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을 모르니까
나는 기도하다가 죽는 날을 모르는 게 축복이라는 감동을 받았다.
왜 하나님은 충분히 하실 수 있는데 우리가 돌아갈 날을 알지 못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그날을 미리 준비하라고, 예비하라고 그러신 것 같다.
자기가 죽는 날을 안다면야 죽기 전에 예수를 믿으면 되겠지. 실컷 세상을 즐기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은 가겠지. 그러나 자기가 죽는 날을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사후를 예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고 날 것을 미리 안다면야 보험을 들 필요가 없겠지. 미리 조심하면 되니까. 그러나 언제 사고 날지 모르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누구나 죽는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리고 사후의 세계가 열린다. 예수를 믿은 자에게는 영생의 세계가, 믿지 않은 자에게는 영멸의 세계가 열린다. 그래서 예비하라는 것이다.
사실 보험을 넣을 때 ‘이거 괜히 넣는 것 아닌가? 돈만 나가는 느낌인데.’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것만 안 넣어도 좀 편히 살 텐데.’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나거나 병이 났을 때 ‘넣길 잘했다’ 생각한다. 사후를 예비하며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떤 때는 손해보는 느낌이다. 세상에 좋고 재미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휴일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을 접고 희생하며 인내하며 용서하며 좁은 길로 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날’에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너무 좋아서!
‘밤새 안녕’이라고 나는 하루가 멀다고 성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섭섭은 할망정 괴롭거나 내 마음이 허하지 않은 것은 우리 성도들 모두 죽는 날을 예비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날을 늘 대비하며 준비하자. 주님이 계시는 천국에 입성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나라에서 상과 면류관을 받을 수 있게, 주님과 한 상에 앉아 심판할 수 있게 더욱 열심히 준비하자. 늘 말하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면 철저하게 성공한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