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열도와 응답은 정비례한다
“소망의 열도와 기도의 응답은 정비례한다!”
목사님이.늘 강조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약점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녀의 눈물에 약하시다는 겁니다. 우리가 금식하고 애통하며 기도하면 꼼짝 못하고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나는 목회 초기, 부흥의 급성장세를 이루며 한때 교만하였다가 사지가 마비된 적이 있습니다. 귀신들이 내 몸을 제어하고, 앞에는 구척장신이 되는 귀신 대장이 나를 죽이려고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 나의 부귀와 명예는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가족도, 친지도, 나의 힘 있는 지인들도, 심지어 내 집안에 의사가 다섯이나 있어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나의 잘못을 회개하며 죽는 힘을 다해 ‘예수’를 불렀습니다. 아니 목소리로 나온 게 아니라 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절박한 심정으로 내뱉었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얼마를 시쳇말로 용천 지랄하며 몸부림치는데 아주 희미한 소리가 내 목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나는 계속해서 온 힘을 다 짜냈습니다. ‘예수’를 부르기 위해서. 점점 내 목소리는 커졌고, 마침내 ‘예! 수!’하며 외치자 갑자기 나를 붙잡고 있던 귀신들과 나에게 다가오던 귀신대장이 떠나가며 내 마비되었던 몸이 순간 풀어졌습니다. 어떤 의학이 나를 고친 것이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 바로 그분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고침을 받았고, 지금 전 세계를 다니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외집회에 나가면 18번처럼 전하는 간증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다메섹 사건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간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2023년 새해, 주일 4부예배를 은사집회로 선포하고 그야말로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70을 넘어 80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오전, 오후예배를 모두 인도한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며 우리 성도들의 영성이 많이 침체되어있어 이를 회복시키려면 내가 입에 칼을 물고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목표를 정하면, 마음에 결단하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귀는 닫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나는 목회 초기 500명 교회가 깨졌을 때, 그런 심정으로 도전했고, 메인스타디움집회, 해외의 수많은 집회, 평화통일 기도성회 등등, 모든 영적 전쟁을 앞두고 나는 항구여일하게 이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돌파해왔습니다. 나는 38년 목회에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잘 알뿐더러 분명한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절박한 심정을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를 보지 마세요.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문제보다 크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신데, 그분이 함께하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하갈이 사막에서 방성대곡하던 그 심정으로, 한나가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술 취한 여인이라는 핀잔까지 들어가며 애끓는 심정을 쏟아냈던 것처럼, 혈루증 걸려 열두 해를 고생하던 여인이 마지막 소망을 안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던 것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해보세요. 엘리사가 그토록 박대하는 스승 엘리야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까지 따라가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더니 갑절의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려보세요. 내가 단언컨대 안 되는 게 기적입니다.
소망의 열도는 기도의 응답에 정비례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하늘나라를 침노하느냐, 그 열도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졌다며 이스라엘의 축복을 내리신 것처럼, 꼼짝 못하시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