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소와 관련된 속담은 2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소와 생활이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고, 농경사회에서 소는 사람보다 힘이 월등히 좋아 사람보다 밭을 잘 갈고 방아를 돌려서 곡식을 찧는 등 훌륭한 일꾼이기 때문이다. 여름에 소가 탈진하면 귀해서 사람도 먹기 힘든 산낙지를 먹여서 일으켰다고 할 정도로 애지중지하였다.
농부들은 소에게 꼴을 먹이거나 겨울에는 여물을 쑤어 구유에 붓는다. 소도 매일 먹어야 하기에 구유는 금방 더러워져 자주 청소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구유가 더러운 게 싫고 청소하는 것도 싫다고 해서 소를 처분하는 농부는 없다. 소를 통해 얻는 이익이 많으므로 그 정도를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로 여긴다. 소가 없으면 외양간이 깨끗하겠지만 얻는 것도 없다.
삶에서 더러워진 외양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직장 상사 또는 직원과의 갈등, 자식들 또는 부모님들, 부부간의 갈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 이런 것들은 때때로 우리를 괴롭힌다. 괴롭고 힘든 현실에 불평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불평하고 고민하는 그 이면에 놓인 것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사나 직원과의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은 다닐 직장이 있다는 뜻이고, 자식이나 부모님 문제 때문에 힘들다면 가족이 있다는 것이고, 갚을 빚이 있다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외양간에 불평하지 말고, 매사에 감사하는 2023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거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14:4).
김성일 집사
충격은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어느 날 담당하고 있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꿈이 없으니 공부에 의욕이 없어요.” 저는 그 친구에게
“지금부터 내 의사 남동생의 이야기를 들려줄게.”라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노는 게 가장 행복했던 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치른 첫 번째 받아쓰기 시험에서, 맞춤법을 몽땅 틀렸을 만큼 처음부터 우등생이 아니었어. 중학교 2학년이던 그해 6월,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신 뒤에 의사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된단다. 문득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대.
동생은 결심한 그 날로부터 문제집을 하루에 한 권씩 풀어가며 열공하더니 중2 말에 전교 4등을 하였고, 고1 때부터는 전교 1등을 하기 시작했지. 그럼에도 동생에게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수학 기초가 부족한 거였어. 수학이 발목을 잡아 결국 열망했던 의대에 진학할 수 없게 되었단다.”
“동생이 의사가 되길 포기했을까?”, “아니요? 포기하지 않았으니 지금 의사가 되셨겠죠!”, “맞아! 동생은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입학해서 3년간 두 과목만 남겨두고 전체 과목을 이수한 뒤 4학년 때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MEET)공부에 매진했단다. 그 결과,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여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어!”
공부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스스로 방학을 포기하고 계절학기까지 수강해가며 미리 학점을 이수했던 동생. 고비가 올 때마다 ‘포기는 자살 행위다. 기도하고 노력하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붙잡고 눈물로 시험을 준비했던 동생의 이야기를 들은 학생은 ‘꿈을 위해 기도하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노라’ 약속하였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소나무도 살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리려고 몸부림치는데, 하물며 환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미래는 포기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모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봅시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김진실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경험되는 하나님
예수중심제자신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조직신학이란 성경을 큰 주제들로 분류하여 체계를 잡아주는 학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 중에
‘신(神) 존재 증명’이라는 유명한 철학적 논쟁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논쟁을 생략하고 간단히 넘어갔다. ‘나는 있다’(출3:14)고 이미 선포하셨는데, 그 존재 자체의 유무를 논해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신학을 하지 않을 거면 그 신학은 버려야 한다고 신학생들에게 주장하고 있다. 철학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서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은 있으나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는 지식인으로만 남게 만든다. 철학이라는 인간의 생각이, 신학이라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교정되어져야 하고, 결국엔 신앙 속에서 하나님을 향유함으로 완성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철학과 많은 종교들은 멀리 떨어져 계신 신을 ‘지식적으로 알게’ 만든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격의 하나님을 ‘경험하여 아는’ 종교이다. 바로 내 안에 내재하셔서 그분의 살아계심을 풍성히 경험케 하시는 종교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니 하나님에 대한 체험으로 충만했다. 작고 소소한 일부터 큰일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일이 없었다. 그분의 분명한 뜻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걸어와 보니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교단공동체 등등 여러 상황들을 돌아볼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험한 사건들이었다.
만남에도 깊이가 있다. 말씀 안에 거하는 훈련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공감대가 깊어지다 보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고 응답의 깊이도 깊어졌다. 지난해도 그랬듯이 새해에도 여전히 ‘나는 있다’고, ‘나를 경험하라’고 간절히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에 모든 상황 속에서 믿음과 신뢰로 반응하려 한다. ‘한번 걸은 아이는 다시는 기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 바닥을 기는 것은 과정이지만, 걷게 된 후부터 다시는 기어다녔던 시절을 향수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한 번 깊이 경험해본 체험은 점점 더 하나님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 ‘네 간증 좀 듣고 싶다!’고 하셨던 총회장 목사님 말씀처럼 하나님을 더 풍성히 경험하는 복된 새해를 기대해본다.
송직화 목사
살아계신 하나님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이초석 목사님께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새마을금고에 천만 원을 예금했는데, 글쎄 그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어젯밤에 돈을 몽땅 가지고 도망갔대요. 그 돈에 어떤 돈인데….” 이 말을 듣고 계시던 목사님은 “아니, 집사님,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무슨 걱정입니까? 기도하세요.”라며 기도해주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날마다 ‘내 돈 돌려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이 집사님을 찾아왔답니다. “아주머니, 내가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아주머니 돈만은 떼먹을 수가 없습니다. 밤마다 꿈에 아주머니가 나타나 돈 내놓으라고 해서 살 수가 있어야죠.”
그 집사님은 목사님께 십일조를 가지고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요.”
당신은 지금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놀아주세요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요.”
다섯 살 둘째 아들도 말한다.
“아빠, 놀아주세요.”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놀아주고 싶고 같이 놀고 싶지만, 회사 일은 밤낮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집안일도 끝이 없다.
보통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에, 아이들과의 시간은 양보다는 질에 신경 써야 한다고 한다. 손은 아이에게, 눈은 스마트폰에 두는 것이 아닌, 30분이라도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집중하며 퀄리티(Quality) 있는 시간을 보내야 아이도 만족한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 대한 그 마음은 똑같다는 것을. 장난감이나 게임이 아닌, 함께 식사하는 것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나도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서로에게 눈을 맞추고, 집중하고 경청하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평범한 행복이 그리 쉽지는 않다. 여러 삶의 파도가 있기도 하고, 사랑이란 이름의 잔소리로 서로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여러 관계적인 갈등 요소가 있어서다.
생각해보면 신앙생활 중 가장 기뻤던 때는 아무 다른 생각 없이 단지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마음껏 찬양하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오랜만에 참석했던 찬양집회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컥 눈물만 났다. 삶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옆으로 치우고, 단지 하나님을 찬양하던, 하나님께서 나에게 집중하고, 나도 하나님께 집중하던 그 퀄리티 있는 시간이 참 행복했었다.
“아빠, 같이 놀아주세요.”
그 말에 오늘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려 한다.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것 같이.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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