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는 3년 기근 속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갈멜산 결전에서 혼자 850명을 상대하여 싸운 후 승리하였지만, 이세벨의 살해 위협을 받고 유다의 브엘세바로 즉시 도망한다. 그리고 그곳에 시종을 남겨두고 혼자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을 더 걸어서 몸을 숨기고, 로뎀나무 아래로 내려가 살 소망이 없으니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할 정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렇게 지친 엘리야 선지자를 로뎀나무 아래에서 호렙산으로 부르신다. 천사가 가져다준 음식으로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40주야에 걸쳐 300km 이상의 길을 걸어서 시내 반도의 호렙산으로 다가갔다. 이 산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모세야, 모세야… 너는 신을 벗으라”(출 3:4~5)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혼자서 하나님과 마주한 그 호렙(출3:1)산이었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던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탈진한 엘리야의 후반전을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홀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엘리야에게 칠천 명의 신실한 동역자를 약속하신다. 혼자만 남았다는 불안과 공포, 분노와 한탄이 엘리야의 입에서 터져나오자 하나님은 칠천 명의 동역자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아람왕 하사엘, 이스라엘의 왕 예후, 선지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는 사명을 주신다. 엘리야는 이 사명을 마칠 때까지 혼자가 아니었다. 신실한 동지들이 그의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은 높은 산이 있는가 하면 낮고 험한 골짜기도 있고, 승리하여 기쁨의 환희가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수치도 있다. 인생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끝내실 때까지 우리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기쁨 가득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준비된 인생 후반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엘리야처럼 다시 일어나 주님이 주신 소명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길 소망한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제사 지내지 말라
예수 믿기 전 필자는 장남에 장손으로서 집안의 모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는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고전10:20)라는 말씀에 결단하고 제사를 물리쳤다. 집안의 어른들은 난리가 났으나 나의 확고한 결단을 꺾지 못하셨고, 결국 집안의 모든 제사는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당시에는 많이 서운해하시던 믿지 않는 어머니와 동생들까지도 이제는 모두가 예수를 영접하여 직분자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첫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겸하여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싫어하신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5).
그리스도인에게 제사는 우상숭배이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맞서야 할 영적 싸움이다.
다니엘은 나라가 멸망한 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그네들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는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이라 거절했더니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라는 명령을 거절하여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어 왕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우리는 설 명절을 통하여 다시 한번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영적 싸움으로 인해 욕하고 핍박과 폭언 등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승리하라. 하나님께서 땅의 복과 하늘의 상으로 보상하실 것이다(마5:10~12).
김상욱 목사
내 삶의 목적
20, 30대가 모여있는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고민거리를 듣게 됩니다. 그중 가장 많은 고민은 일상과 신앙생활의 부딪힘입니다. ‘부딪힘’이라는 것은 한정된 시간과 체력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를 말합니다.
제 동역자들도 같은 부딪힘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업종 특성상 주말에 가장 많이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할 때 주말은 주님께 온전히 드리기로 마음먹었으니 더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주말엔 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액세서리 용품을 파는데 주말에 유명한 팝업이 열려 매출과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섬기기 위해 주말 팝업 행사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마지막 친구는 대학생인데, 시험 기간에도 자신이 교회에서 맡은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 해내고야 맙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초조하고,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고 힘들지만 결국 모든 고민 끝에 주님께 약속한 시간을 드리기 위해 헌신합니다.
세상에서 볼 때는 참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이 있고, 더 편하게 가는 길이 있는데도 그걸 선택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 친구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그들 삶의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읽은 신앙 서적에서 이런 질문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따라가면 실패할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길은 남보다 느리게 가는 길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삶의 목적이 남들보다 빠르게 가는 것이었습니까?’ 이 질문에 제 동역자들은 아마 ‘아니오’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들 삶의 목적은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으니까 말입니다.
요셉의 삶의 목적도 빠르게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총리에 자리에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주 앞에 바르게 사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멀리 돌아가더라도, 천천히 가더라도 주님 앞에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내 삶의 목적을 주께 둡시다. 그 목적을 잃지 않으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소망을 넘어 주 뜻 이루는 삶을 주께 드려봅시다.
장수정
어떤 조류학자가 아프리카에만 서식하는 새의 알을 가지고 와서 재미난 실험을 해보았다고 합니다. 그 새는 갈대를 가지고 집을 짓고 나서 천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둥지 밑에 구멍을 뚫고 그 밑으로 드나드는 특이한 행동 양식을 가진 새였다고 합니다. 새알을 인공부화 한 후에 그물망 안에서 생활하며 5대째 인공부화를 통하여 새끼들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새끼들을 아프리카로 데리고 가서 자연에 방사를 하고 새의 본능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자연환경이었지만 그 새들은 갈대로 집을 짓고 그 둥지 밑에 구멍을 뚫고 드나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원초적인 본능이 있다는 것을 새의 연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죄의 본능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최초의 인간 아담이 저지른 원죄의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중국의 유학자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며 후천적으로 교육과 수양을 통하여 선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잘못된 학설입니다. 원죄의 사슬은 스스로 끊고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원죄를 청산하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죄의 본능에서 해방되어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행복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원하는 만큼 돈을 벌면 행복할 것 같고, 바라던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고, 목표로 하는 무언가를 이루면 행복할 것 같고, 원하던 자리에 오르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행복을 좇아 꿈을 꾸고 쉴 새 없이 달려갑니다. 하지만 정말 그곳에 행복이 있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만남을 통해 행복이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면 망한다’라는 생각이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핍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습니다. 만남만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했습니다.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었습니다. 이대로 삶이 잘못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전전긍긍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한다고 보이는 상황이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가르침 따라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내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쁨이 찾아오고 결핍이 사라졌습니다. 내 힘으로 붙잡고 있던 것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분만이 내 삶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요.
누군가를 만나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누군가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나를 높은 곳에 올려줄 수 없습니다(합3:19). 평생을 붙잡고 온 신념이 깨졌고, 세계관이 뒤바뀌었습니다. 기쁜 소식, 진짜 복음을 만났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다면 누구를 만나느냐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행복을 좇고 있진 않나요? 예수님 없는 행복은 허상입니다. 마셔도 목마를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붙잡고 그분의 인도함 따라 살아가는 삶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2024년은 예수님을 진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한 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소희
so2eej@naver.com
설레는 2024년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들은 항상 기대할 일을 정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물과 용돈을 받는 생일, 명절, 크리스마스가 있을 것이고, 이런 날들 사이에 놀이공원, 영화관람, 친구들과의 모임 등 뭔가 설렘을 가질 일을 끊임없이 계획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에게 며칠 남았는지를 귀찮을 정도로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마가복음 10장에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다. 이는 어린아이와 같이 항상 설레는 맘을 가지고 기다리는 모습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예수를 믿으며 천국에 소망이 있는 우리도 설레는 맘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세상에서 천국의 소망을 맛볼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계획하고 기도해야 한다.
2023년을 뒤돌아보면 나 자신이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많이 세웠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찾는 애타는 마음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간적인 열심이 앞섰던 한 해였다. 하루에 5장씩 성경 읽기, 시간 정해 기도하기, 자기 계발, 운동하기 등의 일상적인 목표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자기만의 목표를 추가해야 한다.
삶의 설렘이 없고 권태롭다면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24년은 이뤄질 걸 상상만 해도 설렘 충만한 목표를 정하려고 한다. 물론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지만, 세상의 짐은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내려놓으려 한다. 세상 걱정 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설렘 가득한 일정으로 한 해를 계획하고, 이뤄졌을 때의 기쁨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송명국 집사
songmkoo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