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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호 목차 › 붕우칼럼

대화하라

1252호 · 2024-05-05

찬양이 없는 교회가 사막과 같듯, 대화 없는 가정 역시 모래바람만 날리는 사막과 같아 삭막하기 그지없다.

가정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다들 자기 방식대로 각개전투하며 산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아예 입을 다물고 산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대화하면 싸움만 난다. 그러느니 말을 안하는 게 낫다.”이다. 왜 그럴까? 대화를 할 줄 몰라서 그런다.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니 잘해보자고 시작한 일이 역효과만 내고 끝나는 것이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다. 경청(傾聽)이란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18:13). 야고보 선지자도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고 당부했다.

남편이나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하는데, 자식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그 속을 알게 되는데 중간에 뚝 잘라버린다. “배부르니까 별 소릴 다하네.”, “해달라는 것 다 해주는데, 뭐가 불만이야?” 그러니 아내가, 남편이, 아이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대화의 3대 요소가 있다. 첫째, 상대가 말하는데 앞지르기 없기. 둘째 상대의 말 자르기 없기. 셋째, 상대가 말하는데 끼어들기 없기다. 이것을 한마디로 줄이면 ‘경청’이다. 저수지 바닥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보려면 저수지 물을 다 퍼내면 되듯,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아내, 내 남편, 내 부모님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려면 대화를 해서 퍼내면 된다. 나는 들어주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다. 성도들이 상담을 오면 그가 다 쏟아낼 때까지 그냥 듣는다. 그러면 굳이 내가 처방하지 않아도 그가 다 씻음을 받고 간다.

사막에도 오아시스만 있으면 산다. 오아시스가 바로 대화다. 물이 있어야 유실수에서 열매를 딸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대화를 해야 가정 안에 행복의 열매가 맺힌다. 대화가 중단되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될 뿐이다. 오늘 가족끼리 마주 앉아 대화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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