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24장에 안식 후 첫날, 여인들은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여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질문한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이어 천사는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눅24:6~7)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여인들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냈다.
이 여인들은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하고, 열성이었던 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이 누누이 말씀하신 ‘부활’을 믿지 않았다. ‘설마~’ 했겠지. 정작 이 말씀을 믿은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빌라도였다. 그들은 예수가 부활할 것을 염려하여 무덤을 굳게 지키도록 조치하지 않았던가.
오늘날도 부활하신 예수가 아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마태복음에 천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28:5)라고 말했듯, 많은 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만을 찾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죽은 자가 무슨 힘이 있고, 뭘 해줄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하지 않았는가(전9:4). 산 자라야 권세가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살아나신,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다. 다시 사신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 삶에도 부활의 역사가 있고, 예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것들이 예수에게 복종했듯, 예수 이름을 소유한 우리에게도 나타나는 것이다.
살아계신 예수의 이름으로 만물을 명령하고, 살아계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살아계신 예수의 이름으로 안수하라. 분명히 영·혼·육이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