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자(요15: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명예를 걸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약속을 우리에게 하셨을까요? 첫째는 당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 연고요(마3:16), 둘째는 그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출산율이 심각할 정도로 낮습니다. 키우고, 가르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낳아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커.’ 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힘드니까 결혼도, 출산도 미루거나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 예비하셨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요, 만물이 다 그분 것이요, 또한 여호와 이레가 되시기에 우리에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소생케 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2장 9절에는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셨고, 로마서 8장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심으로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할렐루야!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5)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될 당시 20세였습니다. 통치 철학을 알 나이가 아니니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7~9). 솔로몬은 자기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구하는 것이 합당한지라 하나님이 부와 영광도 함께 주사 열왕 중에 이와 같은 이가 없게 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여리고 길목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알고 그는 목청껏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이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부르셔서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바짝 매달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라고 말했습니다. 소경에게 보는 것보다 큰 소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말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고 눈을 밝혀주셨습니다.
솔로몬이나 바디매오는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말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 지금 내게 필요한 것, 내게 현존하는 문제를 솔직히 말씀드려야 합니다. 가끔 제가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해줄까 하고 물으시면 뭐라고 답할 겁니까?” 하면 “은혜요.”, “성령충만요.” 이러는 분들도 있고, 아예 답을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네게 뭘 하여주길 원하냐?’ 하고 물으시면,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답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진실을 아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 우크라이나에 처음 갔을 때 먹을 것이 변변찮았습니다. 빵 하나 사려면 줄을 길게 서야 했으니 돈을 가지고도 굶는 신세였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번에 갈 때는 ‘잘 먹게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공항에 전통 빵을 구워 내오고 풍성한 만찬까지 줄을 이었습니다. 또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꼭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관 기관이 잘 돌아가게 하시고, 오늘도 교통사고 나지 않게 하시고, 손대는 자마다 병에서 낫게 하소서.”
‘중언부언하지 말라’(마6:7)는 말씀이 바로 구체적인 기도, 실질적인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모세는 “여호와여, 고기 주세요.”라고 했고, 아들이 없어 끌탕하던 한나는 “아들 주세요.”라고 했고, 입다는 전쟁의 승리를,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의 병 낫기를 구했듯이, 지금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괜히 폼잡지 말고, 잘난 체하지 말고, ‘하나님, 집 주세요.’, ‘취직시켜주세요.’, ‘병 고쳐주세요.’, ‘장가가게 해주세요.’, ‘시집가고 싶어요.’ 이렇게 기도하세요.
우리 교회 성도 중에 딸이 유학 중인 의사분이 있는데, 가끔 전화해서는 “아빠, 돈 보내주세요.” 하고 전화를 툭 끊는답니다. 아주 자식 유세가 보통이 아니라고 넋두리를 하더군요. 맞습니다. 부모니까 그런 겁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도 자식 유세 해도 됩니다. “이거 주세요.” 당당히 구해도 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에 타서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는 그 일로 금식하죠. 어느 날, 아닥사스다 왕이 그의 안색이 초췌한 것을 보고는 무슨 근심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조국에 대해 아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크게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조국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체하지 않고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느2:5)라고 말합니다. 너무 절실했기에, 너무 간절했기에 조심스럽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말이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이에 왕은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느헤미야를 도왔습니다.
저는 손자들에게 ‘무엇을 먹을래?’ 물었을 때 ‘아무거나요’ 하는 놈은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그다지 먹고 싶은 게 없다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모르셔서 물어보는 게 아닙니다. 다 아시지만, 그래도 묻는 것은 우리의 소망의 열도를 재기 위해서입니다. 소망의 열도가 높으면 언제 물어도, 어느 상황에서도 원하는 것이 툭 나오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급하지 않다는 거지요. 안 주셔도 괜찮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장 일자리가 없습니까? 앞뒤 사설 빼고 “하나님, 일자리 주십시오. 벌어야 가족이 삽니다.”라고 기도하세요. 병들었습니까? 바디매오처럼 “병 고쳐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구하세요. 미사여구 쓰지 말고 직고하세요. 그러면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 다 해결해주실 것입니다(마7:11).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과소평가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구하지 않음은 믿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하며 하나님을 내 지식이나 상식이란 잣대로 재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고, ‘무엇이든지’ 주실 마음이 있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올해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 하나님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구할 때, 간절히 찾을 때, 기필코 열고 말겠다 하고 두드릴 때 움직이십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제게 물으시면, 저는 지체하지 않고 “서울 성전 건축해주세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간절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가장 합당한 시기에 멋진 서울교회를 주실 줄 저는 믿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물으실 때 당신은 무엇이라 답하겠습니까?
필요한 것을 조목조목
적어서 기도하라
중언부언하는
기도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