걸려 혼쭐이 난 뒤로는 다신 지하실 쪽으로 얼씬도 하지 않더란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토한 걸 도로 먹는다는 개도 호되게 당하고 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한 번 당했으면 두 번은 당하지 말자.
신혁주 전도사
우리도 그 발걸음을 따라갑시다!
2017년도 즈음, 당시 제가 살던 집 방 한쪽에 놓여있던 총회장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들을 보게 됐습니다. 테이프가 참 많이 있었는데 문득 그 테이프들의 설교 연도와 제목들을 살펴보게 됐습니다. 대부분이 90년대 테이프였는데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90년대의 테이프 제목이 20년이 지난 2017년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7년이 더 지난 지금도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나 내용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 명으로 목회를 시작했던 목사님은 한결같음과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지금은 전 세계 70여 개국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총회장 목사님은 어떻게 40여 년의 시간을 한결같이 보내셨을까요? 목사님의 그 비결은 예수를 닮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목사님은 계속 예수를 닮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늘 ‘나는 천문천답, 만문만답이 예수다. 목회성공의 비결도, 오늘의 내가 된 것도 모두 예수님의 은혜’라고 대답하십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를 외치는 목사님을 보는 것만으로 큰 은혜가 되고, 마음의 울림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중심교인들은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배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 총회장 목사님은 여전히 우리 앞에서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걷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뒤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총회장 목사님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갑시다. 할렐루야!
윤에녹 생도
dbsdlsgh12345@naver.com
어린이날
어린이라는 단어는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이’, ‘아기’ 등의 표현으로 불렸던 어린이를 ‘어린 사람’이라는 의미로 새롭게 정의하여,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뜻을 이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첫 번째 어린이날을 기념했습니다.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이 티 없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된 날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여기고,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고 계십니다(막10:13~16). 또한 예수님은 어린이의 순수함과 겸손함을 가르치셨고(마18:3~4), 공생애 기간 내내 어린이들을 참 사랑과 관심을 갖고 살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어린아이들의 참 행복을 위한 가르침과 그들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밝은 미래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어린이다움을 잃어버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할 즈음 접한 마음 아픈 뉴스를 접했습니다. 8세 된 어린아이가 밤새 공부하다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곧바로 응급실에 옮겨졌지만 아이는 결국 숨지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숨을 거두기 전 잠시 의식을 찾았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너무 피곤해, 조금 더 자고 싶어.”였다고 합니다. 소년은 엄마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해왔다는군요.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만큼이라도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음 안에서 자녀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양육하겠다는 뜻을 세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하나님을 뒤로한 채 세상의 성공방정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다윗, 그리고 요셉처럼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녀들. 그러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이현승 목사
5월은 푸르구나
5월 5일, 아이들이 일 년을 소망하는 어린이날입니다. 조그마한 머리를 굴려가며 소원을 풀어보고자 갖은 아양을 떠는 모습이 앙증맞고 이쁘기만 합니다. 그러나 선물을 들려주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부모로서 당신은 어린 가슴에 무엇을 안기겠습니까? 그들은 하얀 캔버스일진대 거기에 무엇을 그리겠습니까? 순수하고 깨끗한 심령에 무엇으로 채울 것입니까? 이것이 아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평생 가치척도가 이때 결정되니까요. 가슴은 차갑고 메마른 채 머리만 키우는 학문만 하게 할 것인가, 돈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배금주의로 채워줄 것인가. 그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자는 우리 어른들입니다.
바라건대, 하얀 도화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줍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심고 그리면 됩니다. 예수의 형상과 마음을 그려 그것으로 채워주면 아이의 인성과 심성이 가장 아름답고 고운 것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 그림을 그리면요? 영락없이 아이의 모습에 세상이 묻어나 먼지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심령에 하나님의 것으로 그리면 그림처럼 완벽하며 평온한 인생이 펼쳐지게 됩니다. 길이 아닌 곳에 가지 않으며, 진리가 아닌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으며, 생명이 없는 것에 유혹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참 아름다움과 참 소망이 숨어 있어 아이의 인생을 푸르게 할 것이며, 따스하게 만들 것이고 창대하게 할 것입니다. 하얀 캔버스에 무엇을 그려줄 것입니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신6:6~9).
이초석 목사 저서 '옹달샘' 책 중에서
성산에서의 축복
기도원 집회에 다녀오면 하나님이 늘 선물을 주신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사실 다른 이유는 별로 없다. 내가 기도원 집회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일보다, 내 사업보다, 내 가정보다 하나님이 여신 잔치가 우선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증명해 보여드리고 싶은 것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정도 주시고, 일도 주시고, 사업도 주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4월 15일이 시작일이었고, 기도원 집회는 그다음 주였다. 그런데 집회 일정이 한 주 앞당겨졌다. 그래서 사업 시작일과 같은 날이 되었다. 사업을 함께 하는 동업자도 있고 해서 마음이 복잡했다. 런칭일에 바쁠 것이 불을 보듯 뻔해서였다. 잠시 고민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기도원 집회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동업자를 설득했다. 그동안 내가 기도원 집회 다녀오고 잘 안 풀린 적이 있었는가? 하나님이 더 좋은 일 주실 거라고 말하며 말이다. 물론 그분도 열심히 교회 다니는 분이다.
그렇게 기도원 집회에 내려갔고, 사업도 시작되었다. 하루 3~5명 정도 들어올 거라 목표를 잡고 시작한 일인데 첫날만 70명이 들어왔다. 고객이 너무 많아 대응이 안 돼서 오히려 그거 해결하는 데 더 애를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일주일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동업자도 그걸 다 보았다.
집회 다녀오고 동업자에게 말했다. “어때요? 이번에도 기도원 다녀오길 잘했죠?”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말한다. “어! 잘했어. 잘했어. 맨날 가. 자주 가!” 하나님이 우리 대신 일하시는 걸 우리가 모두 알았다. 이게 내가 이번에 경험한 성산에서의 축복이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