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것 부러워 말고 내 것을 찾아라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려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지혜이며,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목회 40년에 들어섭니다. 누차 말하지만 ‘만든 자의 말을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분 말씀하시길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이니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여 악한 영들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고 물리치며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알고 준비하고 계시기에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의 것만 부러워하고, 자기 것을 찾지 못하니 인생이 고달픈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 말처럼,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약1:14~16).
왜 인생이 고달픈지 아십니까? 내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신발도 나에게 맞는 것을 신어야 발도 편하고 먼 길을 무리 없이 갈 수 있습니다. 비싸다고, 명품이라고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발에 맞아야, 내 발에 편해야 최고의 신발인 거 아닙니까? 그저 남이 좋다고, 명품이라고 혹해 봐야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명문대를 나오고, 남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닌다고 일등 신랑감이 아니라 나와 맞아야, 신앙이 맞고, 인생관이 맞고, 가치관이 맞아야 평생 해로할 수 있는 겁니다. 나에게 맞는 직장, 나에게 맞는 일, 나에게 맞는 음식,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아비멜렉이 요설로 친족을 꾀어 형제 칠십인을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그 살육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말째 요담이 비유를 들어 친족 세겜 사람들을 깨우칩니다.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려 하는데, 감람나무는 자신의 기름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에 요동하지 않겠노라 거절합니다. 무화과나무는 달고 아름다운 자신의 실과를 버리고 요동할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새 술을 버리고 요동할 수 없다고 역시 거절합니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자기를 왕으로 삼겠거든 모두 자기 그늘에 피해야 하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로 살라버리겠다고 겁박합니다.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친족들의 그릇된 판단을 나무라고 경고하는 비유인데, 깜냥이 되지 않는 자, 즉 왕 자리에 맞지 않는 자를 세운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라 경고합니다(삿9:8~15).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처럼, 자기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그 일에 충실한 것이 가장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입니다. 나는 목사가 나에게 너무도 잘 맞습니다. 오죽하면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된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니 그저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어리석게도 자기 삶을 불행하고 고달픈 길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어느 장로 부부를 만났는데, 그 아내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거라 고백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생각이 깊었는지 모릅니다. 이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배필을 찾으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게 말처럼 쉽냐고요? 그러니 우리 주님께서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찾으라 하신 것은 찾으면 찾는다는 약속인 겁니다. 구하라 하신 것은 구하면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약속입니다. 다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찾지 않습니다. 구하지 않습니다. 두드리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찾지 못하고 고달픈 인생을 사는 겁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당장 오늘부터 구하세요, 찾으세요, 두드리세요. 당신에게 맞는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2024년 새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