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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 경주 같은 신앙생활

1222호 · 2023-10-08
세상을 보는 창

장애물 경주 같은 신앙생활

신앙생활은 꼭 장애물 경주와 같다. 장애물을 겨우 하나 통과하고 나면 결승선이 아니라 또 다른, 아니 좀 더 어려운 장애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더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을 잘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첫째로, 신앙생활의 큰 그림을 보고 달려야 한다.

큰 그림을 본다는 것은 청사진을 보는 것이며, 선명한 목표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신앙생활의 목표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함을 누리는 것’(요10:10)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개인 신앙생활의 목표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관계를 갖는데 포커스를 두어야 하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의 목표는 ‘영혼구원과 제자 삼아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교회’(마28:19~20, 창1:28)를 세워가는데 두어야 한다.

둘째로, 신앙생활의 현장은 교회가 아니라 ‘일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주일예배’로 한정한다.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내 맘대로 살다가 주일에 예배드리는 종교 활동이 아니다. 매일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 보니 때로는 손해도 보고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셋째로, 믿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근육은 운동을 반복할 때 만들어지듯이, 믿음의 근육은 꾸준히 말씀과 기도 생활을 반복해야 만들어진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히12:2), 믿음의 근육이 더 튼튼해진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해도 믿음의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의 근육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깊이 묵상하면서 긍정의 생각을 선택하고, 나쁜 생각은 버리는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킬 때(고후10:5), 우리 생각의 근육은 강해진다. 결국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우리 앞의 수많은 장애물은 통과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주저앉지 말고 단련하여 넉넉히 이기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되자.

이정금 전도사

생명의 말씀

무게중심, 예수중심

2023 예수중심신학원 개강 및 후기 신입생 입학예배에서 총회장 목사님은 먼저 이런 화두를 던지셨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몸이 귀하냐? 옷이 귀하냐? 믿음과 지식, 어느 것이 귀하냐?’

무게중심을 어디에다 두고 신학 공부를 하느냐는 말씀이다. 믿는 자에게는 닭이 먼저다. 그 이유는 진화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를 믿기 때문이다. 몸이 의복보다 중요한 건 진정한 실체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 믿음이 지식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 지식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더 잘 믿게 만들어주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무게중심은? 당연히 ‘예수중심’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곧 말씀이시며, 말씀이 그렇다 하신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본질이어야 한다.

그래서 신학 공부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그 존재 자체를 믿어야만 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믿어야만’ 한다(히11:6). 일단 믿음이 먼저 오면, 나머지 이해는 그저 추구하면 될 일이다. 완벽히 이해되어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다. 물론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신학을 학문으로서 공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지식으로 끝장을 보려고 한다. 인간의 지식은 합리성을 추구하기에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은 합리적인 선에서 자기 이해의 수준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깎아내린다. 그런 극단의 끝에서 예수는?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 아니라, ‘그저 참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했던, 좋은 인간 모델에 불과할 뿐이다. 거듭나지 않으니, 믿기보다 이해하는 게 더 좋은 거다.

많은 신학 지식이 궁금하여 신학교에 입학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학 공부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버릴 때, 전도몽상(顚倒夢想)이 될 위험성이 도사린다고 경각심을 심어 주셨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동등하게 견주어서 섬길 수는 없다. 합리성에 굴복하여 결국 반기독교인이 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송직화 목사

화려한 퇴장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 되게 하소서’

나이가 많아지면 흔히들 ‘철이 든다’ 했던가? 어느덧 내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부쩍 기도가 그쪽(?)으로 흐른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살까?’였는데, 그게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죽을까?’로 말이다. 이게 철이 들었다는 증거 아닐까?

오래전에 나는 성경을 보다가 나의 로망을 발견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다. 그의 등장은 초라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던 보잘것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소개하는 최초의 사람이 될 줄 누가 알았는가? 그는 그 누구도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을 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자가 누가 있던가! 예수님을 소개한 최초의 사람, 그리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유일한 사람, 카~ 얼마나 멋진가!

한때 나는 방송을 진행하는 명 MC가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세례요한이 이 지구상에서 최고로 멋진 MC라 생각했다. 그 시로 나는 내 이름을 ‘요한’이라 바꾸었고, 나도 어둠의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를 전하는 명 MC의 삶을 살다 가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도 요한처럼 멋지게 살다 죽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젊은 나이에 죄도 없이 헤롯에게 목 잘려 죽임을 당했는데 뭐가 멋지냐고? 아니다. 자기의 할 일을 충실히 다하고 간다면 비록 짧지만 그 삶은 멋진 삶이다. 짧지만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간 사람, 이것이 진정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내게 맡겨진 소임을 다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나는 등장보다는 퇴장을 멋지게 하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 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기도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기도이다.

‘주여, 내 생을 마치는 날 꼭 이 말을 남기고 가게 하소서. 주님 저도 다 이루었습니다.’이다.

기도는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주께서 하게 하심이다. 따라서 난 오늘도 그렇게 기도하게 하신 그 주님을 따라 힘차게 뛰어간다.

‘주님, 저도 다 이루었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화려하게 퇴장하고 싶다.

전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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