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한 보증서다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그 약속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약속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나안을 정탐하고 기가 질려버린 열 지파 두령의 말을 듣고 간담이 녹아내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처음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원망, 불평하며 포기하면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없다. 분명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대대로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마치 선물 포장처럼 준비되어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목적지에 다다라보니 그곳에는 기골이 장대한 가나안 족속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들을 물리쳐야 차지할 수 있는 땅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신1:28).
하나님의 약속은 에덴 이후로 항상 이러한 과정을 요구하신다. 절대 거저는 없다.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탐험가들이 황금이 묻힌 동굴이 있다는 전설을 믿고 보물지도를 어렵게 해독하여 겨우겨우 찾아낸 곳에 들어가보니 살상 무기들이 곳곳에 매설되어있고, 이를 어찌어찌 통과해보니 화려한 보석 주위에 엄청난 크기의 뱀이 잔뜩 또아리를 틀고 앉아 접근을 불허하고 있는 지경인 것이다. 그 모든 난관을 이겨내지 못한 자들은 구석구석 유골로 나뒹굴고 있고, 결국에 주인공만이 그 지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보물을 차지하지 않던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을 위해 7년 전쟁을 치러야 했다.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후 가나안 땅을 향해 40년이나 광야를 헤매야 했고,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데에도 다시 7년의 정복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악평하던 열 지파 두령의 지도를 따른 애굽 세대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고, ‘가나안은 내 밥’이라고 믿음으로 선포한 여호수아 갈렙의 지도를 따른 광야 세대들만이 약속의 땅을 차지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개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약속의 말씀을 받고도 눈앞의 허상에 마음을 빼앗긴 불신앙이 원망과 불평을 낳고 약속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약속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믿음으로 끝까지 싸워 이겨야 그 약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여덟 번째 일어나는 결기로, 야곱이 축복의 천사를 붙들고 늘어지던 절박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내 눈앞에 실현되어야 함을 끊임없이 선포해야 한다.
목사님께서 서울교회 성전 이전 문제에 좀 더 여유를 갖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잘 깨달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것은 세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면 이미 90년대에 했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강권하듯이 우리를 몰아붙이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대학교 건물이 나온 게 있다고 하여 추진하려 했더니 하나님께서 꿈에 ‘너는 복음을 위해 내가 택했다’ 말씀하시며 막으셨습니다. 조급과 무리는 나도 죽고 남도 죽입니다. 여유를 갖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명에 부도내지 맙시다. 처음 당부했듯이, 서로 다투지 말고, 죄짓지 말고,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다운 때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닫으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여신 문은 닫을 자 없다. 이미 응답을 받아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조급하여 그르치지 말고, 여유와 인내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뜻을 이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