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24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리 사명에 부도내지 말자(마28:16~20)

1247호 · 2024-03-31

“이 길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2024년 예수중심제자신학원 입학식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길은 내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부르셔야 하는 소명(召命)이 있어야 하고, 소명을 받은 자에게는 꼭 감당해야 할 사명(使命)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사명자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부모, 형제, 처자는 물론이요, 자신의 것을 다 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라고 말씀하셨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물을 버려두고(마4:20), 야고보와 요한이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은 것입니다(마4:22).

전쟁터에 나가는 자가 자식 걱정, 부모 걱정, 사업 걱정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다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가 잠깐 가족과 인사를 나누겠다고 하자 예수님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눅9:62)고 매몰차게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에,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9:60)고 말씀하신 것은 사명을 받은 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내 뜻, 내 지식을 다 버리고 주군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주님의 것과 상충되는 내 모든 것을 버려야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라고 고백했습니다. 내 것을 버릴 때 예수가 발견되고, 그럴 때 예수의 명령에 오직 ‘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후1:19).

셋째, 사명자는 죽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사명이 뭡니까? 부릴 사(使), 목숨 명(命)입니다. 부리는 자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필요합니다. 다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며칠 유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가보라는 유명한 선지자가 와서 바울의 띠로 자기의 수족을 동이며,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행21:11)고 예언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선생님, 가지 마세요. 죽는다잖아요.” 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때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21:13). 그리고 묵묵히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저 역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이미 목숨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런 각오가 있었기에 낯설고 물선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입국하면 죽인다는 협박 사건, 우즈베키스탄에서 추방되고 입국금지 당한 일, 의사 면허 없이 병 고친다는 광고를 낸 것이 발단이 되어 키르기스스탄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추방된 일, KGB에 끌려간 사건, 한밤중 러시아 호텔 방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조사를 받은 일, 호텔 테러 위협사건, 에스토니아 자동차전복, 칠레 고속도로 차 고장 사고, 멕시코 종교 비자를 받기 위한 경비행기의 8시간 곡예비행, 멕시코 호텔 잠자리에 왜 이다지도 빈대는 물어대던지…. 그래서 저는 저와 함께하는 선교 일행에게 자주 말합니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가라.” 그러나 그들도 이미 사명자이기에 지금까지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자는 절대 충성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 충성의 다른 이름은 ‘최선’입니다. 최선이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는 것’(눅10:27)입니다. 전심전력(全心全力)하는 것이 최선이요, 그것이 충성입니다. 제 목회 철학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는 말씀으로 삼은 것은, 이것이 사명자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정하지 않으십니다. 사명자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치 않으면 어찌 됩니까?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사명이요,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본토와 아비와 처자를 뒤로 하고/ 죽음을 앞세우고 주만 따라갑니다…/ 오늘도 가렵니다/ 주의 복음 전하러/ 내일도 가렵니다/ 주의 복음 전하러”

목회 초에 이 찬양을 작시하여 7년 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다 얼른 천국에 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이 끝나지 않아서입니다. 이것이 제가 더욱 열심을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사명에 부도내면 큰일 납니다. 부도(不渡)란 아닐 부(不)에 건널 도(渡), 곧 건너서는 안 되는 다리입니다. 왜냐? 그 다리는 지옥으로 가는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자상하신 것은 사명자에게 내 재량껏, 내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연장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명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120문도가 성령을 받고 나아가 예수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성령을 받으셨지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사명자입니다. 목사나 전도사만 사명자가 아니라 성령을 받은 자 모두가 사명자입니다. 손과 발이 역할이 다르지만 한 몸에 붙어 있듯, 분야와 역할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주님의 사명을 받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값을 보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치를 보고 택하신 것입니다. 외모나 학벌, 가문을 보고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고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감사히 여겨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사명을 잘 감당하면 충분한 보상이 따르기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저는,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30)는 약속을 온전히 믿기에 절대 충성, 절대 열심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이 사명을 완수하여 그날에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받읍시다. 할렐루야!

직업의식이냐

사명의식이냐

졸업장만 받지 말고

우등상을 받는 자가 되자

124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