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237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교회를 세우심

1237호 · 2024-01-21
한국 교회사

교회를 세우심

하나님은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된 지체로서 지상에 세워진 거룩한 공동체다. 교회는 주님의 몸임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골1:18).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 되신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세상의 택한 백성을 교회로 불러 모으신다(막13:27).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인 교회다. 하나님은 교회를 먼저 세우시고 그곳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신다. 사람이 교회로 모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교회로 사람을 모으신다. 우리가 보는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교회로 세움의 결과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교회를 세우셨다. 신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민족과 나라에게로 교회가 세워졌다.

한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도 마찬가지다. 고조선,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지나 한민족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죄를 짓고 샤머니즘, 불교, 유교, 도교 등 우상숭배 속에 있던 민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한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때가 차매 복음 전파자들을 보내셨다. 이 복음이야말로 한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쁨의 복된 소식이었다.

조선의 종교, 정치, 사회, 문화적 정황은 복음을 갈망하는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는 혼돈의 상황에 빠졌고 어찌할 수 없는 백성들에겐 희망이 없었다. 조선 말기, 위로는 임금에서 아래 말단의 고을 원님까지 부패한 탐관오리가 득세하고 정의가 사라져 연약한 백성은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궁궐부터 시골 마을까지 무당이 있어 나라와 백성들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갔다.

전통 종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영적으로 공허함 속에 있었다. 조선 사람은 옛 종교에 대한 충성이 식었고, 믿음을 잃고 있으며, 인간이 만든 신앙의 공허와 거짓과 탐욕을 보고 있었다.

이런 종교적 공허 속에서 영적 갈망이 가득한 그때,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한반도에 전해졌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였다. 백성은 종교, 정치, 경제, 그 어디에도 기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복음은 생명수와 생명의 떡과 같았다.

복음은 사람의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삶을 변화까지 이끌어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된 기독교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 교회에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처럼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다.

김종춘 목사

주님을 향하여

나는 행복해요

일을 마치고 나면 전단지 묶음을 들고 골목과 사거리를 돌며 전도를 했다. 사실 건물 청소를 하고 있던 처지에, 일을 마치고 다시 거리를 돌며 전단지를 돌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온몸에 시큼한 땀 냄새가 배어 나올 정도로 1층에서 5층까지 오르내리다 보면, 일이 끝날 때쯤이면 몸은 천근만근이요 다리는 휘적휘적 풀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을 마치고 나면 전단지 한 묶음이라도 돌려야 마음이 편했다. 그만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한창 달아올라 있던 때였다.

일하던 곳에서 집까지는 걸으면 30분 정도 거리로, 버스 정류장으로 여섯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전단지를 돌리곤 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직접 줄 자신이 없어 우편함이나 가게 문틈에 끼워 놓곤 했다. 그런 내 전도 방법이 싫으셨던지, 한날은 주님께서 나무라시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이 떨기도 했고 말도 서툴렀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전하니 차츰 대담해지면서 자신감도 커져갔다. 전도할 때의 기쁨이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단지를 돌리다 보면, 어느새 천근만근이던 몸은 에너지가 넘쳤고, 입에서는 찬양이 흥얼흥얼 쏟아져 나오곤 했다. 그때 내가 즐겨 부르던 찬양이 「나는 행복해요」이다.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 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라며 눈물, 콧물 범벅 되어 몇 번이고 반복해 부르곤 했다.

낡은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내겐 인내가 필요했다. 내 집이지만 편하게 들어서지지가 않았다. 오래도록 제 방에 갇혀 지내는 아들을 웃는 얼굴로 대하기 위해선 내 안에 이런 흥이 넘쳐야 했다. 한껏 주님을 향한 흥으로 들떠있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아마 전도는 이런 나를 위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전단지를 돌리며 흥에 겨워 찬양하다 보면 잠시나마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쉽게 공감되지 않을, 그 외로운 시간을 그렇게 주님과 함께했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견디게 하셨고, 주님을 사랑하게 하심으로 메마르지 않게 하셨다. 행복할 수 없는 시간을 행복하다고 고백하며 사는 시간이었다.

주님을 만나 행복하다는 엄마의 고백을 믿지 못하던 아들은 점차 그것이 진짜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엄마는 웃음이 많아졌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절망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들은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차츰 엄마의 행복한 기운에 전염되어 갔다. 엄마가 공부를 하면 저도 공부를 하고,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저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아들은 조금씩 방을 벗어나 학교로 돌아가고, 사람을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차 아들의 시간표는 빠르게 변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도전하며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행복했다.

박영임 생도

123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붕우칼럼
교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