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1차 전도 여행
페루 뿌깔빠 집회(2023년 9월 22일~24일, 뿌깔빠 메인스타디움)
목사님의 카톡 오타에서 비롯된 ‘난사형통(難事亨通)’의 신조어는 말 그대로 현실화가 되었다. 이현숙 선교사의 꿈부터 성도들의 많은 꿈들이 이번 페루(Peru) 집회나 목사님의 신상에 대해 많은 부정적 전망으로 들끓게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동안 출국금지 중이었던 이현숙 선교사가 우루과이(Uruguay) 정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고, 또한 우리 선교 일행이 일정을 앞당겨 출국하기로 계획을 바꾼 관계로 동반 출국이 어려웠는데, 사흘 전 가까스로 좌석이 해결되며 모든 분위기가 일신되었다. 목사님은 페루 집회의 성공을 확신하며 ‘페루 집회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고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난사형통’으로 비록 그때는 오타인 것 같았지만, 이는 결국 성령께서 개입하신 바요, 이번 페루 집회를 상징하는 아주 적확한 말이 되었다.
물론 그 역사가 이루어지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비행기를 네 번이나 갈아타며 사흘에 걸쳐 도착한 페루의 수도 리마(Lima). 공항에는 라구나(Laguna) 목사와 이현숙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8년 만의 재회였다. 목사님 말씀처럼 죽었던 이산가족 만나듯 벅찬 감회가 남달랐다. 공항 근처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미국 뉴저지(New Jersey)에서 김성자 전도사가 짐을 바리바리 싣고 도착했다. 언제나 우리 먹거리를 신경 쓰느라 노심초사지만, 이젠 연세도 있고 해서 한편으론 감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8년 만의 기쁨의 재회를 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그 장면 장면들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 ‘정말 우리가 진한 추억을 쓰고 있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이튿날 아침 7시, 우리는 뿌깔바(Pu-callpa)로 출발하기에 앞서 목사님 방에 모두 모여 서울의 수요예배를 영상으로 함께 드렸다. 이날 이시대 목사님의 설교 중에 성경책을 모셔만 두지 말고 늘 가까이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김성자 전도사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며 간증했다. 우리 일행을 위해 먹거리를 잔뜩 싸서 커다란 짐을 싣고 미국 뉴어크(Newark) 공항에 갔는데 규정된 짐의 무게를 초과했다며 페널티를 천 달러나 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짐을 정리하느라 가방을 열었는데 거기에 김 전도사의 낡은 성경책이 나오자 이를 본 항공사 직원이 그냥 통과시켜주더란다. 그뿐이 아니었다. 페루 리마 공항에 도착하여 세관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짐을 일일이 열어보며 된장, 고추장 등을 뺏으려 하던 세관 직원이 그 속에서 역시 그 낡디낡은 성경책을 발견하고는 가방을 닫고 통과시켜주더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이거야말로 멋진 간증이라며 바로 서울로 그 내용을 문자로 보내셨다. 서울-페루 간의 멋진 리액션으로 이날의 수요예배는 더욱 은혜로 풍성해졌으리라.
뿌깔빠 공항에는 문갑권 선교사 가족과 현지 목회자 및 성도들이 나와 우리 일행을 환영해주었다. 선선하던 리마의 날씨와 달리 뿌깔빠는 섭씨 35도가 넘는 폭염이었다. 시내 곳곳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삼륜차(모터카)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다녔다. 차량보다 훨씬 더 많아 보였다. 도로 사정과 매연 및 먼지로 오래 타기에 힘들긴 하지만, 매우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도로를 지나며 보니 몇몇 모터카 뒷면에 부착된 집회 현수막 외에 집회 포스터나 대형 현수막이 걸린 곳을 찾기 어려웠다. 사전 점검 차 집회 장소에 가보았다. 그 넓은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성도들이 구역을 나눠 청소하고 있었다.
예감이라는 게 있다. 오래 집회를 경험하다 보면 사전 분위기에 얼추 견적이 나오는데, 뭔가 쎄~한 느낌이었다. 목사님은 문 선교사에게 즉시 방송설교나 좌담회를 할 수 있는 방송시간을 잡으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전쟁은 시작됐고 전쟁에는 왕도가 따로 없는 법, 오직 이기는 것만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대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자세로 목사님은 이튿날부터 이틀에 걸쳐 아침마다 방송국을 찾아 집회 홍보에 올인하셨다.
이틀간 진행된 방송좌담회
8년 만에 다시 만난 남미선교팀
집회팀의 이동수단
페루 뿌깔빠 목회자 세미나
(1면의 계속)
늦은 밤, 방송사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마르도께오(Mardoqueo) 목사와 좌담회에 출연하여 질문을 담당할 현지 목회자 3명을 숙소로 불러 카메라로 촬영하며 사전 리허설을 진행했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이 방송을 하는 이유는 당신들의 신학적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려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나 불신자 입장에서 일반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이 방송을 보고 집회장으로 몰려오도록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의 질문을 수정하고 진행을 조율하며 리허설을 여러 번 진행하셨다. 그리고 촬영된 영상을 다시 함께 보며 밤늦게까지 각자의 질문과 역할을 각인시키셨다.
이튿날 아침 8시, 방송이 시작되고, 목사님이 페루에 오신 이유, 누구나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지, 주위에 이런저런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있는데 참석하면 고침 받을 수 있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목사님은 정말 최선을 다하여, 열정을 다하여 답하시며, 시청자들에게 꼭 집회 장소에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을 소유하라고 촉구하셨다. 1시간 방송에 혼신을 다하시고, 다시 이어서 10시부터 목회자 세미나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목회자 세미나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질의 문답시간이었는데, 마지막에 앞으로 나온 한 노(老) 목회자가 질문보다 페루교회가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버려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졌다며 깊이 자성하는 대목이었다. 이는 목사님이 강의 마지막에 보너스로 말씀하신 말라기서 강해에 대한 반응이었다. 미국의 하나님, 한국의 하나님과 이 페루의 하나님이 다를 수 없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왜 페루가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지고 있는가 깨달았다는 것이다. 참석한 목회자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침 방송과 목회자 세미나로 이어진 강행군에 목사님은 지칠 대로 지쳐 식사도 못하시고 숙소에 누우셨지만, 전쟁의 기선을 잡았다는 확신이 다가왔다. 훼방자들의 이야기에 우물쭈물하며 이편에 설까, 저편에 설까 하던 목회자들 가운데 확실한 아군이 되어 돕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아침 방송이 나간 후 방송국과 진행자에게 전화가 폭주했단다. 다음날도 계속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많으니 내일도 출연해달라고 문 선교사를 통해 알려왔다. 내일은 집회가 시작되는 날이라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지만, 목사님은
“이 전쟁에 지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광고하며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께서 방송을 열어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하니. 당연히 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역시 아침 8시부터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 중에도 시청자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며 사회자가 수시로 자리를 뜨곤 했다. 이 선교사는 방송을 이틀 진행하고는 가슴이 벌렁거리며 집회가 잘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다고 기뻐했다. 모든 집회를 마친 지금 복기해보면, 이 양일간 진행된 방송좌담회가 집회 홍보에 아주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다. 이 또한 한국의 모든 성도들과 땅끝예수전도단 회원들의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기회였음을 확신한다.
그러나 현장 확인을 하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집회 시작 2시간 전부터 찬양팀들이 나와 뜨겁게 찬양을 하고, 페루 국가도 부르고 했지만, 회중석은 앞에 몇 자리를 제외하곤 텅 비어있었다. 주여~~, 가슴이 답답하다. ‘아버지~, 당신이 보내주지 않으면 올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요6:65), 이 먼 길을 노구를 이끌고 온 당신의 사랑하는 종과 애통하며 이 집회를 위해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성도들을 촬영하기 위해 입구로 가서 기다렸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꾸준히 입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멕시코(Mexico) 메리다(Merida) 집회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런 경기장을 채우려면 약 2시간 동안 입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7시가 넘자 반 이상이 찼다. 그리고 꾸준히 성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목사님께 현재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드렸다. 목사님도 안도하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첫날 첫 집회가 시작되었다. 난공사에 이익이 많다고 난사형통의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어렵사리 이루어진 페루 뿌깔빠 집회는 이렇게 막을 열었다.(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