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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상을 쌓는 법

1240호 · 2024-02-11
신앙논객

하늘의 상을 쌓는 법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남아있다. 그 내용 중에 가장 유명한 문구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의한 바로 이 말이다. “사람(=국민, 백성)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말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모든 일들이 아무 소용도 없이 다 불타 없어진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공력을 세우는데, 그 공력을 불로 시험해서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하면서 이 세상의 지혜나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누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지도자들조차도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역자들일 뿐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한다.

새신자들이 교회에 왔을 때 왜 교회에 왔는지 물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설교 시간을 통해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교회에 온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을 때, 아직 기초가 놓여있지 않았을 때는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는 사람이 계속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기 때문이다(히11:6).

내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직분 생활을 하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이유와 목적을 점검해보라.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사람’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성령에 충만하면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만족이나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우상 숭배와 같기 때문에 그날에 받을 상이 없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자. 그것이 하늘에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상을 쌓는 유일한 방법이다.

신혁주 전도사

책을 펴다

성공과 축복은 전염된다

나는 신명기 28장을 좋아한다.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신 장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앞의 축복장만을 읽는다. 저주는 원치 않을뿐더러 나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기로 작정했으니까.

복 있는 자가 있다. 그가 가면 일이 잘 되고, 사람들이 붐비고, 화평케 되는 사람이 분명 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라 했다. 그는 그의 조카 롯이 먼저 좋은 땅을 택하고 나서 반대쪽을 택하다 보니 척박한 땅을 차지했으나 그는 그런 환경에서도 부자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복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 아들 이삭도 가는 곳마다 복이 따라 다녔다. 파는 곳마다 우물이 솟았다. 적에게 우물을 빼앗겨도 그가 옮겨 땅을 파기만 하면 우물이 솟았다.

먼저 복 있는 자가 되고, 또한 복 있는 자를 만나야 한다. 그럼 복 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예수 믿는 자가 복 있는 자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다. 성령에 충만하여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복 있는 자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그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아낌없이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복 있는 자인가? 당신 옆의 사람은 복 있는 자인가? 사람은 환경이다. 내 환경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 그러므로 사람을 가려 사귀라. 이는 사람을 차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잘 만나면 복이 오고, 사람을 잘못 만나면 저주가 오기에 그렇다. 올해는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이초석 목사 저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 중에서

소망의 언덕

Amazing grace

성공회 신부였던 존 뉴턴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Amazing Grace(놀라운 은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애창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찬송가입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the wretch like me. 놀라우신 주의 은혜, 나같이 가엾은 사람을 구해주신 소리, 이 얼마나 감미로운가요.” 한글로 번역하면 참 고상한 느낌이지만, ‘wretch’는 ‘쓰레기 같은 놈’, 이런 느낌입니다.

존 뉴턴은 과거 흑인 노예무역을 하면서 수많은 흑인들을 학대했던 쓰레기 같은 자신을 깊이 참회하고, 그런 자신을 주의 종으로 써주심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 찬송을 썼습니다.

2024년,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떤 처지로부터 구원받았는지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를 잊은 자와 과거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자입니다. 어느 한 장로님은 젊은 목사에게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셨습니다. “이 자격 없는 자를, 아무 가치 없는 나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상상도 못했던 부를 허락해주셔서 주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라고. 그분은 30여 년 전 시절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간혹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때가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해?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마치 처음부터 강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부요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에 들어가 약속된 축복의 땅을 차지하거든 네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여 노예를 선대하라고. 장막절을 통해서 네가 광야 생활했던 것을 잊지 말라고. 유월절을 통해서 너 역시 죽음이라는 저주에서 예외가 아니었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024년,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참으로 누리기 위해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마음을 겸손히 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이현승 목사

coollee0817@naver.com

치우치지 않는 저울

하나님의 말씀은 잡는 자가 임자다

총회장 목사님께 상담받으러 갔다가, 며칠 전 꾸었던 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잠시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얼마 후, 갑자기 손뼉을 탁 치시더니 꿈을 풀어주시고, 앞으로의 방향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며,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겪어본 적 없는 장래의 일을 말씀하셔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기본부터 차근차근 실천했습니다.

1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일에 발전은 있었지만, 더 큰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기도원 집회에 참석하여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 목사님께서 단에서 통성 기도를 시키시고, “기도원을 떠나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있을 거야!”라고 선포하셨는데, 그 말씀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아멘!” 하고 그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잡았습니다.

며칠 뒤, 1년 6개월 전 총회장 목사님께서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던 상황이 그대로 벌어졌고, 목사님께서 알려주셨던 대로 적용하여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날 목사님께서 저에게 장래의 일을 말씀하시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이미 준비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의 말씀을 그냥 지나쳤거나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던 인내의 시간이 힘겨워서 포기했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 외에도 지난 교회 신문에 가족 재판 문제로 기도하던 중 단에서 목사님을 통해 선포된 사무엘상 17장(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윗)의 말씀을 받은 후 목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네가 의롭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법무법인이 너를 상대할지라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변호사 없이 담대히 재판에 나가 승소했던 간증(교회신문 973호/2018.10.21),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니(마25:40, 마10:41~42), 기도원에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천 개를 대접하면, 단번에 예수님을 천 번 대접할 수 있다’고 총회장 목사님께서 지교회에서 하셨던 말씀을 전해 듣고, 그 즉시 아이스크림 3천 개로 예수님을 대접한 후, 새집에 들어가게 되었던 간증(교회신문 1008호/2019.6.23)이 실렸는데, 모두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반응한 결과였습니다.

새해 송구영신 예배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2024년에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꼭 필요한 것을 구하라, 주신다’고 말씀을 선포하실 때,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던 전지전능한 하나님(왕상3:5~15)께서 그 시간 눈앞에 찾아오셔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듯하여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절호의 기회에 흥분된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이제 그 일을 이루실 때까지 눈앞에 찾아오신 솔로몬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실 하나님(욥5:9)을 기대합니다.

주의 종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믿음으로 실천하는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께 구한 것을 모두 받고 나누어서, 2024년 표어처럼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산 한 해가 되었노라고 하나님만 자랑하고 높이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정명관

v-777@naver.com

진리에 이르는 지식

잘못 알고 있는 5대 성인

사람들은 석가,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예수님을 종교의 창시자 또는 5대 성인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부귀영화나 권력과 욕심을 버렸다는 것과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깨끗이 살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들을 존경하면서 이들의 교훈을 듣고 성인으로 추종하고 있다. 5대 성인이라는 말은 이러한 공통점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의 잘못된 지식과 판단으로 나온 결과다. 석가,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를 예수님의 수준으로 올려놓은 무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성인이란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거룩이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자연계를 초월함으로써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석가,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는 육신의 아버지의 씨로 태어난 자들이며 죄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사람으로 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 남자의 씨로 사람이 된 자와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이 다르다. 사람은 거룩할 수 없으므로 석가,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에게는 성인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없다. 이들은 남자의 씨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다가 육신이 죽었고 무덤이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 없으며, 부활하신 모습을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으며(고전15:6),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림으로써 우리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거룩한 성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분이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니라”(롬3:4).

석가,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는 거짓된 종교의 창시자들이다. 이들이 사람의 기준으로 명예와 권력, 부귀를 초월했을지라도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의 씨로 태어난 죄인이며, 따라서 이들의 가르침은 참 진리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 이들의 가르침이 진리인 줄로 착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승효 목사

Sungye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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