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천국 간다
친구 따라 천국 간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다. 스무 살 대학생 때부터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이제는 전도사로 사역한 지 어언 11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해마다 공통으로 보게 되는 현상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함께 다니며 어울리는 사람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취미나 관심사, 또는 신앙이 비슷한 사람끼리 동질감을 느끼면서 호감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그와 동화되는 것이다. 심지어 연인이나 부부는 접점이 많다 보니 외모나 분위기까지 비슷해지기도 한다.
도서관에 다니는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자기도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 친구보다 자기가 더 많이 책을 읽는다는 성도도 있고, 헌신 봉사하는 선배들을 닮고 싶은 마음에 그들처럼 예배와 모임이 끝나고도 교회 성전에 남아 더 부르짖고 기도하다 보니 어느새 그 선배들보다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된 청년도 있다. 물론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배드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는 걸 번폐스러워하는 주변 사람의 영향을 받아 예배와 모임에 시간을 드리는 데 인색해진 성도, 원래는 근검절약하면서 살았었는데 꾸미기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덩달아 사치스러워진 청년, 쉽게 분을 내고 상처 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어느새 자신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버린 자녀도 있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모세를 따라다니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고 더 많은 기사와 표적을 일으킨 것도, 그를 끝까지 따라갔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과 함께 하면 나도 성령의 사람이 되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점점 육신의 사람이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친구 따라 천국도 갈 수 있고 지옥도 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인 교회에서 영적인 주의 종과 성도들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닮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내 주변에 나보다 더 믿음이 좋고 하나님과 친밀해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줄 만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가?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는지, 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인지 스스로 돌아보자.
신혁주 전도사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려라
유독 상황판단에 형광등인 사람이 있다. 버스 지나간 다음 손 흔드는 사람 말이다. 요즘 버스야 대충 10분에 하나꼴로 온다지만 기회라는 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친구가 아닌가.
지도자가 때를 분별하지 못해 아무 때나 나서거나 한 템포 늦게 나아가 기회를 놓치거나, 혹은 너무 조급하여 일에 초를 치는 경우가 있다면 자성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래서 전도서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했다.
바람이 불 때가 연을 날릴 적기다. 바람이 없는데 연을 띄우려고 법석을 떨어봐야 연은 1m도 오르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어 있다. 시류를 잘 타는 사람,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높이 상승하게 되어 있다.
세계는 지금 정보 전쟁, 아이디어 전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그래서 지도자는 무(武)에도 능해야 하고, 문(文)에도 능해야 하고, 정보전에도 능해야 한다.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수집, 분석하여 유용하게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늘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든 전장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전장에 나간 병사가, 더욱이 지도자가 군화 끈을 풀고 군복을 벗고 있다면 긴급출격 명령이 떨어졌을 때 지체되고, 그것은 곧 패배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교회는 도태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신학생들에게 ‘지금 3년 사력을 다해 공부해라, 책을 봐라, 신문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은 바람 불 때 날리는 것이다.
이초석 목사 저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 중에서
‘더 퍼포스’
지난주, 교보문고를 향하는 제 마음은 무척이나 설렜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큐티책 ‘더 퍼포스’가 입고되어 서가에 진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부터 온라인으로 전자책 판매가 시작되긴 했지만 실물 책을 판매하는 건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13년 전 호주에서 돌아와 중고등부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청소년들에게 큐티 생활을 하도록 권했었습니다. 큐티 교재로는 두란노 서원에서 출판하는 말씀 묵상집을 구입해서 사용했었습니다.
어느 날 큐티 책에 실린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100권 이상 단체구매를 하면 담임목사님의 글과 교회 광고와 일정 등을 맞춤형으로 제작해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우리 교회 학생들에게 총회장 목사님의 칼럼과 광고 등을 실어서 맞춤형으로 된 큐티책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편집부에 연락했고, 이런저런 조율을 하고 나서 진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차례나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편집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부적 이유로 맞춤형 큐티책을 출간해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때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요.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청소년 말씀 묵상집을 만들자. 그래, 우리 삶의 목적 되신 예수…. 책 이름은 ‘더 퍼포스’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준비한 끝에 2020년 2월에 첫 큐티책 ‘더 퍼포스’를 출간하게 되었고, 여러 차례 업그레이드를 더한 끝에 마침내 정식 출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배운 믿음을 행함으로 옮긴 결과물이기에 더욱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간 묵묵히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준 교사들과 후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따뜻한 격려와 기도로 함께 해주신 목사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현승 목사
불신자가 본 예수
우리는 사랑의 화신으로 살다 간 ‘남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린 故 이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를 알고 있다. 그 영화에 이어 이란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이태석 신부가 48세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어린 제자들이 성장하며 벌어진 기적을 조명한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연출한 구환 감독은 기독교도 천주교 신자도 아닌 불교 신자였다. 그는 은퇴 자금을 털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사제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연이어 제작한 것이다.
그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 출신임에도 따뜻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말했다.
“영화 에 이어서 영화
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가 지난 2019년에 59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깡마른 모습으로 저를 불러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어요. 하나는 이태석 재단을 계속 이끌어가 달라, 다른 하나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에 동생의 삶을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 작은 학교를 짓고 가르쳤던 어린 제자들이 생각났습니다. 남수단에 찾아갔더니 의사이거나 의대생이 된 제자가 무려 57명에 달했습니다. 남수단의 작은 톤즈 마을에 신부님이 지은 허름한 학교에서 6년 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공무원, 대통령실 경호원, 언론인까지 모두 70명의 제자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됐고, 신부님처럼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자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니 먼저 ‘어디가 아프세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환자 손부터 잡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손을 잡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진료를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이태석 신부님이 해오던 진료 방법입니다.’라고 답하더군요. ‘아이들이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이태석 신부 제자들이 한센인 마을에 가서 봉사 진료를 했어요. 60명 정도 사는 마을인데, 환자 300명 정도가 모였어요. 의사가 없으니 주변 마을에서 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제자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밥을 굶으며 진료를 했어요. 어느 환자는 12년 만에 진료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환자에게 ‘의사가 당신 손을 잡았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태석 신부님이 저희 곁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자들은 ‘신부님이 우리 옆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신부님 일을 우리가 대신해서 너무 기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단순히 제자들이 좋은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이태석 신부의 사랑의 표현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가는구나. 바로 이것이 부활의 의미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영화 제목은 였는데, 그 자리에서 제목을  로 바꿨습니다.
제가 이태석 신부에게 빠져든 것은 단순히 그분의 봉사 때문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방식 때문이었어요. 그것을 우리 사회에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한센병 환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신부님 이야기만 꺼내면 환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이태석 신부를 존경스럽게 만들거나 그를 보고 감동 받게 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삶은, 누구든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영화 에서 이태석 신부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하심(下心)의 리더십과 경청하고 공감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실천이 이태석 신부의 생애였지요.
영화 에서는 이런 삶에 감동을 느낀다면 일상에서 실천해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따랐고,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삶을 사는 감격스러운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가 이태석 신부가 됐을 때 사회는 굉장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의 핵심이에요.
저는 최고로 행복한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삶은 뜻대로 안 되고, 불만투성이였을 텐데 말이죠. 그분을 통해 이야기하며 즐겁고, 하는 일에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태석 신부에 관한 휴먼 영화, 종교 영화를 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람들은 이 영화 이 종교 영화라고 부르지만 이건 굉장히 강한 고발 영화예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발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건 어려웠는데, 이 영화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의 성폭력 문제, 권력 분쟁, 세습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이태석 신부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글들이 나왔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성직자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부 의료진들과 교사들, 정치인들에 관한 사회적 문제가 터져 나올 때도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지도자로서의 바람직한 상으로 귀감이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흥행보다도 이런 부분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감독님은 불교 신자라고 들었습니다. 가톨릭 사제인 이태석 신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계속 제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종교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이태석 신부는 그 삶 그대로였습니다. 법복 입은 스님이든, 예복 입은 목사든, 사제복을 입은 신부든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의 삶을 보며 그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정진석 추기경이 감사패를 주신다고 해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대화 중에 제가 ‘저는 톤즈 마을에서 예수를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잖아요? 불교 신자가 예수님을 보고 왔으니까요. ‘당신이 본 예수는 어떤 분이었습니까?’라고 물으시기에 ‘제가 본 예수님은 대단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제 마음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톤즈 성당은 여기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습니다. 허름한 성당에 벽은 포를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 사람들이 성당만 들어오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봤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의 힘이라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신부의 고결한 삶이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톤즈를 통해 이태석 신부의 예수적 삶과 같은 모습을 보며 감동과 감명을 받습니다. 그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병마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기적을 만들어낸 이태석 신부를 추모합니다.
인생의 매뉴얼
10년을 타던 차를 얼마 전 바꿨다. 운전을 한 지 20년이 된지라 운전에는 자신이 있어 자동차 매뉴얼을 보지 않고 얼마간을 타고 다녔다. 핸들을 돌리면 방향이 바뀌고, 페달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나가는 기본원리는 변함이 없으니 운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후진하는데 계기판에서 경고음이 나면서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고장 난 줄 알았는데 뒤에 내가 보지 못한 장애물이 있어 차가 자동으로 인식하고 멈춘 것이다. 매뉴얼을 읽어보니 고속도로에서 페달을 밟지 않고, 핸들을 조정하지 않아도 차선을 인식해서 운행이 가능했고, 앞차나 장애물이 나타나면 자동으로 멈추는 등 편하고 안전한 기능이 많이 있었다. 무지해서 편리하고 안전한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피곤하게 운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뉴얼을 보지 않으면 자동차를 옛날처럼 가고 서고밖에 못 하고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없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요즘 가전제품들도 편리한 기능이 많지만, 많은 사람은 만든 제작사의 매뉴얼을 보지 않고 포장 뜯고 무작정 전원 코드부터 꽂고 사용하기 바쁘다.
성경은 인생의 매뉴얼이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는 진리는 성경을 깊게 읽지 않아도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저절로 알게 해주신다. 다만, 인생을 살아갈 때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게 살아간다. 인생의 매뉴얼인 성경에는 병을 치료받는 법, 사기당하지 않는 법, 걱정과 두려움을 이기는 법, 물질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무릎 꿇리는 법,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대처법,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는 법 등,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셨다. 이제 선택은 우리 몫이다. 인생의 매뉴얼인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갈 것인지, 피곤하고 힘든 생활을 계속할지 말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송명국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