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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속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막9:23)

1230호 · 2023-12-03

어느 소년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나무 위 둥지에서 알 7개를 들고 집에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보니 독수리 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금 암탉이 알을 품고 있으니 지혜롭게 가져온 알도 거기에 넣어주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알이 깨지더니 병아리도 나오고, 독수리도 나왔습니다. 병아리도, 독수리도 어미 닭을 좇아 구구거리며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닭인 줄 알고 살고 있던 독수리 중에 한 놈이 하늘로부터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닭을 채 가지고 솟구쳐 날아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 독수리는 너무 놀라 자기랑 모습이 같은 다른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내가 봤는데 우리랑 똑같이 생긴 것이 하늘을 날더니 우리 형제인 닭을 한 마리 낚아채갔어.” 그러자 나머지 여섯 독수리 형제들이 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가 독수리라니~~, 우리는 닭이야. 그런 것들이 나타나면 얼른 도망가야 한다고 엄마가 그러셨어.”

그런데 다음날 또 독수리가 나타나자 다른 형제들은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먼저 독수리를 본 어린 독수리는 “저것 봐, 우리랑 같지? 저게 어떻게 하는지 잘 봐.” 하며 도망치려는 독수리 형제들을 막았습니다. 그 독수리는 오늘도 닭을 한 마리 채 가지고 날아갔습니다. 이를 보고도 다른 독수리들은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 독수리만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저것은 닭을 잡아먹고 하늘을 차고 오르는데,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나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다음날도 또 독수리가 나타나자 그 독수리는 “나도 날아볼 거야.” 하고 날개를 펴며 날아보려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어미 닭도, 닭 형제들도, 심지어 독수리 형제들도 “너 미쳤니? 빨리 숨어!” 하고 만류했습니다. 그래도 그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크게 휘저으니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게 아닙니까? “와~ 나는 닭이 아니었어. 독수리였어. 얘들아, 나처럼 날아봐.” 그제야 다른 독수리 형제들도 하나둘씩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움에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하는 독수리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독수리 새끼는 독수리입니다. 개 새끼는 개고, 소 새끼는 소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자녀가 사람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 자식이야. 너 자신을 알라.”고 누차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이 답답해하십니다. 그래서 급기야 성육신한 아들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잘 봐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듯, 너도 하나님의 아들이야. 내가 행한 것을 봐라. 너도 똑같이, 아니 나보다 더 큰 것도 할 수 있다.” 하시며 기사와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날아 닭을 채가는 것을 보여주듯 말입니다.

독수리가 날려고 할 때, “안 된다. 넌 닭이야.”라고 하는 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계속 닭장 속의 닭으로 살게 하려고 태클을 걸지만, 태생을 어찌 속일 수 있답니까?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길 원하지. 우리가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어찌해야 성공과 행복, 건강을 잘 숨길 수 있을까?” 그러자 한 놈이 그것들을 땅속 깊숙이 숨기자 했습니다. 이 말에 다들 “그건 안돼. 인간들은 무슨 도구를 사용해서라도 그것을 찾아낼 거야.”라고 했습니다. 또 한 놈이

“바다 깊숙이 숨깁시다.” 했더니, “그것도 안 됩니다. 인간들은 바닷속도 다 헤쳐 찾아낼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 고민하고 있을 때 지혜롭기로 소문난 놈이 말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아주 가까이 두는 겁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부정을 심어주는 일만 하면 됩니다. 인간들 마음에 부정이 싹트면 바로 옆에 있는 그것들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로 대단한 권세와 능력이 있다 해도, ‘나는 안 돼’, ‘나는 못해’, ‘이것이 내 한계야’라며 부정을 일삼는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스승이 아주 커다란 어항을 만들고는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각각 미꾸라지며, 송사리며, 붕어를 가지고 왔습니다. 스승은 미리 준비한 유리로 된 가로막을 어항 가운데로 가져다가 막아놓고는 제자들의 물고기를 한쪽으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스승은 메기 한 마리를 어항의 비어있는 쪽에 놓고는, “자~ 메기가 행동하는 것을 유심히 보거라.” 했습니다. 제자들이 메기를 보니 배가 고팠나 가로막 반대쪽의 물고기를 먹으려 공격적으로 덤빕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유리 가로막에 막히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공격하기를 몇 차례 했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사흘 후에 다시 오라며 돌려보냈습니다. 사흘 뒤, 스승은 한 제자에게 유리 가로막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로막이 없어졌는데도 메기는 미꾸라지가 옆을 스쳐도, 심지어 송사리가 지나가도 못 본 체합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다시 사흘 뒤에 오라고 했습니다. 사흘 뒤, 스승은 다른 메기를 한 마리 들고 나타났고, 그것을 어항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자 그 메기는 거침없이 물고기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먼저 있던 메기는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 메기도 송사리를 잡아먹고, 미꾸라지도 잡아먹었습니다.

악한 마귀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쳐놓고 메기를 조련하듯, ‘이건 안 돼. 그냥 살아야지.’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는데, 마귀란 놈이 우리의 본성을 잊게 하여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만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보이지 않는 유리막을 치우시고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십니다.

유리막이 치워졌어도 당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여전히 부정 속에 있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부정의 생각을 쏴 죽여야 삶이 달라집니다.

두 친구가 사냥을 갔습니다. 꿩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것만 쫓다가 한 친구가 그만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늪에 빠진 친구가 허우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 죽을 거야. 늪은 빠져나갈 수가 없어.” 밖에 있던 친구가 “조금 침착하자고. 사는 방법이 있을 거야.” 해도 늪에 빠진 친구는 절망적이기만 합니다. 친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친구를 구해주세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네 친구의 머리에 총을 겨눠라. 그리고 너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라.”

밖에 있던 친구는 사냥총을 친구에게 겨누며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 1초라도 빨리 가는 게 자네에게 편할 걸세. 잘 가게.” 하며 방아쇠를 잡아당겼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늪에 빠진 친구가 늪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날 죽이려 해?” 간신히 친구가 진정되자 그가 총을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를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 아니네. ‘나는 죽는다’는 자네의 부정적인 생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던 것이었지. 내가 총을 겨눌 때 이미 자네의 부정적인 생각은 죽은 걸세. 그래서 자네가 늪에서 나올 수 있었네.”

그렇습니다. 생각이 결과입니다(렘6:19). 팔자요? 생각을 바꾸면 바뀝니다. 상황이요? 생각이 먼저 바뀌면 상황도 환경도 바뀝니다. 어느 성도가 섬에 사니 사방이 막혀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사방이 뚫려 있어 시원하기만 한대요? 배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했다. 그 배가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해야 합니다(빌4:13).

긍정적인 생각, 미래지향적인 생각, 그것이 곧 믿음이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생각대로 이뤄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도 ‘나는 늙어서’, ‘나는 여자라’,

‘나는 못 배워서’, ‘나는 평신도라’ 하실 겁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할렐루야!

썩은 나무에 물을 주면

더 썩기만 할 뿐이다

생각의 파괴력을 아는가

생각이 네 운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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