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누려보자
우리가 목사님을 통해 신앙을 배우며 무엇보다 새로웠던 것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 있는 믿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나약한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니라, 당당한 하나님 자녀의 신앙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러한 믿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목사님이 올해 제시하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보자!’는 슬로건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늘 강조해오시던 말씀이다. 우리 신앙이 좀 느슨해졌다 싶으면 목사님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해야 한다’고 항상 외치셨다. 특별히 코로나 3년을 거치며 침체된 우리 신앙을 원상회복을 넘어 진정한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간절함이 배어있다.
해마다 명절 때면 제사 문제로 갈등하는 가정들을 향해 항상 강조하시는 타협 없는 신앙도 목회 초기부터 늘 강조해오신 말씀이다. 우리 교회처럼 이 문제를 강력히 가르치는 곳이 있을까? 제사 문제로 핍박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성도들에게 목사님은 절대 위로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만은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맞서 승리할 것을 주문하시곤 했다.
오래전에 형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간증이 있다. 명절 때면 제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어느 집사님이 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고 아주 작심을 했단다. ‘그래, 언제까지 이 문제로 전전긍긍할 수는 없다. 목사님께 배운 대로 기도를 충분히 하고 집에 내려가자.’ 그리고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제가 이번 명절에 집에 내려가서 제사에 참석할 겁니다. 그럼 제 눈에 그 조상귀신들이 보이게 해주세요. 다 예수 이름으로 쫓아버리게요.’ 그렇게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고 며칠을 기도하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 너 많이 바쁘다며? 이번 명절에는 올 거 없다.” 하고 전화를 뚝 끊으시더란다. 귀신이 먼저 알고 막은 거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여 이루어보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 내가 한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보리라!’ 그리고 결심했으면 바로 실천해야 한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이 즉시 나가 장사한 것처럼, 절대 미루면 못 한다. 악한 마귀는 우리로 미루게 해서 포기시키는 전략을 좋아한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결심한 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수행한다는 마음 자세가 아니면 수백, 수천, 수만 가지 핑곗거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해외집회에 나가서 자료를 촬영할 때도 며칠의 시간이 있으니 내일 하지 하는 마음에 미루게 되면 절대 처음 마음먹었던 영상을 얻지 못한다. 그냥 지금이다. ‘이거다’ 하면 돌아볼 거 없이 즉시 행동해야 한다. 아예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고 지금 행동해야 한다.
목사님이 예배에 나오실 때마다 마지막으로 알고 설교하고, 마지막으로 알고 안수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마지막으로 안다는 것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도 있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과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문자 하나라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시고 일일이 답장하며, 지금 이 순간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께 나의 신앙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많은 지금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목사님, 오늘의 예수중심교단이 이루어진 것 아니겠는가.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 삶이 쌓인 결과다. 오늘, 지금, 나의 선택과 결심과 행동과 실천이 쌓여 내일의 나,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 여기에 다른 왕도는 없다. 올해 정말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목사님께 배운 것을 한 귀로 흘려버리지 말고, 내 삶에 적용해보자.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 기도의 제목을 내놓고 날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보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 쫓자.
제발 목사님께 배운 대로만 해보자.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찾아올 것이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