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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의 우상

1218호 · 2023-09-10
신앙논객

편리함의 우상

무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비게이션 덕분에 길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에 연락처가 다 저장되어 있어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보니 어떨 땐 내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이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편리해질수록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점점 무지해지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교회에 올 때 성경책을 들고 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선명한 LED 화면에 말씀 구절과 찬송 가사를 다 띄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은 더 이상 아침저녁으로 끼고 사는 ‘나의 사랑하는 책’이 되지 않은 지 오래다. 얇은 종이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깨알 같은 크기로 메모하면서 봐야 할 성경이 이제는 방구석 책꽂이 한 귀퉁이에서 먼지만 쌓이는 장식품이 된 지 오래다. 예배 때라도 성경책을 들고 간다면 모를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아예 펼칠 일도 없어진 것이다. 어느새 청년들 중에는 찬송가나 찬양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부르는 곡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배시간에 하는 곡들은 가사를 다 띄워주고, 여차하면 폰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굳이 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꼭 스마트폰이 필요해졌다. 편리함이 우상이 된 셈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로 내모셨는가? 그들이 눈에 보이는 양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광야는 편리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곳을 의미한다. 아름답고 넓은 성전도 없고, LED 화면과 자막도 없고,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그래도 나를 예배하고 내 뜻을 따르겠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편리한 어떤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간절히 구하길 원하신다.

이젠 성경책을 펼쳐서 밑줄도 좀 긋고, 좋아하는 찬송 가사도 외워서 한번 불러보자.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 법. 오늘 우리가 받을 은혜라고 예외일 순 없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찬양과 경배

하나님의 선물

더운 여름날 동생이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수술 전부터 각자 해야 할 몫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서로 바쁘게 자신의 삶을 사느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하기 쉽지 않았는데, 동생의 수술은 우리를 단 한 번에 모았다. 우리가 가족임을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7월은 나에게 여유 있는 시간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별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도왔다. 가족이고 동생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이 시간은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를 챙기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처음에 수술을 한다고 들었을 때는 고민이 많았지만, 그 사건이 오히려 가족과 대화하며 관심을 갖는 시간이 되고,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해준 선물이 되었다. 목사님 말씀대로 우리 가족에게는 아름다운 추억담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가족(家族), 늘 뼈저리게 우리가 가족임을 깨닫고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닥치고, 힘든 상황이 되니 피는 물보다 진함을 느낀다. 똘똘 뭉쳐 하나가 된다. 외줄보다 삼겹줄이 단단하다는 하나님 말씀을 새삼 깨닫는다.

뜨거운 여름을 감사한 추억으로 만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알게 하셨으니 더욱 감사한다.

요즘 서울성전 이전을 위해 작정기도를 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가족임을 느낀다. 다들 하나로 똘똘 뭉쳐서 기도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 또한 주님께 감사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이인영 집사

소망의 언덕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는 교회

내가 사는 가양기도처 옆 골목은 간신히 차 두 대가 엇갈려 지나갈 정도로 좁은 폭에 비해 차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다녀서 항상 붐비고 위험한 곳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 옆에 좁게나마 보행자 도로가 있어 주민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보행자 도로 옆의 이전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건물을 올린 것이다. 그런데 건물이 다 지어져 갈 즈음 한 장의 안내문과 함께 큰 펜스가 건물 주변으로 둘러졌다. “-이곳은 인도가 아닙니다. ***교회 사유지입니다.-”

교회에서 건물을 올리면서 주차장 자리를 조금이라도 더 넓게 확보하기 위해 이전에 있었던 보행자 도로까지 넓혀서 펜스를 설치한 것이다. 사유지니 법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지만, 오가며 한마디씩 하는 주민들의 푸념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지역사회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역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 다르구나.’ 하고 말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88체육관을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해왔다. 그 사이 체육관의 리모델링을 통해 새성전에 입당하는 것 같은 기쁨도 누렸다. 그런데 체육관에서 갑자기 나가라 하니 처음에는 인간적인 마음에 아쉬움이 컸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 조용히 기도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주어도 은혜를 잊지 말라’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그토록 오랜 시간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터였다.

이제 우리는 곧 88체육관을 떠난다. 여러 가지 실무적인 일들이 남았다. 창고를 비워주고 각 부서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일, 주차 문제로 매일 뵙던 경비원 분들과의 인사까지….

떠나가는 우리의 뒷모습이 그들에게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 있도록 우리 모든 일을 감사로 마무리하자. 체육관 실무진부터 환경미화원까지 우리를 그리워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떠나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이 성큼 더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이현승 목사

참된 깨달음

비난, 비판

얼마 전 중3 아들과 내기해서 만원을 잃은 적이 있다. 일의 발단은 이렇다.

사람 입에 있는 효소가 ‘아밀레이스’라고 말하길래 난 “공부를 하려면 똑바로 해라. ‘아밀라아제’지 어떻게 ‘아밀레이스’냐?”라고 확신에 차서 비난한 적이 있다. 아들은 정말 답답해하며 만원 내기하자고 했고, 결국 내기에서 지고 말았다. ‘아밀라아제’는 독일식 발음이라 2005년에 ‘아밀레이스’로 변경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요오드→아이오딘, 부탄→뷰테인’ 등으로 변경된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1988년에 ‘읍니다→습니다’로 변경되었다. 회사에서 ‘습니다’로 문서를 작성한 상급자를 비난했던 내가 생각났다.

이번 일로 아들에게 망신당한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일 이후로 자녀들이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더라도 한번 생각해보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고도 배웠던 시기에 따라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내가 배운 지식수준으로 다른 사람을 섣불리 비난하거나 판단하고, 더 나아가서 강압적으로 변화시키려 하면 안 된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해결책은 없고 비난, 비판만이 난무한다. 두세 사람이 만나면 생각이 달라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비난과 비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비난’을 ‘칭찬’으로 ‘미움’을 ‘사랑과 이해’로 바꾸길 소망해본다.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14:1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송명국 집사

songmk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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