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배움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7년 전, 제가 가르치던 영어 회화 수업에 몸집이 왜소한 60대 초반의 여성분이 있었습니다. 벌처럼 달콤한 꿀을 먹는 인생이 되고파 지은 그녀의 영어 이름은 ‘Bee’. 혼자 미국에서 배낭여행 하는 것이 꿈이라던 그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남편과 일찍 사별 후 자식들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시장에서 봉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두 딸이 성인이 되어 앞가림하게 되자 이제 나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고 영어 공부에 도전하셨지요.
A, B, C, D도 제대로 몰랐던 그녀는 맨 처음 어린이 영어 학습지와 인터넷 강의를 병행하며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약 1년 반의 시간이 흐르고 문화센터에 있는 영어 회화반을 등록한 첫날, 월등한 수강생들의 눈치에 주눅이 들어 수강을 포기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이내 배움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두 번째 수업에서 다과를 준비하고 부족한 자신을 도와달라고 고개를 숙인 그녀. 무시했던 자들은 그녀를 도왔고, 점차 영어에 자신감이 붙게 된 Bee는 체계적인 영어 회화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을 찾았고, 당시 초·중급반을 맡고 있던 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첫 수업이 6시 40분이었던 그 시절,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맨 앞자리 앉아 전날 배운 수업을 복습하고 있는 그녀와 마주하였습니다. Bee의 장점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기, 끊임없이 영어를 사용하기, 모르는 것은 메모해 두었다가 질문하기’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한 단계 한 단계씩 레벨테스트에 통과하여 원어민 회화반에 다다르게 됩니다.
“선생님! 저 다음 달에 미국으로 배낭여행 갑니다!” 어느 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며 교실로 찾아와 감사 인사와 함께 소식을 전해준 Bee.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우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그녀의 상기된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합니다.
여러분은 이루고픈 꿈이 있으신가요? 꿈에 도전하는 데는 나이가 상관없습니다. 모세가 80의 나이에 20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겠다는 꿈이 그를 부지런하게 했고, 늙지 않게 하였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너는 안돼’라는 마귀에게 속지 말고, ‘생각을 바꿔! 너는 할 수 있어! 내가 너와 함께하잖아(막9:23)’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꿈에 도전하여 멋진 인생을 만들어 갑시다!
김진실 사모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가늘게 내리는 비는 조금씩 젖어 들기 때문에 옷이 젖는 줄 모르나 결국 옷이 젖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것도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늘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딤후4:2). 단번에 변화될 것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전한 복음이 누군가에게 가랑비가 되어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 푹 젖을 수 있는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학생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으나 성인이 된 후 세상에 나가 방황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학생 때 했던 신앙생활이 다 헛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랑비처럼 제 삶에 스며들었던 말씀과 신앙생활 덕분에 주께 돌아온 제 삶이 더 푹 깊이 주의 은혜로 젖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중고등부 때 맞은 말씀의 가랑비는 제 삶 속 깊은 곳을 적셔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말씀이 제대로 심기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몫을 잘 해내면 됩니다. 그러면 변화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고전3:6~8).
당장에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말씀을 뿌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고의 때에 그들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내일도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합시다.
윤에녹 생도
황금률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고 힘쓴다. 장난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보행기에 태워 밀어주기도 하고, 엎어도 주고, 안아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젖을 물리고, 모두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것이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려고 할 때가 있다.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부리기도 하고, 심부름해줄 때도 있고, 어느 날은 방 청소를 해놓기도 한다.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이다.
청춘남녀들은 사랑하는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을 아주 많이 한다.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 장미꽃 100송이를 선물한다든지, 예쁘게 손편지를 써 초콜릿과 함께 예쁘게 포장하여 선물한다든지. 청춘남녀들이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는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우리가 누구에게 기쁨을 주면 그 기쁨은 배가 되어 돌아온다. 아이가 학교에서 상을 받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뻐한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가 상 받아왔으니, “치킨 시켜 줄까? 아니면 피자 시켜 줄까?” 한다. 내가 기쁨을 아버지 어머니에게 드렸더니 그 기쁨이 피자가 되어 돌아오고, 치킨이 되어 돌아온다. 그날 그 집에서는 치킨과 피자를 먹으면서 온 식구가 기뻐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를 황금률이라 한다. ‘대접’이란 말씀은 다른 말로 ‘존중’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한다. 미국에서 설렁탕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손님이 깍두기 좀 더 달라 한다. 바빠서인지 잊었는지 깍두기가 오지 않자, “야! 왜 깍두기 안 가져와? 내가 누군 줄 알아?” 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 학생 왈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내가 누군 줄은 아십니까?”, “네가 누군데?”, “나는 깍두기를 빨리 갖다 줄 수도 있고 늦게 갖다 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존중하라는 것이 황금률이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하여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자.
임택함 목사
건강으로 보답합시다
김장호 씨는 3년 전 술을 마시다 쓰러져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오랫동안 마셔온 술 때문에 간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져 있었죠. 결국 첫째 딸에게 간을 이식받았고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퇴원한 그는 또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 작년에는 둘째 딸의 간까지 이식받게 되었죠.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기 전날에도 그는 술을 마셨고, 지난주에는 연속 5일 동안 새벽까지 마셨죠. 검진 결과표에 드러난 그의 간 상태는 무척 나빴습니다. 담당 의사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식이 간 기증하는 거, 당연한 일 아닙니다. 예전에는 간 수술하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기증자도 목숨 걸고 하는 수술이에요. 딸 둘이 아버지를 위해서 목숨을 건 거라고요. 또다시 간이 망가져서 오시면 제가 어떻게 수술합니까. 또 술 마실 게 뻔한 사람을요. 저는 앞으로 환자분의 수술도, 진료도 못합니다. 저한테 더 이상 오지 마세요.”
드라마 의 한 에피소드입니다. 딸들에게 두 번이나 간 이식을 받고도 계속 술을 마시는 김장호 씨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저는 분노했습니다. 실제로 매일 약 6명의 환자들이 이식을 기다리다 기증자를 만나지 못해 사망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장기를 기증받는다는 건 기적과도 같죠. 기증자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단 하나뿐입니다.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몸을 정성껏 돌보는 일, 다시는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목숨 다해 관리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김장호 씨와 다른 사람일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간이나 콩팥 같은 장기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살점이 무참히 뜯겨나가는 채찍을 감내하신 건 우리가 병에서 놓임 받아 건강하게 살기 바라셨기 때문이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서 53장 5절의 말씀을 진실로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예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음을 입은 우리 몸을 잘 돌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좋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선택 사항이 아니에요.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하는 것과 같은 크리스천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올해 저는 몸을 상하게 하는 한 가지를 끊고 몸에 좋은 한 가지를 추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빵과 과자, 탄산음료, 젤리 등을 즐겨 먹었는데, 그중에서 그나마 덜 좋아하는 탄산음료만이라도 끊기로 했습니다. 3개월 동안 탄산음료를 입에 대지 않고 있는데 몸도 마음도 기쁩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계단 오르기를 추가했습니다. 출근할 때 10층에 있는 제 자리까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몸에 나쁜 습관을 한 번에 바꾸긴 쉽지 않겠지만,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의 육신을 잘 보살피고 관리해 주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수명을 사는 동안 건강한 몸으로 주님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올해 건강을 위해 여러분이 끊고 싶은 한 가지, 그리고 추가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신은혜
빈 계란 
매사추세츠주의 한 교회에 여덟 살 난 톰이란 소년이 있었다. 그는 병약하여 늘 휠체어에 실려 교회에 나왔다. 부활주일을 한 주 앞둔 주일에 주일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계란을 주며, 무엇이든 ‘생명’을 가리키는 것을 넣어오라고 했다.
드디어 부활주일, 아이들은 꽃과 나무, 곤충들을 그 안에 담아왔다. 이제 톰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톰이 선생님께 내민 계란은 비어 있었다. 선생님은 톰이 아파서 준비하지 못한 것이라 여겨 “괜찮아, 톰.” 했더니, 톰은 밝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준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무덤입니다. 그분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생명이거든요.”
톰은 10개월 후 하늘나라로 갔고, 그의 무덤에는 꽃 대신 빈 계란이 놓였다.
세상에는 공자의 무덤도 있고, 석가모니의 무덤도 있다. 많은 성인들이 사람을 가르치고 깨닫게 했다. 그러나 참 생명을 가르치진 못했다.
새가 다시 새알 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나비가 고치 속으로 들어갈 수 없듯, 예수를 다시 무덤 속으로 넣을 수 없다. 그러니 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활하여 참 생명을 얻으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눅24:7).
세상의 소금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눈으로도 봅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실시간으로 새로운 뉴스가 쏟아집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건 사고가 발생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양한 화제와 이슈를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의 가치관에 노출됩니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싹틉니다.
누군가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손해를 입힐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외칩니다.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손해 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야 정상입니다. 돈만 있으면 인생에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때로 눈속임과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할까요?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오리를 가자 하면 십 리를 가라 하십니다.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하십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정직하고 진실되며,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라 가르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 하십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성경은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버려져 밟히게 된다고 합니다(마5:13). 짠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데도 쓸 수 없습니다. 싱거운 음식에 간을 낼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싱겁습니다. 당한 만큼 복수하는 것은 뻔한 전개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일은 흔합니다. 세상의 일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뻔하지 않습니다. 늘 새롭습니다. 싱거운 세상의 가치관을 뒤엎으며 짠맛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짠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없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의 것을 따르게 됩니다. 시류라는 물살에 휩쓸리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를 때 세상 속에서 진정한 짠맛을 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따를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지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마음을 새롭게 하길 소망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전소희
so2eej@naver.com
늘 체크하자!
신앙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바로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 주위에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그게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냥 내 눈앞에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 나를 서운하게 하는 사람,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 나보다 돈 많고 건강한 사람, 그런 사람들만 보이고, ‘나는 대체 왜 이렇지?’ 하며 감사하지 못하게 되곤 한다.
감사할 수 없는데 더더욱 기쁠 수가 없다. 사실 주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쁨이 넘치는 게 당연한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남들과 다투게 되는 것은 사실 서운함 때문이 많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안 하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이런 서운함을 느끼면 고치려 들고 불평하다 원망도 하게 된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그럴만한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지나가면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 순간엔 그게 잘 안되는 게 현실이다. 서운함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란 걸 깨닫지 못한 경우다. 성경 어디에 서운하란 말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냥 기뻐하라고 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그러기 위해선 늘 기도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순간 어두움이 찾아오고, 잠시 애통의 단계에 있다 하더라도 다시 회복하고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내가 지금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 못 되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스스로를 늘 체크하고 점검해 늘 하나님을 바라며 기쁘게 살아가는 최고의 영적 상태로 만들어 가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