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훈련의 이유
반복 훈련의 이유
어느 날 축구 연습을 하던 큰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제가 작년까지는 축구 실력이 반에서 두세 번째였지만, 지금은 일등이에요.”
비록 어린아이의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교훈이 되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날마다 일정 시간을 내어 훈련하더니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인생사, 영생사 할 것 없이 날마다 반복 훈련하는 것 이상의 왕도가 없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단지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최정상급의 배드민턴 선수로 부상한 안세영 선수는 성공비결을 묻자 매일의 반복 훈련을 들었다. 남들이 쉬는 날에도 자신은 변함없이 훈련장에 가서 땀 흘리며 훈련하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다는 약속의 말씀(요삼1:2)이 나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예배와 기도, 봉사 외에 지름길이 없다. 반복되는 영적 훈련을 통해 내 영혼이 강해지고, 악한 영들과 능히 맞서 승리하여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하던 기도와 예배의 양과 횟수를 줄이거나 빼먹기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전화 연결이 끊어지고 영적 강도인 악한 마귀가 그 틈을 타고 들어와 나의 행복과 건강, 물질 등을 모두 도둑질해간다. 나에게 주어진 직분과 소임, 날마다의 기도와 예배는 무겁고 번폐스러운 짐이 아니라, 내 영혼의 근육을 단련하여 강하게 하는 생명의 통로,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하실 때 날마다 반복하여 새벽 기도와 밤 기도를 드리셨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애쓰고 힘써 기도하셔서 십자가를 지실 능력을 얻으셨다(눅22:44). 초대교회가 날마다 모여 함께 떡을 떼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때, 주께서 구원받는 수를 날마다 더하셨다고 했다(행2:46~47).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올리는 기도와 간구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고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
잘 나간다고 섰다 착각하여 느슨해지지 말고, 또 안 된다고 낙심하지도 말고,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변함없이 주님과 교제하면 영혼이 잘될 것이고, 거기에 날마다 내 소임에 충실하면 인생과 영생 모두 윤택할 수 있다.
이국진 사모
벼룩만도 못한 사람 같으니…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이 청년 시절, 인천 부두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그때 숙소에 빈대가 많아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근로자들이 빈대를 피해 부둣가에 가서 잠을 잘 정도였다. 정 회장도 어떻게 하면 빈대를 피해 볼까 연구를 하다가 묘안을 짜냈다. 밥상의 네 다리를 물 대접에 담그면 빈대가 물에 빠져 절대 물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정말 며칠 동안은 빈대에 물리지 않고 꿀잠을 잤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다시 빈대가 물어댔다. 가려워서 잠을 깬 정 회장은 얼른 불을 켰더니, 아뿔싸! 빈대가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자기를 향하여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정 회장에게 일생의 교훈이 되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무엇을 지시했을 때 그가 ‘안 됩니다.’라고 하면, 정 회장은 “빈대만도 못한 놈 같으니. 니 해봤노? 니 가봤노?” 했단다.
무조건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 다윗의 형 엘리압처럼 말이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하자 엘리압이 노발대발한다. “얼른 집에 가서 양 떼나 돌봐라.”고 했다. 이는 아직 부딪쳐보지도 않았는데, 아직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실패를 시인한 것 아닌가.
무슨 일을 만나면 일단 도전하라. 길이 막혔으면 터널을 뚫으면 될 것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면 될 것이다. 도전하라.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도전하지 않고는 정상에 오를 수 없고, 도전하지 않고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도전하라.
이초석 목사 저서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지 말라’ 중에서
영혼육의 복
문산교회에는 99세, 97세, 96세 성도님이 계신다. 이분들 덕분에 70대 권사님들은 새댁이 되는 교회다.
가장 맏언니인 99세 집사님은 박 집사님이신데, 뵐 때마다 박꽃같이 환하게 웃으신다. 늘 단정하고 정말 고우시다.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기도원 집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꼭꼭 참석하신다. 다음 달 초에는 문산교회 바로 앞,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신다. 건강과 더불어 장막의 복,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97세 집사님 역시 매 주일 빠지지 않고 예배에 나오신다. 지난번에는 넘어져서 갈비뼈에 금이 가 다들 걱정했는데, 한주 쉬시고 주일예배에 다시 나오셨다. 오히려 교회 계단에 환자분이나 노약자분들의 편의를 위해 리프트를 설치했는데 본인은 괜찮다며 계단으로 정정하게 걸어서 다니신다.
96세 권사님은 차로 한 시간 가까운 거리를 달려 따님과 함께 매주 예배에 나오신다. 심방 때나 운행을 갈 때마다 커피든, 식사든 베풀고 심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신데, 실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임종을 앞두고 계셨던 분이다.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믿고 동네에 있는 교회를 다니셨는데, 연로해지신 후로는 교회에 못 나가셨다.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미국에 살고 있던 따님이 어머니 임종을 지키러 한국에 왔고, 모녀가 함께 문산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된 지 3주 만에 어머니께서 아주 건강해지신 것이다. 할렐루야! 병원 의사 선생님이 100수도 거뜬하시겠다 했단다.
따님은 미국의 감리교회에서 26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수중심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총회장 목사님께서 예배 때마다, “일어나라. 손뼉 쳐라. 손들어라, 아멘 해라.” 하시는 통에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고 웃으면서 얘기하셨다.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는 영혼을 살린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성령 충만케 하며 뜨겁게 만든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하늘의 상급과 천국을 소망하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비결은 바로 총회장 목사님의 영성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번의 예배이다. 이 봄에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할 산상집회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마음이 무척 설렌다.
장순천 목사
깨진 항아리의 가치
오래전에 조금 깨어져 금이 가고 못생긴 물 항아리가 있었다. 주인은 그 항아리를 물을 길어오는 데 사용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주인은 한결같이 깨어진 물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물 항아리와 똑같이 아끼었다. 깨진 항아리는 그런 주인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내가 온전치 못하여 주인님께 폐를 끼치는구나. 나로 인해 그 어렵게 길은 물이 모두 새어 버리는데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니….”
어느 날 너무 미안하게 느낀 깨진 물 항아리가 주인께 물었다.
“주인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고 새로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이렇게 깨어져 소용 가치가 없는데요.”
주인은 그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물 항아리를 지고 집으로 향해 걸었다. 그러다 어느 길을 지나며 부드럽게 항아리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거라.”
그제야 물 항아리는 그들이 늘 물을 길어 걸어오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길가에는 많은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싱싱하게 피어 있었다.
“주인님, 어떻게 이런 외지고 메마른 길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을까요?”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메마른 산길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읽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 우화다.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어느새 금이 가고 깨진다. 서로 부딪혀 이가 나가기도 한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 나조차 쓸모없다 치부하는데 주님은 깨진 항아리라도 소중하다 하신다. 여전히 나를 애지중지하신다.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마치 주님께서 내게,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단다. 너는 너도 모르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 능력은 바로 네 안에 있는 나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 힘내라고, 그러니 함께 웃자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졌다.
주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신다. 우리의 다른 가치를 보시는 것이다. 늘 소용 가치를 저울질하는 건 우리다. 어떤 것들은 언뜻 보기에 무용지물로 보이고 하찮게 보이기도 하나 생각을 달리하고 보면 전혀 다른 가치를 찾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발목이 부러진 말 모양의 도자기와 깨진 항아리를 풍물시장에서 구입하셨는데, 그 깨진 곳을 강력 접착제로 붙여 새롭게 재탄생시킨 작품이라며 보여주셨다. 그 작품을 보면서 정말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지 절감했었다.
오늘의 이야기도 그와 마찬가지다.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크다.
우리는 깨어진 항아리처럼 늘 우리의 허술함과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주인은 오래되고 낡아도, 깨어져 그 쓰임새가 부족하다 해도 우리가 마냥 귀하다. 진정한 우리의 가치는 우리를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랑을 체감할 때마다 우리는 새로워지고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깨진 물 항아리라 해도 메마른 길가에 꽃을 피우게 하시는 주님의 손에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영임 생도
하나님의 사람을 선대한 자의 축복
총회장 목사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사무실 주변의 지리를 잘 아시는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함께 걸었습니다. 골목길에서 한 청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목사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고, 그 청년은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얼마 후,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목사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중,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중년의 여성분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목사님께 존경을 가득 담아 허리 숙여 인사하고, ‘타 교단의 성도인데, 이초석 목사님의 설교를 자주 들었다’면서 매우 반가워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이 일부러 이곳까지 식사를 하러 왔는데, 이초석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면서 매우 영광스럽게 여겼고, 목사님도 기쁘게 반겨주셨습니다. 잠시 후, 그 성도님은 설레는 마음으로 식사비를 계산한 영수증을 들고 다시 찾아왔는데, 목사님께서는 진심을 다해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날 길을 물었던 청년과 식사를 대접했던 성도님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길을 알려줄 행인으로 여겼으니, 그저 목사님께 길을 안내받는 목적만을 달성했습니다. 반면, 그 성도님은 타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총회장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참 주의 종으로 알아보았고,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를 절호의 기회에 목사님을 대접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목사님을 마주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 성도님을 향한 하나님의 깜짝 이벤트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을 선대했던 그 성도님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흐뭇하게 바라보셨을지 상상하니,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축복을 주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마주하는 기회가 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우리 교단의 지교회 목사님께서 일행과 함께 들어오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하나님께 충성된 그 목사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얼른 차로 달려가 식사비를 봉투에 담아서 목사님께 드리고, 몸을 낮추어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주셨지요. 그 후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섬겨드리고 선대하며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기억하시고,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통해 선대 받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감사해서 선대해주신 분들을 위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던 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하고, 몇 차례 진급하지 못하던 직업 군인이 진급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갈 수 없었던 좋은 지위에 오르는 등, 하나님께서 저를 선대했던 그들을 또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선대하는 손길은 무언가를 바라기보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하나님은 그 손길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예수님을 섬겨드렸습니다. 향유 옥합은 단순히 금전적으로 비싼 것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 여인에게 가장 큰 소원이자 꿈인 결혼의 혼수품이었습니다. 결혼 첫날 남편에게 부어주고, 또 장례할 때 몸에 발라주는 의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여인의 진심을 아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감동하셨는지,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인의 일도 전해지고 기념되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막14:3~9).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선대하는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늘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감동을 드리고, 기념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13:20).
정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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